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를 미워해도 되나요? 높은 학년 동화 24
최나미 지음, 홍정선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난 동화를 즐겨 읽는 어른이다. 아이들을 상대하는 직종에서 일한다...... 아니 뭐, 이렇게 애매하게 말하지 말자. 난 초등학교 교사다. 10여년 전 겨울방학을 하면서 내년부턴 독서교육 좀 제대로 해보자결심하고 아무 연수도 신청하지 않았다. (엥?) 대신에 그 당시 돈으로는 꽤 컸던 30만원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50권 정도의 동화책을 샀다. 산 책을 다 읽고는 도서관으로 갔다. 그리고 방학 내내 동화만 읽었다. 뒤돌아보면 내 교직생활 중 가장 보람된 방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겨울방학, 내가 폭 빠졌던 것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었다. 활동적이지 못했던 나는 신 나는 놀이나 모험의 추억이 별로 없다. 대신에 닳도록 읽었던(책이 몇 권 없었기 때문에) 책과 라디오의 어린이 방송, 그것들을 통해 펼치던 상상 등이 추억으로 남아있다. 긴 세월을 보내고 다시 찾아 든 책에서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되살아났을 때의 신기한 느낌이라니! 그렇게 나는 동화와 친구가 되었다.

 

그러면서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동화는 수준이 낮아서 동화가 아니었다. 그 안에도 세상사는 이야기와 깊은 주제의식을 담을 수가 있었다. 때로 나는 동화를 덮고 나서의 여운에 휘청거릴 때도 있었다. 또는, 감동까진 아니어도 저절로 입맛이 다셔지게 재미나는 책들이 있었다. 모처럼 쉬는 날에 그런 책을 손에 잡으면 모든 시름이 없어지고 그저 행복해졌다. 그리고는 안달을 했다.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도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써내는 작가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슴을 쥐어뜯으며, 또는 입맛을 짭짭 다시며 읽는 동화의 즐거움은 조금씩 사그러드는 듯하다. 대신에 평가질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 이 책은 소재가 신선해, 에이 이 책은 신파조라 공감이 안 돼, 이건 시종일관 왜 이렇게 어둡고 무거워, 이걸 애들 보라고 쓴 거야? 등등....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런 증상은 내가 순수 독자이던 때를 지나 책 선별자가 되면서부터 생긴 것 같다. 아이들은 이 책을 재밌게 읽을까? 이러한 주제가 아이들에게 먹힐까? 아이들의 내적성장에 도움이 되는 책일까?

 

이제 와서 내리는 결론은, 그걸 내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정말 정말 아닌책을 제외하고는, 내게 좋았던 책이 아이들에게도 좋을지, 나를 울린 책이 아이들도 울릴지, 내가 웃었던 대목에서 아이들도 웃을지, 내가 실망했던 책은 과연 아이들에게 도움이 안되는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걸 깨닫고 나니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읽히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찾던 의욕이 없어져버렸다. 나는 나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읽는 거다. 그 과정에서 소통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그 이상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최나미 님의 이 책은 나의 이런 고민에 더 불을 붙이는 작품이다. 일단 나는 재미있게는 읽었다. 근데 그 재미는 입맛을 짭짭 다시는 재미는 아니었고 뭔가 좀 씁쓸한 미소를 짓게 했다. 아이들은 어떨까? 이 책에는 다양한 성향을 가진 아이들이 나온다. 아이들의 사회도 어른과 같이 복잡한 관계와 미묘한 감정들이 얽혀 있다. 이 안에서 다양한 상처들을 주고받는다. 이 안에 있는 누군가가 나일 수도 있고 가까운 친구일수도 있다. 이럴 경우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공감이 될 것이다. 그것도 아주 격한 공감.

 

여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착한 아이>가 아니다. 어쩌면 나일 수도, 어쩌면 나한테 상처를 주었던 어떤 아이일 수도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대로 펼쳐진다. 어쩌라고? 그냥 그렇다고. 이런 아이도 있고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아빠가 주는 스트레스에 못이겨 아빠의 차에 범죄행위를 할 수도 있고, 착하고 배려 많은 친구가 왠지 싫고 짜증날 수도 있고, 사명감으로 살아가는 부모의 삶이 자신에게는 괴로움일 수도 있고,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한 사회에 아예 삐딱해져버릴 수도 있다고.

 

아이들의 관계와 그 안의 다양한 양상을 어른이 이해하기는 참 힘들다. 거기에 관여하는 것은.... 무모한 짓일 때가 많다.(적절한 관여가 필요할 때도 있는데 그것을 구분하기는 참 쉽지 않다) 그럼 적당히 지켜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네? 그것 또한 엄청난 인내를 필요로 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남의 인생에 관여하는 걸 아주 싫어하는데 그런 내가 교사이다 보니 아이들을 지도하는데 때로 심적 부담과 고통이 따라온다. ‘아이들은 알아서 큰다, 그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있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데, 그게 신뢰인지 책임회피인지 모르겠어서 늘 헷갈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으려고 한다. 아이들과 공감대를 갖기 어려운 아줌마 교사인 나에게 아이들의 관계와 심리가 잘 포착된 이 책은 좋은 다리가 되어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 권장할 만한 책인가? 내적 성장에 도움이 되는 책인가? 이런 대답은 내가 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으니 관두고, 적어도 이 책은 어떤 아이들의 내면을 매우 섬세하게 사실적으로 그려냈고, 그렇기 때문에 공감하기와 생각 나누기가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은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 과정에서 어떤 이는 치유를 경험할 지도 모르지 않는가. 때로는 공감이 즉 치유일 때도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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