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전설은 창비아동문고 268
한윤섭 지음, 홍정선 그림 / 창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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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권하고 싶고, 아이들도 틀림없이 좋아하리라 확신이 드는 책을 만나는 건 흔치 않은 일인데, 오랜만에 건졌다. 난 이걸 올해 권장도서 목록에 넣을 작정이다. 권장도서 목록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 말들이 많고 나도 문제점을 인식하기는 하나, 그래도 그 순기능을 포기할 수 없어 매년 만들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열심히 찾아 읽고 있잖은가. 선생님이 좋은 책을 발견해서 얘들아~ 이 책 참 좋더라~ 좀 읽어봐라~ ?” 이러는게 뭐 나쁜 일은 아니잖은가?

 

작가 한윤섭 님은 극작을 공부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이야기의 짜임새에 내공이 남다르다고 느낀다. 어린이 대상의 책이지만 문장의 문학성도 감탄스럽다. 어린이문학의 예술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고 할까? 한 대목을 골라보겠다. 주인공 준영이가 무서워하던 돼지할아버지의 밤나무밭에 들어가 새벽에 함께 평상에 앉아있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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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사람이 다가가면 울음을 멈추는 풀벌레처럼, 밤 떨어지는 소리는 준영이 눈을 감았을 때만 들렸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신기한 소리였다. 적당한 무게의 밤알이 낙엽이 쌓인 흙에 부딪쳐 나는 소리, 그 소리는 정말 새로운 느낌이었다. 밤들은 수없이 쏟아져 내렸다. 최고로 아름다운 음악이 밤밭에 흐르고 있었다.

아름다운 소리 사이로 가끔씩 돼지할아버지의 숨소리도 들려왔다. 왠지 두 소리가 잘 어울렸다. 문득 준영은 깨달았다. 가을이 되면 돼지할아버지는 매일 새벽 혼자서 이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 소리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었다는 사실을.

 

사실 아이들에게 문학성 타령은 진부할 것이다. 재미있어야 된다. 이야기가 재미없다면 다른 모든 것을 갖춘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근데 이 책은 일단 재미가 있다. 목사님인 아빠를 따라 시골학교로 전학을 간 준영이에게 마을 친구들은 무시무시한 마을의 전설을 알려준다. 그 전설은 황당무계하지만 혼자 집에 못 가고 친구들을 기다릴 정도로 준영이를 빨아들인다.(이 때, 독자도 같이 빨아들인다.^^)

 

이 전설을 공유하고 함께 행동하며 아이들은 허물없는 친구가 된다. 이 전설이 하나 둘 실체를 드러내면서 아이들의 사계절이 지나간다. 아이들의 우정도 마음의 깊이도 그에 따라 깊어진다.

 

색감이 뛰어난 그림도 이 책의 매력이다. 봄은 화사한 봄 색깔, 여름은 울창한 여름 색깔, 가을은 깊은 가을 색깔, 겨울은 차가운 겨울 색깔이 계절의 변화를 마음에 와닿게 해준다.

 

작가의 어린시절 시골이야기로 풀어나간 여러 작품들을 읽어봤다. 그 작품들 모두 나름대로 특징과 재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어떤 작품과도 겹치지 않은 소재와 재미를 지닌 이 책을 또다시 발견하게 된 것은 큰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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