옜다, 호랑이 시루떡 한울림 꼬마별 그림책
표영민 지음, 이형진 그림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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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그림에 눈이 즐겁고,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의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고, 그 '아는 맛'과 냄새까지 느껴진다면 오감을 제대로 자극한 그림책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사실 떡을 별로 즐기지 않는데, 한조각만 맛보고 싶다고 손을 내밀고 싶어진다.

'옛날옛적' '할머니'가 나오는 그림책이다. 첫장에서 팥죽을 쑤고 계시니 영락없이 팥죽할머니가 연상되는데 딱 그렇지는 않다. 새벽에 부지런히 만든 푸짐한 음식을 이고 장터에 가시는 할머니를 고개에서 만나 "어흥!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호랑이를 보면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에서의 불쌍한 어머니가 생각난다. 하지만 여기서의 할머니는 그런 불쌍한 캐릭터가 아니다. 호랑이에게 떡, 만두, 잡채, 팥죽, 곶감 다 털려놓고도 툭툭 털며 "어차피 장에 가긴 틀렸으니 우리집에 가자꾸나. 먹고 싶은 거 다 해주마." 하시는 여유있고 손 큰 할머니다. 문제는 호랑이 녀석의 자존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을 뿐.

하지만 한 번 맛본 맛의 신세계를 어찌 잊으랴? 호랑이는 그만 시름시름 앓게 되었고, 보다못한 동물들이 들쳐메고 할머니께로 데려간다. 자, 지금부터가 '호랑이 시루떡'의 과정이다.

앞에서 얘기한 두 옛이야기 말고도 언뜻언뜻 다양한 옛이야기를 버무린 작가의 재치가 돋보인다. 떡고물로 이용할 흑임자, 완두콩, 팥은 다리 다친 제비가 물어다준 씨앗으로 재배한 것이라나? 시루떡에 곶감까지 넣네? 여기선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가 살짝! 이런 걸 아이들과 함께 찾아가며 읽는 재미도 좋을 것 같다.

시루에 얹어 찌는 장면에선 어릴 적 엄마 생각이 났다. 우리집엔 엄마가 늘 반들반들 닦아두던 시루가 있었다. 간식이 귀했던 시절에 엄마가 쪄주던 팥시루떡은 최고였지. 지금 생각해보면 세상에, 엄마는 그런 걸 집에서 어떻게 했던 걸까? 솥과 시루 틈새에 밀가루 반죽 붙이던 기억이 새록새록한데 그 장면도 이 책에 나와있어 반갑!

이리하여 온갖 맛난 떡고물에 늙은 호박고지로 줄무늬까지 만든 호랑이 시루떡 완성! 호랑이의 반응은 과연?
"이리하여 쓰러진 호랑이도 벌떡 일으킨다는 호랑이 시루떡 이야기 끝이로세!"

동물들의 입에 (남의 입에) 먹을 것 넣어주기 좋아하는 손 큰 할머니와, 그 맛있는 걸 함께 나누고 싶어하는 동물들의 이야기가 한 판의 축제처럼 신나고 정겹다. 요즘같이 춥고 어두운 세상에선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거겠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인간이라는 건 알고는 있었지만 그 탐욕과 이기심과 잔인함의 끝은 어디인가. 새삼 힘들어지는 마음에 잠시 휴식을 주는 밝고 느슨한 그림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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