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붓 사계절 그림책
권사우 글.그림, 홍쉰타오 원작 / 사계절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표지에 이 책의 주인공 마량이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나와있는데 깜짝 놀랐다. 우리 딸래미 아기때 모습이랑 똑같아서. 통통한 얼굴, 숱 적고 짧은 머리를 위로 묶은 모습... 꼭 우리 딸 세살 네살 때의 모습이다. 이야기 중 마량의 나이가 그정도로 어리지는 않겠지만 그만큼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이 책의 원작은 중국과 우리나라 북부에 구전되던 옛이야기를 중국의 아동문학가 홍쉰타오가 <신필마량>이라는 제목으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라고 한다. 그것을 우리나라 그림작가 권사우 님이 그림책으로 다시 만들었다. 10년 동안이나 이 작품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고민하고 다듬으며 보낸 10년의 세월이 무색하지 않을만큼, 책은 섬세하고 사랑스럽다.

 

세계의 옛이야기들에는 신기하게도 공통되는 모티프들이 많은데 그 중의 하나가 '원하는 것이 저절로 생기게 하는 어떤 것'이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더듬어 보면 도깨비 방망이, 요술주머니(보자기), 요술 항아리 등등.... 인간의 심리에 보편적으로 그런 갈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어렸을 때 천사가 소원을 들어준다면 뭘 말할까? 이런 고민을 심각하게 해봤으니까. 이제 판타지에서 벗어난 어른들조차도 로또가 당첨되면 뭘 할까? 이런 개꿈을 꾸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에서 요술을 부리는 도구는 바로 붓이다. 수없이 많은 요술이야기지만 이 이야기가 식상하지 않은 건 '붓'이 주는 새로움인 것 같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마량은 너무 가난해서 붓 한자루를 갖는게 소원이다. 그런 마량에게 신령님이 준 붓이 생겼는데, 이 붓으로 닭을 그렸더니 진짜 닭이 푸드덕 살아나는게 아닌가!

 

지금부터 따뜻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량은 이 붓으로 배고픈 아이들에게 밥을 그려주고, 농사일에 힘든 할아버지에게 소를 그려준다.

 

이제 위기가 닥칠 시점이 되었다. 요술물건을 모티프로 한 옛이야기에선 그걸 가로채려는 인물이 다가오기 마련이다. 여기서는 원님이다. 그러나 요술물건은 임자를 알아보는 법, 아무한테나 선한 요술을 베풀어주는 게 아니다. 금덩이를 그리면 똥덩이가 되고, 돈나무를 그리면 뱀나무가 된다. 원님은 할 수 없이 마량을 다시 불렀다.

 

모름지기 악인은 자기 욕심에 의해 망하는 법이다. 이 이야기에선 그 교훈을 극대화시켜 보여준다. 황금산을 향하여 배를 탄 원님. 더 빨리, 더 세게를 외치더니만 결국은....

 

권사우 님의 그림은 따뜻한 곳에서는 따뜻하게, 클라이막스에서는 극적인 긴장감을 눈앞에 다가오도록 생생하게 살리고 있다. 그렇지만 진정한 공포심을 자아낼 정도는 아니다. 난 그것이 마음에 든다. 옛이야기의 매력이 그런게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권해주고, 그림책을 가끔 읽어주기도 하지만 그동안 옛이야기의 소중함에 대해서는 별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들어 오랜 세월을 거치며 살아남은 옛이야기들에는 어떤 깊은 의미가 있는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이 책만 해도 그렇다. '원하는 것을 맘대로 가질 수 있다면' 이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로망... 그것을 붓 한 자루를 소재로 하여 생생하고 흥미진진하며 권선징악의 교훈까지 듬뿍 담기게 표현해냈다. 옛이야기의 힘을 새롭게 느끼게 되는 작품이었다.

 

내가 아끼는, 하지만 아이들 손에 너덜너덜해지는 그림책 목록에 들어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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