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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이 되어 버렸다 ㅣ 보름달문고 105
김화요 지음, 근하 그림 / 문학동네 / 2026년 4월
평점 :
고학년 여학생들의 관계 문제를 다룬 동화책들은 이미 많이 나와 있다. 이 책도 제목을 보는 순간, '아~ 대충 알겠다' 이런 느낌이었다. 게다가 더이상 나에게는 관심사도 아니기에 읽을까말까 하다가 감기로 집에 틀어박힌 날, 한번 꺼내서 넘겨봤다. 오, 의외로 잘 넘어가서 다 읽어버렸다. 내용도 뻔하지 않았다. 주제를 상당히 잘 다룬 작품이며 직면할 지점도 잘 짚어준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내가 그럴 일은 없지만 고학년 여학생들과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면 이 책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내 생각과 같아서 속이 시원했던 것도 있다.
화자인 손여울은 6학년 첫날 잔뜩 긴장해 있다. 대다수의 고학년 여학생들이 이렇다고 들었다. 나는 뭘 그렇게까지 할까 생각하는데 걔네들 생각은 그게 아닌 모양이다. 3월 초는 그들의 '소속'을 결정짓는 기간이다. 1년간 몰려다닐 그룹, 그리고 안전한 '단짝'을 만들고 고정시키는 기간인 것이다. 여기에서 도태되면 1년이 괴롭단다. 그래서 이 보이지 않는 움직임은 매우 치열하다고 한다.
소극적인 여울이에게 다행히도 자은이가 말을 걸고 옆자리에 앉았다. 귀엽고 활기차고 애교가 많은 아이였다. 둘은 첫날부터 같이 하교한 것을 시작으로 완전한 단짝이 되었다. 여울이가 바라는 것이 다 이루어진 듯했다.
하지만 자은이는 여울이와 다른 점이 많았다. 그중 독자들에게 위기감을 느끼게 하는 성향이 있었으니 바로 '급'을 따진다는 것이었다.
"성준희가 신다빈이랑 다닐 급은 아니지."
이런 식이다. 자은이가 나눈 급에서 최상위에는 늘씬하고 예쁜 신다빈이 있다. 그리고 자신도 어디쯤에 위치한다. 급이 낮은 아이가 위의 급과 어울리려고 하는 것을 '주제에?' 이런 느낌으로 본다.
헉, 철렁했다. 두가지 이유에서다. 아이들을 가르치던 시절에 유난히 이런 느낌을 많이 받은 해가 있었다. 당연히도 그해는 몹시 힘들었다. 다음으로는 이런 마음이 나에게는 없던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급'이란 말을 직접적으로 쓰진 않는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누군가는 우러러보고 누군가는 업신여기는, 다르게 말하면 누군가의 접근엔 감지덕지하고 누군가의 접근엔 어딜 감히? 라며 불쾌해하는 마음이 내 안에 있지 아니한가? 이것은 어쩌면 다스려야 하는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한다. 오죽하면 인간들은 신분을 만들었을까. 이제 발전된 사회가 되어 제도는 폐지되었지만 무형의 신분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것이 바로 자은이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급'이다.
이것은 권력과도 관계가 있다. 인간의 권력욕은 역사가 증명한다. 모든 살육과 배신, 비정함이 다 권력욕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그 크기는 개인차가 큰 것 같다. 분명한 것은 권력욕이 강한 사람은 '다루기 힘들며'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나는 학급이 구성되면 가장 먼저 이 권력관계를 파악했다. 별다르게 불거지는 게 없으면 그 해는 안심했고 눈에 띄는 권력관계가 있으면 늘 주시하며 억제하려 애썼다. 소위 권력추구형 여왕벌이 있고, 자신을 그 급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권력의 콩고물이라도 얻어먹고 싶은 아이들이 시녀를 자청한다. (용어가 그런것이고 여성에게 국한된 것은 아님)
이 책의 신다빈은 권력욕을 거칠게 표출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급'을 당연하게 여기는 아이다. 얘한테도 단짝이 있었기에 관계는 평행한 듯했으나.... 구조가 바뀌는 일이 생겼다. 신다빈 단짝이 전학을 간 것이다. 이후 자은이는 최상위 '급' 신다빈의 시녀를 자청했고, 그래서 [셋이 되어버렸다]. 바로 이 책의 제목이다.
그 틈바구니에서 여울이가 한 고생이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그게 다인줄 알았던 여울이에게 '새로운 인간형'들이 나타났다. 이게 이 책의 가장 신선한 점이고 나도 이 부분 때문에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준희와 수아라는 두 아이는 언뜻 단짝으로 보였으나 경계는 없었다. 한마디로 쿨했다. 오는 사람 막지 않으니 따뜻하면서 쿨하다고 할까. 걔네들은 여울이의 호의에 경계없이 고마워했고, 장점을 발견하면 시기없이 칭찬해주었다. 모둠발표까지 성공적으로 하고난 후 함께 다니게 되자 여울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내가 끼면 홀수가 되니까, 그게, 괜히 불편해질까 봐."
그러자 아이들의 대답들이 넘 좋았다. 아, 난 늘 이런 아이들을 찾고 있었던 것 같아.
"셋이 다니면... 좋은 점이 더 많을 것 같은데. 둘이 있을 때보다 화제도 다양해지고, 혹시 둘 사이에 오해가 생기면 한 명이 중재도 해 주고."
"그리고 세 명이면 메뉴도 세 개 시킬 수 있음. 그럼 세 가지를 맛볼 수 있는 거니 이득."
"우리는 너랑 더 친해지고 싶고, 그래서 같이 다녔으면 좋겠는데. 숫자가 중요한가?"
그렇다. 둘이든 셋이든 뭐가 더 좋다는 법은 없다. 얘네들이 넷이 되지 말란 법도 없고 누군가 자연스럽게 빠지면 또 둘이 될 수도 있는 거고.... 문제는 관계 자체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준희와 수아를 보니 떠오르는 아이들이 있다. 눈에 띄는 (자은이 말대로 급이 높은) 아이들은 아니었지만 교실을 유연하게 채워주던 아이들. 언제나 깍두기들을 품어주던 아이들. 교사인 나조차 내 걱정을 솔직히 말해도 되었던, 그 틈을 살며시 채우고 아무것도 아닌듯 태평하던, 딱히 칭찬도 바라지 않던 그 아이들.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웠던가.
이 책은 이런 아이들의 가치를 높여주어서 내 마음에 딱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권력지향성 또한 천성인 것을 어쩌면 좋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의미가 있다. 그럴수록 성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성찰은 평생 해야 한다. 이 말이 이해가 안가면 부모님께 노인정 이야기를 좀 들어보면 단번에 이해 갈걸? 아이들도 노인들도 평생 돌아보아야 할 관계 이야기를 이 책은 요란스럽지 않게 잘 담았다. 부디 모두들 관계 속에서 평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