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이 작가님의 단편집이 도서실 신간코너에 꽂혀있길래 집어왔다. 역시 재미있고 잘 읽히네 생각하면서 읽다보니 전에 읽어봤던 이야기다. 어디서 읽었더라 생각하면서 읽다가 마지막 작품에서야 책 제목이 생각났다. 사료를 드립니다! 10년도 더 전에 읽었던 책이다. 그때 참 좋아서 추천 목록에도 넣었던 기억이 난다.개정판인 이 책은 시대에 어색하지 않게 세부 내용들을 다듬었다고 하는데 오래 전에 읽은 거라 달라진 부분이 딱 보이진 않는다. (그만큼 자연스럽게 다듬었다는 뜻이겠다) 그리고 표제작이 달라졌다. 초판에선 [사료를 드립니다]였고 이번 책에선 [건조주의보]이다. 이번 표제작이 책 제목으로는 더 나은 것 같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좋은 작품을 꼽으라면 나는 [사료를 드립니다]!처음 읽었을 때도 참 좋았지만 적어놓지 않았으니 이번 기회에 적어보려고 한다. 첫작품 [건조주의보]는 가족 안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건우가 ‘건조증’이라는 공통점을 찾고서 기뻐하는 이야기다. 공부를 아주 잘해서 부모님의 기대와 시중을 한몸에 받는 고등학생 누나는 안구건조증, 엄마는 구강건조증, 아빠는 피부건조증. 건우는 어떤 건조증을 발견했을까? 건우가 느끼는 소외감은 심각한 것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다. 따라서 이야기도 귀여운 느낌으로 읽었다. 하지만 귀여운 수준이 심각한 수준으로 바뀌는 것도 한순간이니. 같은 상황에 있는 아이들에게 큰 공감을 줄 만한 이야기다.[닮은꼴 모녀]의 민지네 엄마는 학습지 선생님이다. 교실에서 글쓰기 발표를 하던 날 알게 된 충격적 사실. 몰래 좋아하던 영민이가 엄마의 방문 학생이고, 영민이는 그 선생님(민지 엄마)를 매우 좋아하고 존경한다는 사실. 그런데 영민이가 보는 선생님과 민지가 보는 엄마는 과연 동인일이 맞나?ㅎㅎ 남의 자식 앞에서 멋진 척하기는 쉽다. 이상적인 말을 하기도 쉽다. 하지만 내 자식 앞에서는 본능과 욕심이 앞서는 법....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이 작품을 읽어보면 그중 한쪽만 그사람의 모습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요술 주머니]는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봤을 행운을 그렸다. 누군가를 도와주었는데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어서 요술이 들어간 보답을 받는.... 이 작품에선 그게 요술 주머니. 화수분처럼 그 안에 넣은 것을 불려주는 주머니였다. 그런데 효과는 단 한 번. 지유는 그걸 모르고 섣불리 넣은 것을 후회하지만..... 조금 결이 다른 이야기지만 ‘세 가지 소원’ 이야기와도 공통점이 있다. 행운과 행복의 관계는? 이렇게 우리는 우리 안의 요술주머니 판타지를 정돈해본다.[이상한 숙제] 이 작품은 전에 읽은 것보다 더 강하게 느낌이 왔다. 아마도 그동안에 내 경험과 생각이 조금 더 쌓인 것이겠지. 해빈이네 선생님은 ‘아름다운 사람’을 찾으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이리저리 찾아도 어려웠던 그 숙제는 어느날 예기치 못한 곳에서 예기치 못한 사람을 만나면서 해결되었다. 장애인을 돕는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일 수도 있고 장애인이 아름다운 사람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동안 전자에 더 초점을 맞춰온 것은 아닐까. 장애인의 마음은 서툴고 일반상식과 다른 행동 때문에 묻히기가 쉽고. 그런 점을 해빈이의 눈으로 보여준 이 작품이 왠지 고맙게 느껴진다.마지막 [사료를 드립니다] 이 작품이 가장 생생하게 기억난다. 장우네는 유학을 떠나며 장군이를 보낼 곳이 마땅치 않았다. 더구나 장군이는 대형견(시베리안 허스키)이었다. 임시보호자를 구하는 광고에 두 아이의 아빠라는 사람이 지원을 했고, 여러 가지 주의사항과 신신당부와 함께 장군이를 보냈다. 사료도 택배로 보내주기로 했고, 아저씨는 언제든 보러 와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급한 사정 때문에 돌아온 장군이가 찾아간 곳에 장군이는 보이지 않았고 열악한 상황만 펼쳐져 있었다. 특히 꼬박꼬박 보내준 사료를 동네 수퍼에서 다른 생필품으로 바꿨다는 대목은 모든 견주들이 부르르 할 만하다. 우리 딸만 해도 개 먹이는 거 엄청 따지거든.... 하지만 장우는 또다른 사실을 발견하고, 눈물을 삼키며 돌아선다. 이 대목이 슬프면서도 대견하고 뭔가 희망차기도 하고 그랬다. 그래서 난 이 작품이 가장 좋았나보다.『장군이가 아이들과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한눈에도 장우네 있을 때보다 여위고 털이 거칠어진 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썰매를 끌며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던 자기 조상들처럼 늠름해 보였다. 아이들을 지키는 든든한 호위무사 같기도 했다.』반려견을 다룬 작품들이 무수히 많지만 단연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10여년 만에 다시 읽은 책이지만 새롭게 좋았다. 이제보니 새롭게 나온 역사소설이 있네. <거기, 내가 가면 안돼요?>를 잇는 작품인 것 같다. 동화와 소설을 넘나드는 이금이 작가님의 필력을 믿고 그 책도 읽으러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