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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팔이 소녀의 반격 ㅣ 다산어린이문학
엠마 캐롤 지음, 로렌 차일드 그림, 노지양 옮김 / 다산어린이 / 2023년 6월
평점 :
표지에 있는 한 소녀는 '성냥팔이 소녀' 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눈빛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제목도 그런 점을 강렬하게 시사한다. 성냥팔이 소녀의 '반격'이라 하니 말이다. 어떤 반격일까.
일단 우리가 아는 안데르센 동화의 '성냥팔이 소녀'는 가난, 슬픔, 불쌍함의 대명사다. 소녀는 추운 겨울 밤, 성냥을 거의 팔지 못해 집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밤길에 남아있다. 소녀가 창문으로 넘겨다본 가정의 모습은 따뜻하고 배부르고 안락한 곳이지만, 지금 소녀는 춥고 배고프고 외롭다. 소녀는 팔던 성냥으로 잠시의 작은 불이나마 켜본다. 성냥불이 보여주는 환영에서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는 소녀도 사랑받았었던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소녀는 그렇게 밤길에서 할머니의 뒤를 따라갔다.
이 동화의 의도도 당시 성냥 관련 종사자들, 특히 아동노동의 실상과 사회적 불평등을 고발하거나 한탄한 것일수도 있지만, 시대 배경을 모르고 읽었던 어린 시절의 나에겐 너무 가련하고 불쌍한 이야기일 뿐이었다. 이 책은 그 동화를 실화와 결합해 아주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쓴 이야기다. 그 실화란 19세기 후반 영국의 '브라이언트 앤 메이' 성냥 공장의 파업 사건을 말한다. (이 동화를 읽고서야 그 사건을 알게됨....)
하지만 실화기반이라고 해서 다큐처럼 쓰여진 건 아니고, 동화의 맛이 잘 살아있는 작품이다. 일단 주인공 캐릭터가 아주 매력적이고, 적당히 환상성도 들어있다. 그건 '성냥개비의 마법'이었다. 이 마법은 주인공 브리디(성냥팔이 소녀)가 간절히 원하던 순간으로 브리디를 인도했지만, 원작에서처럼 슬픈 환영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브리디를 굳세게 해주었다고 할까.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었다고 할까.
내가 잘 몰랐던 성냥 공장의 실화... 그건 끔찍한 근무 환경에서의 엄청난 착취였다. 근무시간은 살인적이었고 유해물질(성냥머리의 원료였던 백린)은 근무자들의 신체에 치명적인 이상을 일으켰다. 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던 건, 그 한푼이라도 벌지 못하면 가족을 부양할 수 없기에.... 왜 세계 어느 곳에든 이런 일이 있었을까.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은 많은 사례들이 있었지.
결국 연대하고 맞섰기에 그들은 바꿔낼 수 있었다. 엄청난 걸 요구한 것도 아니다. 건강을 해치지 않는 환경, 적절한 근무시간, 현실적인 임금 정도였다. 그것도 인간의 선의에 기대해서는 절대 얻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합리적으로 조직하고 압박해야만 얻어낼 수 있었다. 성냥팔이 소녀 브리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애니의 기고가 언론을 움직였다.
인간 세상이라는 게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살려면 싸워야 된다니.... 싸우지 못해 착취로 즙짜여진 인생, 싸우다 못당해서 죽어간 인생.... 그런 피로 다져진 바닥에서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생. 참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혹자는 인간 전체를 혐오하는 걸 경계해야 된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때 그런 유전자가 따로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욕심이 죄를 만들지만 욕심은 누구에게나 잠재돼 있는 것이므로.
결국, 누군가의 욕심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지 못하도록 단속하는 시스템을 부단히 합의하며 만들어가는 게 정답일까.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인류는 그걸 잘 만들어오고 있는 걸까. 이 성냥팔이 소녀 당시보다는 나아진 것 같은데 과연 나아진 게 맞을까. 앞으로 더 좋아질 가능성은 있을까.
이 책은 5,6학년용으로 분류되어 있다. 중학생들이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 문학으로 읽어도 충분히 괜찮고 사회 교과와 관련하여 읽고 이야기 나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