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의 추억 중 주황색 계몽사 세계명작 전집과 관련된 것이 많다. 그 전집이 있는 집을 정말 부러워 했었다. 그런 친구 집에 놀러가려고 은근히 애쓰던 기억이 난다. 친구집에서 한 두권씩 빌려온 책들을 정말 소중하게 읽었던 기억도. 지금 4,50대이신 분들은 보면 아실 것이다. 이런 책들이다.

 

   

 

우리 아빠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다. 그당시는 대부분 어렵게 살았고 외벌이 교사 또한 그랬던 것 같다. 월급날이 되면 아빠는 언니랑 내 손을 잡고 개천 길을 따라 국민대 앞 서점에 가서 문고판 책을 한 권씩 사주시곤 했다.(어릴 때 우린 정릉에 살았다) 그리고 아빠도 삼중당 문고 한 두 권을 사셨다.(삼중당 문고 또한 40대는 되어야 기억할 것이다.ㅎㅎ) 그렇게 책에 목말라하는 가족이었지만 전집을 사기는 어려웠다. 저 주황색 전집은 내 부러움의 추억이다.^^

 

그 중에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을 꼽으라면 <방랑의 고아 라스무스>라는 책이다. 지금은 <라스무스와 방랑자>라는 제목으로 나와 있다. 어른이 되어 이 책을 잡았을 때, 첫 장을 넘기기도 전에 어린 시절 독서의 추억이 물밀듯 몰려왔다. 라스무스가 고아원을 탈출하고, 남의 집 헛간에서 자다가 오스카를 만나고, 오스카가 나눠주는 우유와 거친 빵을 먹는 대목에서 침을 꿀꺽 삼키던 그 느낌까지도 생생하다.(지금은 '거친 빵'이라 말하지만 당시에는 어찌나 맛있을 것 같던지, "나도 한 입만." 이라고 하고 싶었다는)

 

어릴 때는 작가에 관심을 갖고 읽지는 않아서, 린드그렌이란 이름은 나중에야 알았다. 어른이 되어 아이들에게 책을 권해주는 입장이 되면서 린드그렌의 위대함을 알게 된 것이다. 그녀는 90이 넘도록 장수했고, 이미 고인이 되었다. 그러니 어떤 책들은 6,70년 전에 쓰여졌다. 그런 책들이 지금 읽어도 전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감동은 전혀 빛이 바래지 않는다.

 

그런데.... 이건 내 생각에 불과한 것일까. 10여년 전 본격적으로 독서지도를 시작했을 때부터 매년 빼놓지 않고 린드그렌의 작품을 목록에 넣어 함께 읽고 활동했다. 내가 받은 감동, 내가 느낀 그 재미를 아이들도 경험해보길 바랐다. 근데 갈수록 한계에 부딪히는 느낌이다. 나의 감성과 아이들의 감성은 다른가? 아이들의 선호 목록에서 자꾸만 밀린다. 뿐만 아니라 끝까지 읽기도 힘들어한다. 독후활동 해 놓은 것을 보면, 어쩌면... 이 가슴저리는 판타지에서 이렇게 아무 것도 못 느꼈다니.... 라고 실망하게 된다...ㅠ

 

사자와 형제의 모험에서의 그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가슴 뻐근하고 환상적인 분위기, 미오 나의 미오에서 가슴을 부여잡고 잠시 숨을 골라야 하는 그 안타까움과 긴장감, 이런 것들은 이제 요즘 아이들의 감성에 다가가기가 힘든 것이 되었나? 어릴 적 독서의 추억을 공유하는 언니와 나는 가끔 "이제 린드그렌이 아이들에게 안 먹혀~~ 너무 슬픈 일이야~~" 라며 한탄을 하기도 한다. 사랑이 움직이듯이 아이들이 취향도 움직이나보다. 엉엉... 그래도 포기하기엔 너무 아깝다. 한 두 번만 더 시도해 볼 거다. 어떤 책이 그 중 아이들의 마음에 다가갈까~~?

 

 

 

 

 

 

 

 

 

 

 

 

 

 

 

판타지 문학에 대한 책을 읽으면 서양 판타지의 전형으로 필리파 피어스의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와 이 책을 꼽은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톰의 정원의 환상적 느낌도 아름답지만 난 이책이 너무 아름다워 슬프다. 아니 너무 슬퍼서 아름다운가? 형제의 애틋한 사랑, 죽음 이후의 세계 낭기열라의 행복과 아름다움, 그곳에서 그들이 함께 겪어야 하는 모험, 그 과정의 긴장감 등 어느것 하나 흠잡기 어려운 명작이다. 그래도 이 책을 손에 잡는 아이들이 별로 없다. 창비어린이문고판(왼쪽)은 좋은 작품이 많은데 비하여 가독성이 떨어져 이제 개정판을 내야 할 것 같다. 그 중 몇 편은 이렇게 '재미있다! 세계명작' 시리즈로 다시 나왔다.(오른쪽) 혹시 칼라판? 하고 구입해 보았는데 그림도 예전판이랑 똑같다. 난 이 그림이 책의 느낌을 가장 잘 살린다고 생각하지만 각종 현란한 볼거리에 익숙해진 아이들의 눈길을 끌지는 못하는 것 같다. 어쨌든 구입했으니 학급문고에 넣으며 슬쩍 권해볼 생각이다. 과연....?

