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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기 과외 ㅣ 난 책읽기가 좋아
로리 뮈라이유 글, 올리비에 마툭 그림, 최윤정 옮김 / 비룡소 / 1999년 10월
평점 :
놀기과외, 우리나라에서 나온 책이라면 뭐 이제 나올만도 하지 할텐데 프랑스 작가가 쓴 책이고 나온지 10년도 넘은 책이다. 다른 나라에도 이런 일이 있구나....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라 특별한 경우를 소재로 했다는 느낌이 있다. 우리나라에선 이제 놀랍지도 않은 일인데 말이다.
몇년 전 2학년 담임을 할 때 아이들은 토요일 수업이 끝나면 교문 앞에서 차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무슨 차를 기다리냐고 했더니 생활체육 차라고 한다. 거기서 뭘 하냐고 했더니 피구도 하고 줄넘기도 하고 편을 나누어 놀이도 한다고 한다. 엥? 어렸을 때 골목에서 그냥 하던 것들인데... 이제 그것을 돈내고 하는 것이다. 어머니들께 꼭 그런걸 돈주고 시켜야 하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하는 대답. 뛰어노는게 좋다고 하는데 그냥 두면 뛰어놀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엄마들은 하나는 아는 것이다.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는 것. 근데 우리 아이들은 노는 법을 잊어버렸을 뿐 아니라 같이 뛰어놀 친구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과외를 시킨다. 바로 <놀기과외>!
편해문 선생님의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라는 책을 읽고 많은 공감을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엄마들의 특징. 좋은 건 유행이 다 휩쓸고 지나간다는 것. 말을 꺼내보면 모르지를 않는거다. 심지어는 학부모 독서교육 강의를 들으러 가봐도 강사들이 아이들을 놀려야 된다는 말을 책 이야기보다 훨씬 더 많이 한다. 그럼 엄마들이 '헉! 그걸 몰랐네.' 이럴 줄 아는가? 천만에 말씀. 다 알고 있다. 다 알고 있으니까 유행하는거다. 바로 <놀기과외>가 말이다.
평범한 아이 앙투안의 반에는 특별한 아이 라디슬라스가 있는데 이 아이는 모든 면에서 실력이 월등하다. 그렇다고 나대는 것도 아닌데 학급의 친구들은 이 아이의 존재를 불편해 한다. 이 아이가 뭐든지 잘하는 건 원래 능력이 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부모가 최고급의 사교육을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파리에서 제일 유명한 첼로연주자에게 첼로를 배우고 옥스퍼드에 있었던 교수님에게 영어를 배우고... 이런 식이다.
어느 날 라디슬라스의 일상에 파문이 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첼로 선생님이 아프셔서 레슨을 할 수가 없다는 연락을 갑자기 받은 것이다. 부모님이 집에 없기 때문에 라디슬라스는 이 시간동안 있을 곳이 없었다. 그래서 앙투안의 집에 가게 된다.
앙투안의 방은 보통 아들들의 방이 그러듯이 매우 심란하다. 하지만 라디슬라스에겐 그 모든 것들이 신기한 일이다. 라디슬라스는 앙투안이 즐겨 읽던 만화에 빠져들었고, 앙투안이 직접 그린 만화에 경탄하다가 제안을 한다. 그림 과외 선생님이 되어 달라고.
어찌어찌 아버지를 속여 <과외수업>이 시작되었다. 매번 600프랑이라는 수업료까지 받아가면서...(이게 첼로선생님에게 지급되는 돈과 같으니 아마 꽤 큰 돈일듯-역자 주에 보니 우리돈으로 12만원 정도 된다고) 전문가가 아닌 앙투앙이 가르치는데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수업이 될 리가 있겠는가? 그런데 의외인 것은 실력이 늘지도 않는데(소득이 있다면 천하의 라디슬라스에게도 소질없는게 있다는 깨달음?) 라디슬라스는 이 수업을 너무나 좋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쌓여가는 수업료에 마음이 떨리는 앙투안은 수업료를 들고 라디슬라스의 아버지를 찾아가서 모든 걸 털어놓는다. 이 때 아버지의 반응이 그가 몰지각한 부모는 아님을 알게 해준다.
"난 라디슬라스의 행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지. 그 애가 어떻게 하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까 하고 늘 마음을 써 왔단다. 그래서 그 애가 행복해하고 있는 줄 알았어."
"내가 잘못 알고 있었구나. 행복해지려면 필요한 것,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그 애한테 빠져 있었던 거지. 그게 친구잖니."
"이것저것 다 생각했는데 내가 왜 그 생각은 못했는지 모르겠구나. 그 애한테 노는 걸 못가르쳤다."
이제 라디슬라스에게도 여백의 시간이 주어지게 되었다. 그 시간에 라디슬라스는 앙투안과 그림도 그리고 만화의 스토리를 구상하기도 하고 그 외 기타등등 어찌보면 시간낭비인 것 같은 일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되겠지. 앞만 보고 가던 라디슬라스가 바야흐로 곁눈질을 시작했으니 아마 당분간 부모를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경험자로서 해보는 바이다. 그러나, 그게 순리인 것이다. 자연스럽게 숨쉬면서 사는 일. 우리나라의 학생들도 미래를 위해 12년을 저당잡힐 일이 아니다. 행복은 과외로 배울 수 있는게 아니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