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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라는 우주 - 찬란하고 아름다운 날들의 기록
오선화 지음 / 이상북스 / 2024년 11월
평점 :
이 책을 동네도서관에 신청했다. 연초여서 그런지 오래 걸려 책이 구입됐다는 연락이 왔다. 올해부터 책을 도서관에 의지하겠다고 결심한 터라 신중하게 책을 신청한다. (월 2권 제한이 있기 땜시) 근데 첫 신청이 이 책이었다니. 퇴직하고 이제 선생님 호칭에서 벗어나 학교 쪽은 쳐다보지도 않을 참인데. 더구나 청소년은 나의 대상이 아니었고, 앞으로도 아닐 거고, 아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던 그런 존재였는데. 난 무엇이 궁금해 이 책을 신청했을까.
페친도 아닌데 페북에서 작가님의 글이 눈에 띄었다. 이런 일을 하는 작가님의 마음이 궁금했다. 그 일이란 자칭 '청소년과 밥 먹는 사람' 이다. 상담사는 많지만 이렇게 삶에 뛰어드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선긋기를 잘하는 나로선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혼자만의 시간이나 공간을 침범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나로서는 작가님이 정해놓은 '새벽 2시'라는 시간제한이 너무 끔찍하다. 제한은 정해놓기만 했을 뿐 그 제한을 뛰어넘는 연락이나 돌발상황도 자주 발생한다. '통잠 자는 생활'이 그립지만 그래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작가님. '통잠'하면 수유 기간이 떠오른다. 아기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깨어 도무지 깊이 잘 수 없었던 그때. 통잠자는 게 소원이던 그때. 그게 인생 전체로 봤을 땐 길지 않았고 끝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런데 작가님은 '끝이 없는 수유 기간' 속에서 살고 계신 것 아닌가. 그런 마음이 외면하고 싶으면서도 궁금했다.
나에게 청소년의 이미지는 첫번째로 '시끄럽고 욕 잘하는 미성숙한 인간들' 이다. 어쩌다 중고등 하교시간에 같이 버스를 타게 되면 귀를 막고 싶고 내리고 싶다. 두번째는 '힘들고 불쌍한 아이들' 이다. 주로 부모들 때문이다. 요즘 부모들은 중간이 잘 없다. 자신들의 욕심과 고정관념으로 자녀들을 숨 못쉬게 압박하는 부류. 반대로 최소한의 필요한 관심과 돌봄마저도 나몰라라 하고 방치하는 부류. 그 사이 적정선을 지키는 경우를 별로 못본 것 같다. 극단적인 경우겠지만 부부상담을 받는 TV 프로그램 등을 보면 '저 틈바구니에서 자녀가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겠나' 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전자의 이미지로 그들 옆에 다가가지 않는다면 작가님은 후자의 이미지로 그들을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만나고 밥을 사준다. 방치하는 부모를 대신해 사고처리를 하러 동동거리며 쫓아다니기도 한다. 부모가 사랑의 울타리이긴 커녕 학대의 칼인 아이들에게 따뜻한 부모의 사랑을 대신 주기도 한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이 대사는 이제는 나이들고 평범해진 이서진 배우의 빛났던 매력을 떠올리게 하는 대사다. 작가님이 자청한 삶이기도 하다. 같이 울고 애통해야 하고 때론 가슴을 부여잡고 불안과 조바심을 견뎌야하는, 필히 아플 수밖에 없는 그 삶을 작가님은 기쁨과 선물이 있기에 계속 걸어간다고 말하고 있다.
죽겠다며 하루가 멀다하고 옥상에 올라가는 아이들이 이젠 살아가겠다고 약속할 때, 그 지옥같던 고통의 터널을 같이 건너준 아이들이 월급을 탔다며 후배들의 밥값을 보내왔을 때, 이젠 편안해진 미소와 사랑의 말을 전해줄 때, 그건 중독성이 있나보다.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을 다시 일으켜 또 다른 청소년을 만나러 간다.
나는 작가님이 나랑은 아주 다른 마음 구조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예쁘지 않은 아이들을 보고 예쁘다고 허허거리고, 어떤 경우에도 아이들을 믿으며 애타는 사랑만을 전하는 사람. 당연히 나랑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고. 사실 거의 그렇긴 하다. 하지만 책에는 이렇게 매끈한 면만 담기진 않았다. 소위 말하는 뒤통수(작가님은 아니라고 하지만 내 기준으로는 그런), 해도해도 안되고 한도 끝도 없는 아이, 배은망덕한 아이, 심지어 '인간은 악하구나'를 증명하는 아이. 이런 인간들이 어떻게 없겠는가? 작가님은 이것을 완전히 부정하진 않았다. 하지만 100의 하나가 가시라고 해서 나머지 99를 부정하거나 포기하면 어떻게 되겠냐는 것이다. 그 말에 난 설득되었다.
세상은 고통의 바다인 듯, 반백을 넘게 산 내가 알지도 못하던 참혹한 일들과 여러 종류의 아픔이 가득하다. 거기에 발가락 하나도 담그지 못하는 내가 있고, 그 안에서 헤엄치는 작가님 같은 분들이 있다. 내가 교직도 다 끝난 마당에 이 책을 왜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마음을 기억하겠다. 부끄러움을 알면서 살기 위해서라도 기억하고 응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