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왜왜 동아리 창비아동문고 339
진형민 지음, 이윤희 그림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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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나온 진형민 작가님의 동화에 이윤희 작가님의 그림. 만족도 최상이다. 게다가 매우 크고 무거운 소재와 주제를 담았다. 섣불리 담았다가는 망하기 십상인. 하지만 무엇보다 시급하여 계속 말해야하는 주제. 기후위기와 환경, 개발의 딜레마를 품고 있는 작품이다.

남녀 친구들의 우정과 살짝 설레는 마음도 담겨있지만 자연스럽고 적절하다. 연애사에 초점을 맞춘 최근 동화를 하나 읽어봤는데 실망을 많이 했다. 너무 말초적이어서. 연애사도 인생사의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어린 시절에 '사귀는 것' '커플' '고백' 이런 거 자체가 목적은 아니잖아? 자연스럽게 생기고 쌓인 감정을 곱게 키워나가며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가 다른 주된 서사와 함께 적절히 어우러져 있으면 난 그 작품을 매우 좋게 본다. 하지만 마치 커플이 생의 전부인 것처럼 주인공과 주변인들이 함께 몰두하는 작품을 만나면 짜증이 난다. 그러잖아도 이성적 사고보다 감각추구가 앞서는 아이들이 많은데 동화까지 그걸 부추길 필요는 없잖아?

이 작품에 해당되지 않는 쓸데없는 말이 길었다. 이 작품은 '용해시' 라는 산과 바닷가에 접한 지방도시가 배경인 것 같다. 거기에 젊은 시장 후보가 예상 외의 선전으로 표를 얻어 당선이 됐다. 그의 딸 록희가 주인공이다. 록희는 눈에 뜨일 것 없는 아주 평범한 아이다. 시장 딸로 알아보는 것도 싫어서 같은 생각인 할머니와 둘이 아빠랑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다.

도입의 소재는 동아리다. 제목도 그거잖아. 왜 그런 동아리가 탄생했는지 배경설명이 필요하지. 록희네 학교는 자율동아리를 운영한다. 학생들이 계획과 실행을 스스로 하는 동아리인데, 나는 못해봤지만 주변학교에서 이렇게 진행하시는 걸 종종 보았다. 문제는 이게 수업시간이만큼 내용을 채워갈 수 있는 아이들의 책임감과 의지가 필요하다. 록희만 봐도 그시간에 어떻게 대충 혼자 놀 수 있을지 궁리하고 있는걸. 그러다 도저히 마땅한 게 없자 동네친구 수찬이와 함께 새 동아리를 창설한다. 최소 인원이 3인이라 초조하게 기다리던 중 반의 과묵한 남학생 조진모와 전학온 여학생 한기주가 포스터에 이름을 썼다. 이리하여 '왜왜왜 동아리'가 창설됐다.

'궁금한 걸 파헤치는 동아리'라고 설정했기 때문에 멤버들은 각자 궁금한 걸 밝혀야 했다. 한기주가 가장 먼저 "다정이를 찾아야 하는데 방법을 모르겠다."고 해서 동아리의 첫 과제가 되었다. 다정이는 기주네가 키우던 강아지였다. 여기에서 이 마을의 중대 사건이 하나 등장한다. 바로 산불이었다. 불씨에서 시작된 산불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번졌고 사람 피한 것만도 다행인 상황. 집과 터전이 다 불탔고 강아지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독자들은 이 현장을 상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두번째는 조진모가 "우리 누나 머릿속이 궁금하다."고 했다. "자기가 무슨 잔 다르크인 줄 아나 봐." 라는 말에 힌트가 들어있다. 진모 누나 진경이는 금요일마다 학교를 안가고 교복 차림으로 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여기에서 마을의 두번째 문제가 공개된다. 이 문제는 시장인 록희 아빠와도 직결되어 있었다. 석탄 발전소와 항구를 신축하는 문제였다. 많은 주민들이 반대했지만 사업은 강행되었고 바닷가를 터전으로 살던 주민들의 대다수가 떠났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진모네는 겨우 버티고 있지만 계속 버티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석탄 발전소-온실가스-지구온난화-산불 사이의 연결고리를 파악한 진경의 1인시위는 잔다르크보다도 크레타 툰베리를 연상시킨다. 점점 번져나가는 어린이들의 연대를 보면 더더욱 그렇다. 록희는 불가피하게 아빠랑 맞서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 큰 갈등이나 감정소모는 없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입장의 차이가 관계까지 갈라놓는 건 슬프니까.

현실적으로 내가 부모라면 자식을 말렸을 것 같다. 나도 알고는 있다. 이런 현실에의 순응, 귀찮고 어려운 것에 대한 외면, 이런 것들이 세상을 점점 나빠지게 했다는 것을. 나빠지는 속도에는 점점 가속도가 붙고 있다는 것을. 지구인들은 이제 일상에서 작게, 제도적으로 크게, 전 지구적인 합의로 더욱 크게 동시다발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이 책은 모두가 방관하는 브레이크를 온힘으로 밟으려는 어린이들의 힘찬 발걸음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다정이... "운동장을 바람처럼 가로지른 개가 한기주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이 마지막 문장에 눈시울이 잠시 뜨거워졌다. 이런 장면은 언제봐도 감동이야.... 이 마지막 씬은 희망을 보여주며 끝을 맺으려는 작가님의 선물인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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