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학교 저학년 읽기대장
송언 지음, 허구 그림 / 한솔수북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들이 작가까지 따져가며 동화책을 읽지는 않는다. 그런데 예외적이고 독보적인 작가가 있으니 바로 송언 선생님이다. 송언 선생님의 신작을 소개해 주며 "얘들아, 송언 선생님 알지? 마법사 똥맨이랑 김배불뚝이랑 꼼지락 공주랑... 지으신 분 말이야." 하면 아이들의 눈이 반짝이고, 학급문고에 넣은 그 책은 금방 손때가 묻는다. 3년 전인가 학교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월별로 작가별 작품읽기 행사를 했었는데 그때 참가자가 가장 많았던 달의 작가가 송언 선생님이었다. 올해 독서교육을 맡으신 선생님은 작가초청행사를 위해서 아이들이 만나고 싶은 작가를 설문조사하셨는데, 예상한 대로 송언 선생님이 압도적인 표차로 1위를 차지했다. 하여간 송언 선생님의 인기는....^^ 작가를 굳이 따지지 않는 아이들에게서조차 지명도가 이리 높은 비결이 뭘까?    


일단은, 재미있어서일 것이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웃겨서.... 어느 작품에나 빠지지 않는 웃음코드는 다음 작품을 또 기대하게 만든다.

다음으로, 악동의 출연이다. 교실을 맘대로 휘젓는 악동녀석과 늘 뒷골 잡으면서도 그녀석을 미워하지 못하는 할아버지 선생님의 이야기. 악동과는 거리가 먼 아이들도 이런 이야기를 즐기는 것을 보면 뭔가 심리적 해소 효과를 느끼는 모양이다.


근래 나온 작품들 중에 이런 악동-할아버지 선생님 구도의 책들이 많았다. 나오는 작품마다 읽다보니 이제는 그 작품이 그 작품 같은 느낌도 솔직히 좀 들었었다. 이 작품의 제목 또한  <내 맘대로 학교>. 표지에 그려진 당돌해 보이는 한 아이와 그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는 털보 선생님의 모습에서 여전히 이어질 동일한 구도의 내용을 예상했다. 그런데......

일관적인 흐름이 있긴 했지만 느낌이 새로웠다. 주인공 만세는 엉뚱하고 자유롭긴 하지만 적극적인 악동은 아니다. 단지 즐거운 학교를 다니고 싶을 뿐이다.


일요일 저녁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엄마와 여동생은 호호거리고 있지만 아빠와 만세는 우울감에 빠져 있다. 이유가 뭐겠는가? 아빠는 출근, 만세는 등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요일 저녁의 우울감... 이거 대한민국 사람 대부분이 공감하는 감정 아니겠는가? 그래도 아직 세상에 체념하지 않은 만세는 "재미있게 학교를 다니기로" 결심하고 잠자리에 든다. 


월요일 아침, 지각대장 존 한테서 일어날 법한 사건이 등교길에 일어난다. 학교길에 못보던 연못이 있고 거기서 개구리들이 신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만세는 이제 재미있게 학교 다니기가 가능해졌다.^^


나도 일요일 저녁 우울증에 빠진 만세 아빠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근데 이걸 어쩌지? 나한텐 게다가 직장이 학교인 걸. 학교에는 늘 즐겁고 싶은 아이들이 있는 걸. 나도 즐거운 학교에 다니고 싶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 아이들이 불행한 학교에서 교사가 즐거울 수는 없다. 아이들의 웃음이 교사의 보람이고 활력소다. 아이들하고의 좋은 관계가 좋은 수업의 전제조건이 된다. 그러니 만세가 어떻게 즐거운 학교를 다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체육시간-줄 서서 차례로 뜀틀을 넘는 수업에 아이들은 지루해 한다. 만세는 선생님께 뜀틀을 갖고 더 재밌는 놀이를 하겠다고 제안한다. 아이들은 뜀틀을 분해해서 모래성도 만들고, 남생이 놀이도 하고, 기차놀이도 한다. 신나는 자유놀이 시간이 된 것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각자의 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순환활동을 하게 된다.

고민 : 교육과정을 무시하고 자유 놀이를 시켜도 될까? 즉, 수업의 내용(활동)을 아이들에게 정하게 해도 될까? 아이들에게 자유활동을 시키는 것은 교육내용을 구성하고 지도할 교사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그러다가 누군가 다치기라도 하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실제로 자유활동 시간에 아이들이 이렇게 구조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본 적은 별로 없다.


음악시간-피아노나 리코더 없어도 교과서로 이마를 치는 걸 리듬반주 삼아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아, 뭐.... 아이들이 즐겁게 노래를 부르기만 한다면 나도 이정도는 봐 줄 수 있다. 전에 '고물 밴드 이야기'라는 뮤지컬을 본 적이 있었는데, 주변의 모든 물건이 악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체험하는 것은 상당히 창의적인 교육이다.


읽기시간-동화 읽고 뒷이야기 상상하기 수업인데, 아이들이 교과서 동화가 재미없다고 불평한다. 그 때 개구리 아저씨가 나타나 재미있는 개구리 이야기를 들려준다. 교과서의 재구성은 나도 늘 염두에 두던 바라서 이건 좀 고개를 들고 말할 수 있다. 근데 내가 개구리가 될 순 없어서 그게 좀 고민이긴 하다.


과학시간-아이들이 모둠별로 씨앗을 심었다. 화분에 물을 주자 잭과 콩나무처럼 순식간에 싹이 트고 자라 교실은 무성한 덩굴로 뒤덮였다. 당황하는 선생님을 두고 아이들은 숲 속으로 들어가 '곰 잡으러 가자' 놀이를 신나게 하다가 종이 치자 교실로 돌아온다. 바로 점심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무한한 상상 속에서 즐거울 수 있다. 종이 치자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 아이들은 무진장 건강한 아이들이다.


일요일 저녁 장면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일요일 저녁 장면으로 끝이 난다. 이제 만세는 일요일 저녁이 우울하지 않다. 하지만 아빠는 아직 그게 안된다. "만세야. 어른들의 세계는 그리 간단하지 않단다. 개구리 연못 뿐 아니라 용이 사는 연못이라도 가보고 싶어. 하지만 아빠는 갈 수가 없단다. 왜냐하면 말이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 봐 두렵기 때문이란다."


나도 어른이고, 아빠의 고백이 나의 고백에 가깝다. 하지만 어떻게 즐거운 수업을 할까? 라는 즐거운 고민 속에 있을 때, 출근이 늘 고역이지만은 않다. 앞에서 말했듯이, 아이들의 즐거움 안에 교사의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내맘대로 학교> <신 나는 학교> 거기에 나의 설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 맘대로>가 방종은 아닌 것을, 아이들이 아직 모르는 <신 나는>공부는 어떤 게 있는지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 나라면 좋겠다.


(송언 선생님! 책들이 늘 재밌었지만 이번 책은 특별했습니다. 선생님과 동업자(?)라는 것을 실감하고 맘이 든든했어요. 선생님의 고민이 저의 고민이네요. 앞으로도 선생님의 작품 속에서 우리 교실을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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