 

 

 

 

 

 

 

 

 

 

 

 

 

 

고아소년 보쎄는 입양된 가정에서도 사랑을 받지 못하고 늘 외롭게 지낸다. 어느날 저녁 심부름을 다녀오던 길에 보쎄는 공원 벤치 옆에 버려져있던 병 속의 거인을 꺼내주고 <머나먼 나라>로 가게 된다. 그곳에는 왕인 아빠가 계셨다. 한없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미오, 나의 미오"라고 말해주는 아빠. 그러나 사자왕 형제들처럼 미오에게도 악을 물리칠 사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려웠지만 거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오는 마침내, 어둠의 기사를 물리치고 돌아왔다.

그런데 이 책의 가슴 미어지는 애절함은 마지막 장에 있었다. '테그너 공원의 나무 의자에는 보쎄가 앉아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 애는 머나먼 나라에 있으니까. 그 애는 머나먼 나라에 있어, 하고 나는 말한다.'

이건 뭔가? 이 모든 이야기는 외로운 보쎄의 상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었어? 사랑받지 못하는 조그맣고 마음 약한 아이가, 저물어가는 공원의 벤치에 앉아 친아빠를 만나 자신의 운명을 짊어지고 가는 저런 멋진 상상을 하며 현실의 외로움을 잊기위해 필사적으로 애쓰는 모습. 이렇게 가슴아픈 반전이 또 있을까? 상상만 해도 애달펐다. 잠시라도 그 아이의 말벗이 되어주고 싶을 만큼.

그런데 아이들과의 도전에서 가장 실패한 책이 이 책이었다. 아이들은 이 책을 "재미없다" 라고 평가했다.....ㅠ 내가 너무 아끼는 책, 하지만 아이들에게 권하기는 좀 접어둔다. 이 책을 읽고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은 소수의 아이들만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은 위의 책들처럼 미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읽지 않아도 된다. 재미있고 유쾌하다. 환상적인 느낌은 없지만 어른들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제멋대로 살아가는 삐삐를 통해서 아이들은 대리만족과 후련함을 맛볼 것 같다. 이 책은 그동안 필독으로 활용해보진 않았다. 이미 읽은 아이들이 많은 것 같아서. 이번에 위의 책들 대신 활용해볼까 하고 살펴보다가 로렌 차일드의 그림과 함께 나온 책을 발견하고(오른쪽) 반가워했는데, 지금은 품절상태다. 시공주니어문고판 왼쪽도 좋지만, 오른쪽을 아이들이 더 좋아할 것 같은데.... 품절이 오래된 걸 보니 곧 절판되려나? 아쉽다.....

난 어렸을 때 이 작품을 <말괄량이 삐삐>라는 TV 드라마로 접했다. 위의 계몽사전집을 기억하시는 분들은 이 주제가 또한 기억하실 것이다. "귀여운 괄량이 삐삐~ 어제도 말썽 그제도 말썽 오늘은 어떤 일을 할까요~"

책과 함께 이 옛날 고래짝 드라마를 보여 주면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파일을 구하느라 힘들었는데, 이런 바보! 유튜브에도 다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oqvlHw4UkI

지금 보니 자막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우들의 연기는 휼륭하시지만 지금 보니 옛날 더빙은 참 촌스럽게 들린다.^^;;

 

 

 

 

 

 

 

 

 

 

 

 

 

위에 내가 계몽사 판으로 읽었다고 소개한 책이다. 이 책은 많이 활용해 보았다. 아이들의 반응은 딱 두가지로 갈린다. (1)너무 길어, 못읽겠어..(300쪽이 넘으니 길다면 길다. 이 정도 길이의 책을 감당 못하는 아이들이 의외로 상당히 많다는 사실) (2)우와, 완전 재밌어!(끝까지 읽은 아이들은 대체로 이런 반응을 보인다^^)

책이 두껍고 눈을 끄는 무엇인가가 없어도 읽다보면 책 속에 빠져들게 되는데, 그 빠져드는 지점까지 가는게 문제다. 그게 안되는 아이들은 내가 밀어 빠뜨릴 수도 없고 안타깝다. 이 책을 읽히면서 그런 생각을 가장 많이 해보았다.

 

그 외 이런 책들도 있다.

 

 

 

 

 

 

 

 

 

 

 

 

 

 

 

 

 

 

 

 

 

 

 

 

 

 

 

 

 

린드그렌을 거부하는 아이들아! 진정한 즐거움은 표면에 있는 경우가 드물거든. 조금만 참고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봐. '이런 신세계가 있다니!' 할 거라니까. 내가 장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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