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맨들 네버랜드 우리 걸작 그림책 47
조은영 그림, 신혜은 글 / 시공주니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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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학교를 옮겼다. 옮긴 학교는 작년까지 2년간 통일교육 시범학교였다고 한다. 올해도 창체에 몇 시간의 통일교육이 편성되어 있다. 3월 초 창체 편성에 대하여 아이들에게 소개하며 통일교육도 있다고 했더니 아이들의 반응,

"우우욱~~~ 웨엑~~~!!"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이없어 하는 내게 아이들은 통일, 말만 들어도 지겹다고 했다.

입찬 소리 잘하는 어떤 아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통일 되는거 싫어요. 그냥 전쟁만 안나고 살면 되지, 북한이랑 통일을 왜 해요?"

"맞아, 맞아!"

그 자리는 그냥 조용히 넘어갔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를 수 있으며 너의 생각도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나중에 좀더 차분히 애기해 보자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통일' 소리만 나오면 터뜨리는 아이들의 발작적 반응은 이땅의 통일교육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듯했다. 올해도 통일주간 대회를 했다. 우리 학년은 나름 아이들에게 부담을 안주려고 여러가지 북한의 애니메이션을 찾아 보여주고 감상문 겸 통일에 대한 나의 생각 적기로 간단히 실시했는데, 상이라는 인센티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대부분이 '반통일론'을 펼쳤다. 심지어 어떤 아이는 "빨갱이들은 다 미친놈들 같다"라고 써서 나를 기함시켰다. 최근 있었던 지뢰와 도발 사건이 있기도 전이었다.

 

이쯤되면 2년간 실시했다는 통일교육은 실제로는 <반통일교육>이었다고 봐야 맞을 것이다. 난 그냥 입을 다물었다. 무능하고 책임감 없다고 나를 욕해도 할 말이 없다. 아이들이 통일에 대한 장밋빛 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솔직하다 못해 뭔가 꼬인 심정까지 드러낸다고 해서 내가 무슨 말로 꼰대질을 할 수가 있을까. 나도 잘 모르겠는데 말이다. 난 그래서 당분간은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던 중 이 그림책을 만났다. <조개맨들>이 뭔가 했는데 조개껍질로 덮인 들이었다. 지금은 할머니가 된 어떤 소녀의 어린시절 추억이 담긴 곳이다. 그 추억 속에서는 모든 장면이 행복하고 평화롭다. 비록 넉넉하진 않지만 사랑이 넘친다. 하늘 같고 바다 같은 아빠. 인자하고 따뜻한 엄마. 함께 노는 친구들. 정겨운 친척과 이웃들.... 그러던 어느날, 전쟁이 났다. 엄마는 얼굴이 새하얘졌다. 마을은 피난민으로 가득 찼다. 폭격을 맞는 배, 폭격을 맞는 마을을 표현한 그림에서 피가 솟구치고 뚝뚝 흐르는 듯하다.

 

어느날, 아빠가 집에 돌아오시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어디에 가셨는지도 모르는 아빠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매일 아빠의 밥을 해놓고 기다리는 엄마... 조개맨들에 나가 서면 아빠가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데, 아빠는 소식이 없다. 지금까지도.....

 

마지막 장에는 뜬금없이 색바랜 흑백사진 한장이 테이프로 대충 붙인 듯이 나와 있다. 젊고 건강하고 가정적일 것 같은 아빠 한 분이 시계방 앞에 서 있다. 이 책의 모델인 아버지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1947년에 찍은 이 사진을 60년 넘게 품고 살아온 이 가족의 아픔을 무슨 말로 표현할까? 이 책은 그 아픔을 아주 담담하게 보여준다. 담담해서 더 먹먹한 그 슬픔.

 

아이들이 이 아픔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자신의 아빠로 대입해서 생각하면 이해할까? 몇 년 전 6.25 수업을 할 때, 분단과 이산가족에 대해 설명하며 "예를 들면 이런 거야. 너희들 아빠가 먼 지방으로 출장을 가셨어. 그 사이에 전쟁이 났어. 그리고 우리 동네와 그 지역 사이에 휴전선이 쳐졌어. 우리는 이제 다시는 아빠를 볼 수 없어. 이산가족이란 그런 거야." 했더니 아이들 입에서 짧게 헉! 하는 신음이 흘러나왔던 것을 기억한다. 전쟁이란 그런 것이다. 현대의 전쟁은 이산가족 타령을 하고 있을 그런 수준의 전쟁도 아니겠지만.... 전쟁은 내가 가진 모든 것,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앗아가는 그런 것이다. 더할 수 없이 처절한 고통이다.

 

이런 책을 읽어주며 그것을 통일교육이라 부르지는 않겠다. 평화교육이라는 말도 멋적다. 하지만 아이들이 생각했으면 한다. 지금 우리들이 갖고 있는 행복, 누리고 있는 평화. 그것이 정말 튼튼한 기반 위에 있는 것인지를.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겠는지를. 현실성 없는 통일론도 부질없는 것이지만 무조건적인 적의도 옳지 못하다. 통일교육에 두 손 든 무능한 교사는 이 책으로 아이들 마음에 평화에 대한 갈망의 불씨 하나만 켜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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