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 인간 이시후 창비아동문고 342
윤영주 지음, 김상욱 그림 / 창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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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레벨 업>을 읽고 이 작가님의 후속작을 기다리신 분이 많을 것 같다. 첫 작품이 화제작이서 그런지 이 책도 메인화면에 노출이 많이 되어서 아 나왔구나 했다. 첫 책의 후속편인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건 아니고 새로운 작품이다. 소재는 제목에서 바로 알 수 있다. 냉동인간.

냉동인간을 소재로 잡은 작품들이 이미 꽤 나왔다. 아직은 실현되지 않은 기술이니 이것은 공상과학이 맞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이미 우리가 그 속에서 살고있는 것처럼 현실 같았다. 지구 환경이 매우 악화되어 돔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배경인데도 불구하고. 그 돔은 1지구부터 64지구까지 있다. 이 번호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시후가 냉동에서 깨어난 1지구(센트럴)는 부족할 게 없는 최고의 환경을 가졌다. 그러나 그것은 ‘1’지구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다면 64지구의 모습은 어떠할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이겠는가?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래에 그것이 극복되리라 기대하기 어려우니, 이 설정은 매우 현실적이라 하겠다.

깨어난 시후는 자그마치 40년이 흘렀다는 사실에 놀란다. 동생 정후가 50살이라니... 그리고 엄마 아빠는? 할머니는? 궁금하지만 냉동인간 기업 프로즌에서 나온 직원은 가족에 대한 설명은 회피하고 다양한 검사 등을 하느라 1주를 보낸다. 시후를 모델로 광고영상을 찍는 일도 빼놓지 않는다. 드디어 동생 정후가 데리러 왔다. 50살 아저씨가 된 동생 정후는 시후를 반기지 않을뿐더러 눈도 제대로 마주치치 않는다. 이때부터 불길하다. 시후가 깨어난 일은 기뻐할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자신의 선택으로 40년을 보낸 것도 아닌 시후는 얼마나 당황스럽고 억울할까?

그런 일은 일어났다. 정후의 집은 돔들을 지나가며 도무지 나타나지 않았다. 44지구에 이르러서야 정후는 집을 향해 차를 몰았다. 44지구라니.... 예상 밖이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시후는 긴장한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후와 정후를 따라온 딸(시후에겐 조카) 보라 뿐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것은 예상했지만 엄마, 아빠는? 시후는 충격적인 결말을 듣는다. 그리고 깨닫는다. 그 모든 비극이 자신 때문이라는 걸. 자신을 유지하는 데에 엄청난 희생이 따랐다는 걸. 냉동인간 회사들을 모두 통합하여 독점기업이 된 프로즌은 계속해서 비용을 요구했고 여러 이유를 대며 그 비용이 계속 상승했으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일은 양쪽 모두에게 불행하다. 평생을 거기에 매달려 힘들게 살아간 가족들, 그리고 냉동인간 본인.... 자신을 위해서 희생하라고 요구한 적 없다. 내가 원한 일이 아니다. 가족이 날 너무 사랑해서 설득했던 일이란 말이다. 그런데 깨어나서 보니.... 아 상상만 해도 너무 싫다. 이 상황을 보자마자 나는 바로 이 기술에 대한 반대론자가 되었다. 이것이 작가님의 의도인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여기까지는 전반부고 정후와 그의 딸 보라가 사는 집에 시후가 들어와 살면서 보라가 다니는 학교에 함께 다니며 벌어지는 일이 후반부를 차지한다.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이 있었고 갈등도 있었으나 그걸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꽤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미래를 다루었지만 현실동화처럼 느껴지는 서사였다.

4학년 사회교과서에 1965년의 만화가 한 컷 실려있었다. ‘2000년대의 이모저모’라는 제목으로 미래에 대한 상상을 나타낸 만화였는데, 그중 대부분이 지금 실현되어 있었다. 달나라에 여행을 간다... 이런 것만 빼고는. 아이들과 함께 구석구석 살펴보며 은근히 놀랐다. 그렇다면 지금 “냉동인간 기술로 불치병을 고친다.” 이 상상은 미래에 실현될까? 나는 그 만화가만큼 미래에 대한 감각이 있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은 그만 발전해도 좋을 것 같다. 앞으로의 과학은 그저 망가진 지구를 고치는 데 사용되면 좋겠다. 이것이 그저 단순한 내 생각이다.

AI 기술로 수업을 바꾸고, 심지어 창작의 영역인 작곡이나 글쓰기도 해준다는데 나는 그게 왜 좋은지 모르겠다. 시간을 아껴서? 그 시간을 아껴서 뭐할라고 그러는 걸까? 이렇게 싫어해서 나는 시대에 뒤떨어진 인간이 되어간다. 예를 들면 이 글도 거기에 넣었다 빼면 기름바른 장어처럼 쭉 빠져서 나올 텐데 그걸 안해....

시후의 자작곡 제목이 ‘멜팅’이다. 영어인 그 제목이 썩 맘에 들진 않았지만 냉동기업 프로즌과 반대 의미를 사용한 점에 동의하고 공감한다. 인간성을 상실해가며 하는 성장, 발전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사회는 성장에 열광하기보다 머리가 돌진하며 떨어져나가는 꼬리를 살펴야 한다. 우수수수..... 떨어져나가는 소리가 안들리십니까? 뒤늦게 발견한다면 때는 늦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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