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
차인표 지음, 제딧 그림 / 해결책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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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표 작가의 책을 두 번째 읽었다. 쓴 순서로는 이 책이 첫 번째라 할 수 있다. 2009년에 <잘가요 언덕>이라는 책으로 먼저 나왔다. 이야기의 씨앗을 마음속에서 품고 굴리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10년도 더 전이니 이 책은 정말 오래 걸려 나온 책이다. 나는 차인표 씨가 작가라는 걸 겨우 재작년에 알았는데, 그가 이야기를 품고 살아온 지는 거의 30년이 되어가는 셈이다. 알게 된 계기는 이 책이다. 외국의 어느 대학에서 필수도서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역주행이 시작된 때. 얼마전 드디어 그의 책 한 권을 읽어봤다. 한 권 읽으니 자동적으로 다음 책으로 손이 뻗어갔다. 아마도 <인어 사냥>까지 쭉 이어갈 듯하다. 그것까지 읽으면 끝인데, 작가님은 차기작을 집필 중이시려나.^^

일제강점기라는 참혹한 시대와 위안부 징용이라는 만행을 다룬 책인데도 너무나 결이 고운 느낌이다. 조심조심 예쁘게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듯하다. 그 안에 백성들의 고달픈 삶과 참혹한 죽음과 고통스러운 부상과 비극으로 끝난 사랑이 들어있음에도 그렇다. 인간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굳게 믿는 사람이 괴롭고 힘든 이야기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조심조심 들려주는 것 같다. 이 또한 차인표 스타일일까. 나는 이런 느낌만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느낌도 좋았다. 접근 방법은 다양한 것이 좋으니까. 이 책은 어린이들도 고학년 정도면 충분히 읽을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역사동화가 많이 출간되었는데, 그중에 어떤 작품은 이 책보다 더 두껍고 어렵다. 그러니 이 책은 역사동화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어도 무리가 없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대로가 더 좋긴 하다. 동화로 나왔으면 훨씬 덜 읽혔을 지도 모르니까....

제목을 말하자면 구판 제목인 <잘가요 언덕>도 좋다. 책을 읽어보면 그것이 이 책의 중요한 배경인 것을 알 수 있다. 개정판 제목인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도 좀 길긴 하지만 좋다. 순이와 용이의 사랑의 대화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고뇌하는 일본군 장교 가즈오가 나오는 것도 이 책을 입체적으로 만들어준 요인 중 하나다. 그가 자원하여 입대하고 조선에 투입되어 몇 년이 흐르는 동안 처음의 공명심과 의지가 점점 회의와 곤혹스러움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중간중간 삽입된 그의 편지에서 볼 수 있다. 그의 어머니께 보내는 그 편지에는 군인으로서 발설하기 어려운 그의 인간적인 고뇌가 점점 스며들고 있으며 편지의 끝에는 꼭 그림이 한 점씩 그려져 있는데 이것도 작품에서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잘가요 언덕>이 있는 이 마을은 백두산의 ‘호랑이 마을’이다. 쉬지 않고 땀흘려 일구어야 먹고 살 수 있는 곳이지만 그들을 품어주는 자연에 대한 묘사는 너무나 아름답다. 거기에 촌장님의 손녀 순이가 살고 있었고, 백호를 잡기 위해 마을로 들어온 황포수와 그의 아들 용이가 있었다. 둘의 애틋한 사랑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그리고 누구나 예측할 수 있듯이 위안부로 징용되는 소녀가 바로 순이다. 순이는 이야기 안에서 할아버지를 잘 모시며 밥을 짓고 나무를 하고,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떠서 건네고, 마을에 머무는 사람에게 밥을 지어주는 따뜻한 존재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중국으로 도피하는 부부가 떨구고 간 아기 ‘샘물이’를 업어 키우며 보살펴주는 모습이다. 특히 눈물샘이 막힌 샘물이를 위해 날마다 눈을 꾹꾹 눌러주는 것을 잊지 않는 모습.

중반쯤 가즈오가 인력 동원 명령 공문을 받으면서 이야기는 비극으로 휘몰아친다. 순이를 구해내기 위한 가즈오의 전략, 그걸 꿈에도 모르는 용이의 전략. 두 전략이 엉키면서 숨을 멈추고 보게 되는 활극들이 펼쳐진다. 이런 부분을 읽을 때는 드라마로 만들어도 몰입감이 대단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산을 누비는 포수들이 아니면 접근하기도 어려운 그 대자연의 모습을 잘 구현하는 게 관건이겠다.

용이와 순이가 함께 하늘을 올려다볼 때, 순이는 엄마별을 얘기했었다. 호랑이에게 엄마를 잃은 용이는 그 별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만난 그들은 또 별을 이야기한다.
“난 네가 백호를 용서해 주면, 엄마별을 볼 수 있게 될 것 같아.”
“모르겠어. 용서를..... 어떻게 하는 건지.”
“상대가 빌지도 않은 용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195쪽)

총을 맞아가며 그들은 또 눈으로 별을 이야기한다.
‘용이야, 우리, 다시 만나자.’
‘그래, 꼭 다시 만나자.’
‘엄마별에서 기다릴게.’
‘그래, 꼭 찾아갈게.’ (223쪽)

순이를 구하려던 사람들은 이렇게 모두 실패했고 책은 이제 몇 장 남지 않았다. 순이가 징용된 이후의 일은 책에서 다루지 않았다. 아주 먼.... 훗날 고향 찾아 필리핀에서 온 ‘쑤니 할머니’가 뒷이야기에 나올 뿐이다. 어떤 사람들의 삶과 사랑은 이렇게 기구하다.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은 이렇게 한 별을 바라보고 있다는 믿음만으로 그 사랑을 평생 지키며 산다. 그래서 더 애틋한 사랑. 개정판의 제목은 이렇게해서 나온 것 같다.

아픈 역사를 그만의 느낌으로 색다르게 다룬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용서든 응징이든 그 안에 담긴 작가의 가치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그 아픔을 이렇게 오래 품고 다듬어 작품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가 닿지 않을까. 그것을 위해 고민한 마음이 느껴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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