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질구레 신문 높은 학년 동화 28
김현수 지음, 홍선주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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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과 유머, 둘 중의 하나를 고르라면 유머를 고르겠다. 웃을 일이 그다지 없기 때문에? 하지만 너무 가벼운 유머는 공허하다. 웃고 난 후의 허전함은 그리 좋은 느낌이 아니다. 이 책을 덮으며 이 두 단어가 떠올랐다. 입은 웃는데 울컥하며 눈이 뜨거웠다. 작가의 유머는 수준급이지만 문제의식이 가볍지 않은 관계로 휘발성의 유머가 아닌 눈물을 동반한 유머였다.

 

사실 난 작가를 보고 작품을 고르는 경향이 강해서 이 작품은 그냥 지나칠 뻔했다. 처음 보는 작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히 작가소개를 읽고, 괜한 친근감이 들었다. ... 나랑 동갑이었고(이유 치고는 참 유치하기도 하다) 교육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고, 놀이와 옛이야기 공부를 하면서 아이들과 신나게 놀고 있다는 소개에 마음이 끌렸다. 꽤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처음이라는 것도 친근감의 이유였는데 그 밑에는 뭔가 좀 서툴겠지...? 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던 것 같다.

 

! 서투름 속에 뭔가 신선함을 기대하며 책을 집어든 나는 첫 편에서부터 납작 엎드리게 되었다. 신선함은 맞는데 전혀 서툴지 않다! 내 머리 속에 있는 작가 폴더에 하나가 더 추가된다. 폴더를 열면 파일은 아직 하나지만 이제 눈에 띄면 무조건 파일을 추가하는 폴더가 될 것 같다.

 

진짜로 울다가 웃었던 장면이 있는데, 쭝끄빤썸의 한 장면이었다. 중국반점이라는 중국집을 그리 부른다. 여기에 아마도 작가의 성정을 닮았을 듯한 개성파 배달원 종철이가 나온다. ‘시화산 중국집 배달인 연합을 뜻하는 시배련의 회장을 자칭하는 그는 시배련 회원들과 술을 마시고 자기네 짬뽕국물로 해장을 하다 사장에게 뒤통수를 얻어맞기도 하지만 고객이 주문하면 어디든 달려가는 직업정신 투철한 배달원이다. 아찔하게 높은 공사장, 학교 쉬는시간에 주문질하는 괘씸한 중딩녀석한테까지도 배달을 해주었지만.... 이쁜이 미용실 사장님이 아들 때문에 애원하며 주문하는 그곳에만은 갈 수가 없었다. 시화산 중턱의 시위현장이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의 종철씨는 그곳까지 철가방을 들고 가긴 갔는데.... 그의 투철한 직업정신을 가로막는 경찰과 실랑이하게 되었고, 실랑이 끝에 들은 말인즉, 우리 귀에 익숙한

이 자식, 완전히 빨갱이네!”

였던 것이다.

 

그렇게 결론 내린 경찰들은 철가방 안에 든 게 짜장면이 아닐거라 확신하고 철가방을 빼앗으려 종철씨와 몸싸움을 벌인다.

내놔 봐. , 거기 인화물질 들었지!”

우리는 천연 조미료 넣는당게요. 인화 거시기는 안 넣었는디요!”

이런 장면에서 풋! 하고 웃다가 엉망이 된 음식을 본 종철씨의 처절한 반응에 눈물이 나온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 와우, 이 장면을 보니 단편 영화 한 편 찍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장님한테 코웃음을 사던 그 시배련회원들의 배달 오토바이 부대가 대오정렬하고 기세등등하게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이후에 나오는 장면은 유머를 넘어 개그에 가깝다) 그리고 산 위와 산 아래에서 짜장면을 올려보내라! 올려보내라!” 라는 함성이 시화산을 쩌렁쩌렁 울리며 이 작품은 끝을 맺는다

 

이 책에 실린 다섯 편의 단편 중 위에 소개한 작품이 네 번째이고 앞의 자질구레 신문, 불사신, 통노래세 편도 우리 동네사람들의 울고 웃는 이야기다. 구석구석을 살피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과, 어려움 속에서 더 빛을 발하는 유머가 역시 돋보인다.

 

마지막 작품곱딩이 특색 있게도 옛이야기 형식을 빌렸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곱딩이와 그의 가족이 최부자에게 당하는 내용은 처절하기 그지없다. 가족 사이의 애틋함을 표현하는 작가의 문장이 곱고 애절하다.

 

헛간에 갇힌 곱딩이는 눈물을 삼켰어.

다 나 때문이야. 내가 밥 훔치다 걸려서……. 나만 아니면, 나만 아니면…….”

누이는 곱딩이를 안아주지 못해 마음이 아렸어.

무슨 소리야. 너 때문에 우리가 사는데.”

집에 오지 말고, 아버지랑 멀리 도망가라. ? 누이야.”

누이가 헛간 문틈으로 곱딩이를 봤어. 새벽 어스름에 어둑한 헛간 속에는 곱딩이 눈만 빛나고 잇었어. 누이는 눈으로 안타까이 곱딩이를 쓰다듬었어.

 

옛이야기의 특징대로 이 작품에는 동물 조력자가 등장한다. 눈도 안보이고 냄새도 못 맡는 두더지인데, 마지막까지 곱딩이 먹기에도 부족한 밥을 꿀떡꿀떡 받아먹기만 하더니 그래도 마지막에 큰 도움을 준다. 그 도움이 곱딩이도 구원하고 자기도 구원한다. 옛이야기가 아이들의 무의식에 줄 수 있는 건강함을 잘 갖추며 아름답고 재미있게 써내려간 작품인 것 같다. 옛이야기를 공부했다는 작가의 이력이 헛되지 않았나보다.

 

동화를 많이 살펴보는 편이지만 시간이 흐르며 예전에 읽었던 것은 기억에서 사라지기도 하고 이 작품과 저 작품이 엉켜서 형체가 흐트러지기도 한다. 그러던 와중에 오랜만에 기억에서 꼿꼿이 살아남을 작품을 만난 것 같다. 눈물과 유머를 함께 다룰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작가의 다음 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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