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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베들레헴의 길고양이 ㅣ 모퉁이책방 (곰곰어린이) 38
데보라 엘리스 지음, 김배경 옮김 / 책속물고기 / 2015년 3월
평점 :
동화가 생활주변의 소소한 일들과 그에 따른 익숙한 감정을 다루어도 좋고 커다란 이슈나 무거운 주제를 다루어도 좋다. 인간에게는 이 두 가지 면이 다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 균형을 추구한다면 두 가지를 골고루 다 읽으면 좋을 것이다.
이 동화는 후자에 속한다. 현 시대 지구상의 난제 중 하나라 볼 수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문제를 다루었다. 이 책을 읽고 충격받은 나는 역사시리즈물 중 하나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라는 책을 사서 읽기까지 했다. 동화는 이 문제의 원인과 책임을 따지지는 않는다. 지금 누군가가 겪고 있는 상황인 것 같은 현장감과 긴박감을 독자들에게 준다. 하지만 결말은 어찌보면 꽤나 낭만적이라 볼 수도 있다.
이 작가의 책을 처음 읽는데, 이러한 형태의 입체적인 구성은 흔히 보던 것이 아니라서 깜짝 놀랐다. 시간(과거와 현재)과 화자(사람과 고양이)의 교차 구성. 그런데 화자는 사실상 동일 존재다. 소녀 클레어가 죽어서 환생한 고양이 클레어. 같은 존재이면서 관점은 다른 두 화자가 이야기를 다각도에서 이끈다.
소녀 클레어는 흠잡을 데 없지만 얄미운 여자애다. 하지만 날카로운 시랜드 선생님은 그애의 흠을 찾아내고 날카롭게 지적하고 정확하게 처벌한다. 어른 머리 꼭대기에서 놀던 이 아이는 뜻밖의 상황에 당황하고 분노한다. 이 아이의 행태는 얄미운 정도를 넘어서서 가증스럽기까지 한데, 선생님은 이 아이와의 줄다리기에서 결코 물러나지 않는다. 이 줄다리기는 어떻게 끝이 날까?
소녀 클레어의 이야기가 이렇게 진행되어 가는 동안, 고양이 클레어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한 집에 잠입해 들어간 이스라엘 두 병사와 함께 지낸다. 처음에는 몰랐던 사실, 그 집엔 팔레스타인 소년도 한 명 있었다. 이 위험한 공존은 어떻게 끝이 날까?
선생님의 침착하면서도 집요한 대응은 결국 이 맹랑한 여자애를 굴복시켰다. 그러나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안타깝게도 아이는 죽어버렸으니.
하지만 그렇게 속단할 수만은 없다. 아이는 지구상의 전혀 다른 편에서 고양이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분쟁의 한가운데에 서있는 평범하고 선량한 이들을 바라본다. 다시 태어나도 새침한 척 쿨한 척은 버리지 못한 아이(아, 그렇다기 보단 딱 맞는 성격의 존재로 태어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 아이가 본연의 성격을 잠시 포기하고 한 일로 이 숨막히는 대치는 막을 내린다. 물론 문제의 근원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1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과 독일군이 대치하고 있던 상황에서 크리스마스 하루 동안 휴전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 책에서 그려놓았듯이, 병사들 개개인으로 봤을 때는 이쪽이나 저쪽이나 크리스마스에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는 똑같은 인간일 뿐이다. 한 독일군의 캐롤 소리에 영국군도 캐롤로 화답하고, 무기롤 내려놓고 다가오는 상대편의 병사를 향해 누구도 총을 쏘지 않았다. 총을 내려놓고 만난 그들은 그냥 친구일 뿐이었다. 그러나 하루동안의 휴전이 끝나자 그들은 어제의 친구를 향해 또 총구를 겨누어야 했다. 이러한 슬픈 일은 누가 만들어내는 것인가?
세계대전은 끝이 났지만 팔레스타인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리고 지구 저 편의 남의 일이 아닌 것이, 우리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며 정전이 아닌 휴전의 상태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분쟁의 불씨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평화를 가장 큰 가치로 생각해야 될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인 것이다. 우리도 우리와 별다르지 않은 평범하고 마음 약한 저쪽 사람을 만난다면 마음 속으로 이렇게 물을 것이다. 우리는 왜 적이 되었나? 왜 우리는 만나지 못하나? 우리를 갈라놓는 철책 주변에 왜 수많은 지뢰가 매설되어 있고 꽃다운 젊은 장병은 왜 다리를 잃어야 했나?
이렇게 큰 문제에 감히 한 마디로 대답할 용기가 없다. 팔레스타인에도, 한반도에도 희망은 있고 그 희망은 아이들에게서 나온다는 것만 겨우 말할 수 있다... 이런 글을 써 주는 작가들이 고맙다. 글의 힘이 아이들의 가슴을 파고들고 아이들이 많은 생각을 하게 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같은 문제를 다룬 마이클 모퍼고의 책 하나를 함께 소개하고 마치려 한다. 장벽 저쪽과 이쪽, 어른들은 대치하고 있지만 아이들은 용서하고 소통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볼 수 있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