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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대신 라면 - 밥상 앞에선 오늘의 슬픔을 잊을 수 있지
원도 지음 / 빅피시 / 2025년 11월
평점 :
일을 그만두고 시간이 많아지면 난 그동안 시간의 부담으로 엄두를 못냈던 벽돌책들을 읽을거라 생각했다. 근데 한달이 가까워오도록 벽돌책은 커녕 독서량 자체가 줄었다. 도서관은 전보다 자주 가는데, 대출했던 책을 읽지도 않고 반납하기도....^^;;; 그리고 일단 편하게 읽을 얇고 작은 책을 집어들게 된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표지는 새빨갛지, 신간코너에 떡하니 놓여있으니 집어드는 건 백퍼.^^
이 책을 알라딘에서 검색해보니 '음식에세이 주간○○위' 라고 나온다. 이것도 순위를 매길만큼 많은가? 생각하며 눌러보니 줄줄줄... 우와 많구나. 이 많은 중에 내가 접해본 작가는 권여선 작가 정도.
음식에 곁들인 이야기는 친근하고 손이 쉽게 간다. 당연하게도 안 먹고 사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누구나 음식에 대한 추억과 사연이 있다. 공감할 지점들도 많다. 학급 어린이들과 매주 쓰던 주제글쓰기에서 인기주제 중 하나가 기억난다. '맛있는 이야기'라는 제목이었다. 좋아하는 음식이든, 만들 수 있는 음식이든, 가족이 즐겨먹는 음식이든 음식에 대한 아무 이야기나 쓰라고 하면 아주 사각사각 연필 소리가 신이 났었다. 읽을만한 글도 꽤 많이 나왔었고. 나 또한 몇 가지 음식 이야기는 낱말만 던져주면 몇천자쯤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나만 읽을 글일지언정.^^
이왕이면 재밌고, 오감이 자극되며 그 안에 작가의 인생과 통찰까지 들어있다면 더 좋겠지. 이 책은 그런 방향으로 쓰여진 책 같았다. 다만 독자(나)의 나이가 훨씬 많다보니 귀엽다거나, 기특하다거나, 응원한다 등의 마음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도 나름 좋은 감상이다. 동년배나 인생 선배의 이야기만 들으란 법은 없으니까. 경찰공무원이었다가 전업작가로 전향한 그의 이력도 흥미롭고 아직도 불투명한 진로 앞에서 흔들리는 그를 보며 내 자식과 그 친구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언젠가 장난 반으로 가족 톡에 "나중에 엄마가 죽거나 없다면 어떤 음식이 가장 생각날까요?" 라고 올렸더니 톡을 바로바로 보는 딸은 "난 비빔국수!" 라고 바로 올렸고 아들은 한참 후에 "난 곰탕!"이라고 대답했다.ㅎㅎ
이 작가의 소울푸드는 절친과 만나기만 하면 먹는 조개전골이고, 경상도에서 홀로 상경한 딸을 위해 엄마는 좁은 냉장고가 감당할 수 없게 김치를 보내주고, 작가는 미역국에 소고기 들어간 걸 어색하게 여긴다. 작가네 고향에선 간짜장에 당연하게 계란후라이를 올려 주었다.... 등등 글을 통해 작가에 대한 tmi도 알게 된다. 엄마에 대한 글을 읽다보니 나도 음식으로 엄마를 얘기하려면 할 말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팥시루떡을 무려 집에서 쪘던 엄마, 평생 그만한 걸 먹어본 적 없는 동지 팥죽, 나(딸)보다 아들(외손자)이 더 좋아하는 식혜, 나이 들어서야 참맛을 깨달은 엄마표 약과, 한천이 뭐야? 그런 걸 써서 만들었던 팥양갱 등등.
[라면] 꼭지에서 저자의 성찰에 공감했다. 인스턴트 음식의 대표주자인 라면을 보고 한계가 없는 요리라고 하는 말에 굳이 태클을 걸고 싶지 않다.
"그러니 라면 한 개를 먹더라도 작은 변주를 두려워하지 않기로 한다. 기쁨에도, 글에도, 삶에도 아직 남은 여백이 많으니까."
남은 여백이 많은 젊음이 부럽지만, 20대도 아니고 30대인 그들에게 젊음은 여유도 아니고 더한 절박함인 경우도 많다. 나도 굳이 그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보통사람도 그런데 창작자들은 더하겠지.
작가는 자신의 전직인 경찰 이력을 굳이 숨기지도 강조하지도 않았지만 그 시기의 경험이 그의 많은 것을 이루었음을 글 속에서 간간이 발견하게 된다. 특히 이태원사고 수습의 경험은 자극적으로 쓰지 않았는데도 파문을 남긴다. 그는 본격 경찰 이야기도 썼는데 독립출판이었던 그 책이 뜨면서 작가로 데뷔했다고 한다. 검색해보니 꽤 많은 책들이 나왔고 모두 경찰 경험이 그 바탕이 된 것 같다. 이 책에 가장 적게 들어간 셈이다. 다른 책들이 궁금해졌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음식들은 해장국 같은 오래된 음식들도 있지만 젊은이답게 불닭볶음면, 마라탕 등도 들어있다. 특히 불닭볶음면이 그렇게나 팔린 줄은 처음 알았네. 난 딱 한번 먹어본 음식이라서.ㅎㅎ 이런 종류의 책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새삼스레 입맛이 돌면서 낼 귀가길에 마트에 들러 장바구니에 담고 싶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음식 속에 표현한 그의 경험과 철학을 본다. 나이가 더 들면 색이 바뀔 수 있겠지만 지금의 색깔 그대로도 멋지다. 고민 속에서 어찌든 나아가고 있는 젊은이들, 특히 창작자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사람들에게 소울푸드를 내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수많은 '식당 서사' 문학들 또한 같은 맥락에서 탄생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