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하를 찾아서 초승달문고 55
차영아 지음, 다나 그림 / 문학동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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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아 작가님의 책은 몇 년에 한권씩 나온다. <쿵푸 아니고 똥푸>로 혜성같이 등장하신 것에 비하면 느린 발걸음이라 느낄 수도 있다. 작가님 안의 그 아이를 빨리 세상에 내어놓으려 등떠밀지 않고 조용히 옆에서 귀 기울이며 함께 걸어간 기록 같다. 그 걸음은 느리고,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돌아가기도 하며 그러다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님은 그 서툴고 작은 발걸음을 세심히 살피며 함께 걸어간다.

그렇기에 책에는 '작은' 아이가 등장한다. 세상의 풍파에 맞서기엔 너무 부족해 보여 불안한 아이. 하지만 독자들은 그 아이 안의 신통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그것도 세상에 비한다면 보잘 것 없다. 그래도 아이가 용기내어 이 책의 표지그림처럼 걸음을 내딛고 한 개의 코스를 돌아서 도착했을 때, 앞으로 무수히 남은 코스들을 세어보며 한숨쉬기보다 그 완성한 코스에 박수치며 함께 기뻐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고보면 동화의 문법에 완벽히 충실한 책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은 130쪽 정도의 저학년 동화다. 단편은 아니다. 작고 겁 많은 아이 상이와 애착인형 하하의 이야기다. 시점으로 치면 초등학교 입학식을 바로 앞둔 시점이다. 상이는 지금 입학이 두렵다. 잘할 자신이 없고, 하하를 데리고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론 유치원도 개인 인형을 지참할 수 없는데, 워낙 사정이 그러하니 상이는 예외로 해주신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초등학교까지 그럴 순 없다. 엄마는 '어린이가 될 시간' 이라며 상이를 설득한다.
"하하야, 우리 이제 어린이가 될 시간이래!" (19쪽)

어린이 독자들은 상이와 하하의 모험에 집중하겠지만 나같은 엄마 독자, 나이든 독자들 눈에는 상이 엄마의 사려깊은 애씀이 보인다. 이야기 중에 자세히 설명하진 않았지만 상이는 심장에 구멍이 난 채로 태어났고 100일도 안되어 큰 수술을 받아 아직도 큰 흉터가 가슴에 남아있다. 유치원에서도 뭐든 느리고 서툴렀다. 거침없는 아이들 틈에 끼어들지 못했고 우는 날도 많았다.

엄마가 얼마나 속상하고 애탔을까. 무엇보다 얼마나 불안했을까. 하지만 그 불안을 아이 앞에서 표출하지 않는 것이 양육자의 기본이자 의무이다. 이걸 못해서 함께 힘든 부모-자녀 관계를 너무나 많이 보았다. 그런 관계는 필히 주변 사람들도 함께 힘들게 한다.ㅠ 상이 엄마는 다그치기고 원망하기보다 용기를 심어주는 방법을 선택한다.
"잘 못하는 게 당연해. 학교는 잘하려고 가는 게 아니야. 배우려고 가는 건데?" (22쪽)
"똑똑, 용감 씨. 여기 있는 거 다 알아요. 어서 나오세요." (24쪽)
이처럼 부드럽고도 단단하게 말이다. 아이를 다 키워버린 나에게도 다가오는 걸 보니 이 책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딴 얘기가 길었다. 이 책은 이런 부분에 많이 할애하지 않았다. 다만 스쳐가듯 있어도 눈에 보일 뿐이다. 이 책의 대부분은 상이와 하하의 모험 이야기다. 입학하러 가는 날 아침, 이불 동굴 속에서 연결된 멋진 초원에서의 신기하고 통쾌하고 신나고 아슬아슬하면서도 따뜻한 모험 이야기. 그 안에서 상이는 하하를 잃었고, 또다시 찾았고, 그 사이에 다른 친구들도 만났다. 가장 인상적인 만남은 '가장 용감한 뿔' 이라는 누 대장과의 만남이다. 그 대장은 크지도 강하지도 용감하지도 않았다. 다만 '용감해야 할' 뿐이었다. 둘은 서로를 격려한다. 상이는 대장에게 엄마가 늘 자신에게 하던 말을 들려주었고 대장은 상이를 '깊은 상처를 이기고 살아남은 자' 라는 이름으로 불러주었다.
그 외 코끼리, 원숭이, 악어 등이 등장해 흥미진진한 모험을 완성한다. 마지막 이불동굴로 돌아오며 확인한 괴물의 정체는........

마지막 삽화에서 상이는 초등학교 정문을 들어서고 있다.
'가슴을 펴'고 말이다.
이 장면이 많은 어린이 독자들에게 용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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