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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퍼즐
김규아 지음 / 창비 / 2024년 9월
평점 :
김규아 작가님의 만화를 쭉 따라 읽다가 여기까지 왔다. 이 책은 2024년작. 나온지 몇달 되지 않았다. 김규아 작가님 책의 일관된 느낌은, 만화지만 비슷한 쪽수의 동화나 소설보다도 더 알차고 풍부하게 서사와 메시지가 들어있다는 점이다. 그중에 개인적으로 더 좋고 덜 좋은 순위는 있지만 어쩌면 한결같이 다 좋은지. 이야기와 그림이 모두 다.
이 책에도 여러가지가 잘 짜여져 들어가 있다.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고학년 정도 아이들의 친구관계와 갈등이다. 특히 부정적 에너지를 뿜어내며 이간질하고 관계를 망치는 빌런이 있을 때. 두번째는 자존감이다.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솟아오를 수 있는 건강한 자존감. 이게 있고 없고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세번째는 다양성이다. 앞의 자존감과도 관련이 된다. 남과 다른 나의 특성을 긍정적으로 보기, 나와 다른 남의 특성을 존중하기.
시간적 배경은 가까운 미래다. 2038년이라고 하니 작가님 집필 시점 15년 후가 아닐까 짐작된다. 그래서 현재에 없는 것들이 등장하되, 시대를 뛰어넘은 엄청난 상상력을 동원한 것들은 아니다. 예를들면 교실에는 AI의 역할이 좀더 커졌고(티봇이 여러가지를 체크하고 지원한다. 등교 시 학생들 컨디션 체크도 하고 안전관리와 청소도 하고 등등) 주인공 은오는 한쪽 팔이 로봇팔이다. 은오와 단짝친구 수아는 학교 끝나고 함께 잼잼마켓에 가서 간식을 사먹는 시간을 무척 좋아하는데, 아이들이 과자를 디자인하고 무인기기가 제조해주는, 재미와 맛을 모두 즐길 수 있는 가게다.
이런 배경들 중 서사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은오의 로봇팔이다. 은오는 여섯 살때 교통사고로 오른팔을 잃었고, 이후로 로봇팔을 달고 살게 되었다. 감각은 없지만 움직임은 가능한 보조기구다. 이런 기술은 이 책의 설정처럼 빨리 발전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안경이 없다면 나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다. 보조기구 차원에서 보면 나 또한 은오와 같은 선상의 장애인인 것이다. 이런 신체 보조장치들은 빨리 발전하고 보급되면 좋을 것 같다.
은오는 사고때의 기억이 없지만 굳이 그 과거를 억누르려 하지 않고, 로봇팔에도 적응했으며 남에게 감추려 하지도 않는다. 친구들도 다 알고 인정하며 함께 야구도 하는 등 잘 어울려 지낸다. (은오는 홈런 타자!) 문제는 지빈이가 전학 오면서부터 시작된다.
지빈이는 첫눈에도 매우 특이했다. 종이봉투를 뒤집어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엄청 까칠했고, 자기소개를 이렇게 했다.
"내 얼굴에 화상자국이 심해서 보기 불편할 거야. 나도 보여주기 싫고. 봉투는 건드리지 말아 줘."
반 친구들은 은오와 그랬듯이 지빈이의 다른 점도 존중하며 잘 받아들여 지낸다. 그런데 지빈이는 뭔가 심상치가 않다. 잘해주려는 아이들이 순진해 보일 만큼.
왜 그랬을까. 봉투 속 보이지 않는 지빈이의 표정은 무엇일까. 얘는 왜 은오를 타겟으로 잡았을까. 지빈이는 교묘한 이간질과 약자 코스프레+선심쓰기로 결국 은오를 고립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러니... 쉽지 않다. 빌런에 동조하지 않기 위해선 순진한 선의보다 때론 냉정한 판단력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은오의 단짝친구 수아, 한결같이 호의적이던 재우와도 멀어지게 된다. 은오 곁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아주 공교로운 일들이 겹치고 꼬였지만 누구도 그것을 차분히 풀어 진실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은오가 망가질 위기다. 누구도 그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은오는 그 어려운 것을 해냈다. 엄청난 의지력을 가진 특별한 아이도 아닌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견뎌냈고 실마리는 풀려갔다. 친구와 단절되었을 때, 그래도 은오 옆에는 누가 있었다. 밝고 현명한 가족이. 그중에서도 할머니. 할머니가 계셨기에 가능했다. 엄마 아빠도 좋은 분들이었지만 할머니라는 다리가 없었다면 제 역할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할머니는 사고 이후부터 은오네와 함께 살며 은오를 돌보았다. 따뜻하고 섬세한 분이면서도 동시에 쿨하고 독립적인 분이다. 은오의 심리적 위기에 같이 동요하지 않고 감정을 처리하고 힘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잔소리와 설교 없이 인생의 중요한 것들을 알려주신 할머니. 퍼즐을 좋아하시는 할머니. 퍼즐의 진리를 알려주신 할머니.
"오, 우리 아가. 남들이 너를 보고 어떤 얘기를 하든 그 무엇도 정답이 아니야."
"퍼즐 조각은 말이야, 이 모양 그대로 이 자리에 딱 알맞아. 그래야 전체 그림이 완성되지."
"사람도 마찬가지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세상이 완성되지."
이 책의 제목인 <너와 나의 퍼즐>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굳게 선 어른의 존재는 얼마나 귀한가. 나는 이런 어른이 못 되어보았다. 할머니가 된다 해도 안될 것이다. 아 그러고보니 15년 후면 이분과 비슷한 나이가 될테니 이분은 내 또래라 할 수도 있겠구나. 어쩐지 김광석을 즐겨 들으시더라니.^^ 어른도 흔들리고 아이들은 더 흔들리는 시대. 상처의 파장이 더욱 커지는 시대인 것 같아 염려스럽다. 우리 은오는 잘 이겨냈지만.
마지막으로 지빈이. 지빈이의 결말까지 말하면 너무 남김없이 말하는 것 같아 여기까지만. 은오에게 주어졌던 힘이 지빈이에게도 주어지길. 그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이 책은 환한 작품이다. 모든 아이들은 여기에 나왔던 누군가일 수 있다. 이 책이 아이들에게 다가가 할머니가 주셨던 그 힘과 생각의 깊이를 줄 수 있길. 자신을 성찰하고 단단해질 수 있길. 그래서 무척 권하고픈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