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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3월
평점 :
제목이 낯익은 걸 보니 무척 유명한 책이었다. 도서관에서 누가 방금 반납한 듯 북트럭 위에 있길래 집어들었다. 내용은 내 예상을 넘어섰다. 얼마전에 시각장애인 김한솔씨의 책 두 권을 읽었는데 이 작가님도 시각장애인이었다. 여성이란 점이 다를 뿐, 10대 때부터 발병하여 후천적 장애인 것도 같았다.
제목부터 작가님의 성깔(?)이 느껴진다.ㅎㅎ 어릴 적부터 한성격 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까다롭고 못된 성격이란 뜻이 아니고 자신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대우를 참지 못하고, 아닌건 아니라고 꼭 말하기 때문이다. 깊은 시골 집성촌에서 살던 어린시절의 이야기는 아주 옛날얘기 같았다. 작가님이 나보다 훨씬 젊으신데도 말이다. 장애가 없던 시절도 녹록치 않던 생활이었다. 엄마의 삶도 무척 고단했다.
서울 변두리에서 엄마 치마꼬리 붙잡고 고만고만하게 어린시절을 보낸 나는 드문드문 생각나는 장면들은 있지만 그리 강렬하지 않다. 이 작가님의 인생 이야기는 굵고 거칠고 진하다. 장애 이전의 어린시절부터 이미. 거기에다 십대에 실명에 이르는 질병이 덮쳤으니 엄마는 얼마나 기가 막혔으며 본인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하지만 숱한 상처들에 딱지가 앉아가며 지금까지 왔다. 내가 살면서 본 바, 인생이 완전히 공평하지는 않다. 하지만 쓴맛 사이에 단맛이 슬며시 들어있기는 한 것 같다. 그의 인생에도 슬픔 사이에 위로도 기쁨도 보람도 있어서 이토록 다채로운 책이 된 걸 보면 말이다.
가장 큰 수확은 그가 공모전에 입상하고 이 책을 출간함으로 작가로서 성공했다는 점이다. 나는 2년이나 지나 읽어봤지만 여전히 판매지수도 엄청나다. 내용의 화제성을 떠나 필력 자체가 무척 탄탄해서인 것 같다. 검색해보니 이후 한 권의 에세이가 더 있고, 세번째 책은 소설이다! 그 소설을 꼭 읽어보고 싶다.
어떤 서사든 인물이 등장하므로, 이 책은 그의 경험과 더불어 그가 만나왔던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해도 될 듯하다. 그의 직업이 마사지사인 만큼, 고객으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배우자를 먼저 보내고 문밖으로도 못나오며 오그라들어 살았던 할머니는 그에게 "담이 커지는 안마를 해주세요." 라고 부탁한다. 나도 은근 의존성이 큰 사람이라 이 할머니의 사정과 심리가 이해되었다. 담이 커지는 안마라니, 나도 작가님께 마사지를 한번 받아보고 싶네. 평생 한번도 받아본 적 없었는데....^^;;; 마사지사는 시각장애인 학교의 주력 직업교육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 길을 거부할 수도 있지만 작가님처럼 그길로 간 경우도 무척 좋아보였다. 유명 작가가 된 지금도 계속 하고 계시겠지? 그에게서 마사지 자체의 효과와 함께 꿀같은 쪽잠, 용기, 위안, 때로는 각성을 얻고 간 모든 고객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었다.
그 외에 장애인학교에서 만났던 엄마뻘의 언니가 아직도 챙겨주는 하염없는 사랑에도 눈물이 났고, 은사님과의 사연도 눈물겹다. 고향에서 살던 이들의 인생의 무게는 왜들 그렇게 무거운지... 인생의 고단함과 치열함을 다시 느끼는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기억도 못할 무심결의 말이라 할지라도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불편하거나 상처가 되는 말인지도 실감했다. 남의 불행에서 행복을 느끼라고 말하는 몰지각한 목사, 빨리 결혼해서 자식 낳아 시중들게 하라고 강권하는 눈치없는 할머니들 등등. 활동자원사님은 매우 선하고 좋으신 분인데도 그의 해맑은 발언이나 권유에 마음이 상하고, 그걸 느끼는 그분이 또 상처를 받아 잠시라도 불편해지기도 한다. 악의가 없더라도 그러하니, 사회 전체의 감수성이 더 높아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멋진 걸 얘기하고 마치겠다. "앞도 못 보면서 여길 뭐하러 왔누!" 라며 혀를 끌끌 차는 시선을 무시하고 멋진 여행을 다녀온 점. 또 탱고를 배워 춤의 맛을 만끽하고 있는 점. 그리하여 두번째 책이 여행 이야기인 것 같다. 그 책도, 그 다음 소설도 궁금하다. 책은 읽을수록 가지를 친다더니 진짜 그렇네!
인생은 많은 비율 지랄맞은 일들도 채워져 있지 않나. 내가 본 바로는 대부분 그렇다. 하지만 그걸 축제로 끌고 가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축제로 가는 길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남의 길을 조금 컨닝해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