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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노는 법 - 동화를 쓰려는 분들께
위기철 지음 / 창비 / 2013년 4월
평점 :
이 책을 사서 읽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뭐에 홀린 듯하다. 다른 책을 검색하다가 이 책이 걸려들었는데 보자마자 구매하기 버튼을 눌렀고 다음날 책이 내게로 왔다.
제목은 <이야기가 노는 법>, 부제는 <동화를 쓰려는 분들께>인 이 책을 왜 나는 홀린 듯이 장바구니에 담았을까? 나는 ‘동화를 쓰려는 분들’이 아니다. 문학성이 담긴 ‘작품’을 창작해 본 적도, 시도해 본 적도 없다. 아, 사실 학교 다닐 때 월요애국조회 시간을 은근히 기다린 재수없는 애이긴 했었다. 독후감대회나 백일장을 하고 나서 단상위에 올라가 상 받는 그 기분이 짜릿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졸업한 후에는 글과도 멀어지고 가끔 실용적인 글은 쓰지만 문학작품을 창작해본 적은 없었다. 해야 될 필요도 없었고.
그런데 나의 무의식 속에는 사십이 넘은 이 나이에도 애국조회의 단상에 서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었던 것인가? 이 책을 보는 순간, 혹시 이걸 읽고 나도 한 편 써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던 것일까? 내 마음 나도 모르지만 그렇다 치고.
이 책을 읽기를 잘했다. ‘넌 할 수 있어!’도 좋은 말이지만 ‘넌 안돼!’도 때로는 인생에 도움이 된다. 저자는 작가란 어떻게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그저 작가로 살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동화란 하루아침에 쓰여지는 일이 절대 없다고, 엄청난 습작을 통하여만 탄생할 수 있다고 한다. 즉, 들인 시간에 비례한다는 것이다.(물론 재능 없는 이가 시간만 들인다고 되지는 않을 테지만)
나는 저자가 말하는 ‘세월 말아먹는 삽질과 노가다’를 시도해 볼 의향이 전혀 없다. 현재 내가 하는 업종에서 버텨내기도 힘든데 무슨 그런 엄청난 곁눈질을 하겠는가. 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는 순간만큼은 어쩌다 보석을 줍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내가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 덕분에 이제는 그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명쾌하게 날려 버렸다.
순간 들었던 착각을 날려버린 것만으로 만족하기에는 책값이 비싸지 않나? 다행히 한 가지가 더 있다. 동화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는 것.
별로 밝히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몸담은 업종에서 동화는 대단히 중요하다. 물론 그렇게 여기지 않는 분들도 있긴 한데 나는 심지어 내 장사밑천이라고까지 여기는 사람이어서 늘 옆에 두고 읽는 편이다. 서평을 쓰기도 하고 동료들에게 추천을 해주기도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내가 동화를 보았던 시각을 다시 짚어볼 수 있어서 그게 꽤나 쏠쏠한 재미를 주었다.
첫째로 동화는 다른 장르에 비해서 독자중심 글쓰기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동화가 ‘담는 일’ 보다는 ‘꺼내는 일’에 우위를 두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곧 독자와의 소통에 주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같은 맥락으로 저자는 동화작가가 아이들을 대변하는 사람인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인가를 묻고 있다. 전자도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동화로서의 의미는 아무래도 후자에 있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인 것 같다.
그렇다면 좋은 동화를 고르는 일을 어른이 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모순일 수도 있겠다. 뒤돌아본다. 내가 읽고 무릎을 쳤던 책들이,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어 안달이 났던 책들이 과연 아이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였는지. 내가 아이들 눈높이에서 읽었는지. 동화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상은 어른들을 대상으로 말하고 있었기에 내가 감동했던 것은 아닌지. 동화를 통해서 나 스스로 감동받는 것에 족한다면 상관이 없지만, 아이들에게 권해주고 아이들과 함께 하려 한다면 ‘아이들의 시각에서 좋은 동화’는 어떤 것인가 좀 더 고려해 볼 필요가 있겠다.
다음으로 동화를 쓸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공간, 플롯, 패턴, 짜임, 내용, 리듬 등에 대한 강의가 이어지는데 이 부분은 가장 공부(?)스러운 부분이면서도 가장 재미있었다.(이렇게 재미있는 강의를 하는 교수님이 있다면 이 늦은 나이에 공부를 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결론을 굳이 정리하자면 이 모든 것들이 중요하되 여기에 얽매여 쓰면 안된다는 것.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공식이 없다’는 것! ‘이야기가 이야기를 쓴다.’ ‘이야기는 일종의 유기체이다.’ 라는 말들이 이 사실을 잘 표현해 준다.
이어서 좀더 세부적이면서도 전문적인 글쓰기의 원칙이나 기법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이 강의들 또한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들어봤던 말들이면서도 착착 감기게 재미있다. 한번 읽은 지금 당장은 못하겠지만 이 책을 한두 번 더 읽고 나서는 좀 더 세부적인 눈을 가지고 동화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괜히 입맛 까다로운 독자가 하나 더 느는 것에 불과할 수도)
이 책은 서두부터 “동화작가 아무나 하는거 아니다. 폐인 될 각오하고 덤벼라.”라고 시작을 했고 읽으면 읽을수록 우와.... 단순한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데, 각고의 노력을 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라는? 모든 예술들이 다 그러한데, 피나는 연습으로 어느 정도까지는 되지만 그 이상을 넘어서는 것은 타고나야 되더라는 거다. (이건 저자가 한 말은 아니다. 살면서 내가 본 바에 의하면 그렇다) 동화도 마찬가지인 듯.... ‘열심히 노력하셨구나’와 ‘이분은 타고났구나’가 어느 정도는 눈에 보인다. 그런 걸 보면 세상은 참 불공평?...........하지만, 어쩔 수 없다. 타고난 분들의 붓놀림에는 나도 모르게 끌려 들어가게 되는 것을.
마지막으로 타고나셨거나, 노력하고 계시거나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살아가고 계신 이땅의 동화작가님들(저자 포함)께 한 말씀 드린다.
“어쩌다 영감을 얻으면 죽기 전에 한 편은 쓸 수도 있는 줄 알고 이 책을 샀습니다. 하지만 거저 얻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독자로, 참견꾼으로(저자의 표현대로라면 철수엄마로), 아이들과 함께 열심히 읽으며 누리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 많이 부탁드립니다. 저자의 말씀대로 힘 빼시고 편안하게 쓰세요.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