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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 한 글자 쓰다 보면 ㅣ 웅진책마을
패트리샤 매클라클랜 지음, 박정애 옮김, 전재은 그림 / 웅진주니어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편이고 글쓰기의 가치도 어느 정도는 안다고 생각한다. 물론 글이 딸려서 많이 쓰진 않는다. 요즘엔 페북에 가끔 쓰고, 예전엔 인터넷서점이나 교사 커뮤니티 등에 가끔 쓰는 정도였다. 글을 잘쓰시는 분들은 글재주보다도 사고의 깊이와 유연성과 통찰력이 대단하신 분들인 걸 깨닫고 나니, 글쓰기에 욕심은 별로 생기지 않는다. 글이란게 손가락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머리에서 나오는 것일진대 머리가 채워지지 않는 한 한계가 있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고, 머리를 채우자니 그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쓰겠다는 욕심만 버리면 글쓰기는 나에게 큰 가치가 있는 일이다.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첫째, 말보다 글이 편해서이다. 나는 대면 관계를 부담스러워 하는 편이고 사람을 직접 상대해서는 내 의사를 강하게 펼치지 못한다. 그럴 때는 글이 훨씬 낫다. 눈앞에 사람이 없어야 할 말을 제대로 다 할 수 있다.
둘째, 휘발되는 생각과 느낌을 잡아둘 수 있어서이다. 내가 제일 많이 쓰는 글은 서평이니(이것도 한달에 두편 정도가 고작이지만) 그것으로 예를 들면, 서평을 써놓은 책과 안 쓴 책은 나중에 상당한 차이가 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읽은 책의 내용도 잊게 마련인데, 서평을 써놓으면 그만큼의 기억은 붙잡고 있는 셈이 된다. 물론 한참 지나 읽어보면 "내가 이런 글을 썼었나?" 할 때도 있고, "이 책을 읽고 이거밖에 생각 못했나?" 또는 "책을 잘못 읽었네."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있고 의미가 있는 일이다.
셋째, 글쓰기는 나 스스로 나를 정리하고 위로하고 치유하는 작업이다. 감정과 생각이 뒤엉켜 있을 때 글을 쓰면 가닥이 잡히고 정리가 된다. 그러면 어느정도는 나를 객관화하여 볼 수 있게 된다. 또 글쓰기를 글똥누기라고 부르는 분들도 있듯이 배설처럼 시원하기도 하다. 심하지 않은 마음의 동요는 이정도로도 충분히 해결된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내용이 반가웠고 부럽기도 했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한 작가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글쓰기의 가치와 기쁨을 가르쳐 준 이야기' 정도 될 것이다. 나도 한때는 의욕적으로 덤볐으나 그리 잘되진 않았었다. 아이들은(요즘 아이들은 특히) 쓰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공책 필기를 자주 하지도 않는데 어쩌다 좀 쓰게 되면 죽는 소리를 한다. 글을 써야 하는 학습지를 나눠주면 몇줄인지부터 세어본다. 거부감이 없는 아이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은 이런 식이다. 아이들이 싫어하다보니 나도 특별히 강조하기보다는 기본만 하는 식으로 바뀌게 된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이렇게 아이들과 타협(?)을 해버렸지만, 나름 노력하고 있을 때 깨달은 것이 두 가지 있었다. 첫째, 서투른건 괜찮으니 솔직하게 쓴다. 거기에 감동이 있다. 이오덕 선생님이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 하고 하셨던 것도 이것을 전제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미라벨 선생님은 '속삭임을 들어보세요.' 라고 조언했고 그것이 글로 이어지도록 유도했는데 위에 말한 솔직함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거기에 더하면 영감이라고 할까? 누구의 삶에든 글이 될만한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을 잡아내고 거짓없이 진정성을 갖고 쓴 글은 훌륭한 글이다. 이 책의 작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둘째, 쓴 글의 공유와 그 과정에서의 소통이다. 인간에게는 표현의 욕구가 있고 무의식중에 나누려는 욕구를 가지고 글을 쓰게 된다. 페북을 하거나 인터넷 서재에 글을 올리는 것도 그런 욕구를 반영하는 것 아니겠는가?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쓴 글에 대한 적당한 반응이 있어야 쓰고자 하는 욕구가 소진되지 않는다. 내가 사용했던 공유의 방법은 학급문집 겸 소식지였는데 학기당 두 세번 발행하며 아이들이 쓴 시, 일기, 독서감상문, 그 외 국어시간의 글쓰기 결과물들을 실어주었다. 부끄럽지만 지금은 못하고 있다.... 이게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내년부턴 다시 해봐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
이정도의 공유도 상당한 노력이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거기에서 그치는 것은 부족했다고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문집 활동만 해도 다른 친구의 글을 서로 보고 배우며 상승하는 효과가 꽤 있긴 하다. 교사가 직접 가르쳐 주는 것보다 아이들은 친구들 사이의 모방에서 훨씬 많이 배운다. 하지만 같이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소통이 더해지면 훨씬 좋다. 미라벨 선생님의 이런 단순한 방식이 사실은 진리인지도 모르겠다.
"아마 내일쯤엔 여러분 중에서 누군가가 글을 써서 들고 올 거 같네요. 원한다면 친구들 앞에서 직접 자기 글을 읽어도 좋고요, 내가 대신 읽어줄 수도 있어요. 친구의 글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우리 모두 예의를 지킬 거예요.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드는지 얘기하고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고 하는 식으로요."
이런 지도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의 삶에 닥친 아픔과 기쁨, 슬픔과 걱정들을 풀어내었고 그러면서 이해와 우정을 배워나갔다. 아이들의 모습이 정말 예뻤다. 그 아이들의 시도 예뻤고 친구의 시를 존중하고 칭찬하고 이해하는 태도도 너무 예뻤다.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교실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질 만큼. 마지막으로 선생님은 부모님들을 초청하여 전시된 글을 통해 자녀들과 소통하고 이해하는 자리도 만들어 주었다. 이제 아이들은 한 글자, 한 문장, 그것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우리의 이야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두들 공감하고 있다.
문득 문자와 글이 없는 삶을 상상하니 세상의 기쁨이 반은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미라벨 선생님처럼 이 기쁨을 알려줄 책임을 양 어깨에 느끼니 정말 무겁네.... 우연히 만난 이 책을 나의 소중한 책 목록, 아이들에게 권해줄 책 목록에 동시에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