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퍼핀섬의 기적 - 학교도서관저널 4월호 도서추천위원회 추천 도서 ㅣ 봄날어린이문고 1
마이클 모퍼고 지음, 벤지 데이비스 그림, 김선희 옮김 / 봄날의곰 / 2023년 12월
평점 :
마이클 모퍼고의 신작이 보여서 대출해왔다. 원작은 2020년에 발표됐고 국내에서는 작년에 출간됐다. 노년 작가의 생산력이 대단하신 것 같다. 읽어보니 작가를 모르고 읽었어도 이거 ‘마이클 모퍼고 작품 느낌인데?’ 했을 것 같다. 기존 작품들의 느낌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소재도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어떤 것들은 매우 새롭다.
마이클 모퍼고의 작품은 주제가 무겁고 배경과 소재의 스케일이 매우 크다. 주로 전쟁이 배경으로 나온다. 그리고 작품마다 운명적인 만남이 나오고 그들의 사연이나 행동을 통해 인류애를 일깨워준다는 점도 대체로 공통적인 특징이다. 어린이용 동화책이고 두껍지도 않은 편인데 늘 이런 내용을 담는다는 점이 놀랍다. 그러면서도 재밌다는 점. 국내에선 잘 안 팔리는 걸 보면 나만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이 작가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작품 <켄즈케 왕국>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꽤 있다. 주인공이 어릴 때 항해를 하게 됐고, 큰 파도를 만나 난파됐고, 노인의 도움을 받았다는 점 등이다. 디테일은 많이 다르다. 앨런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사고로 잃고, 앞날이 막막해진 엄마와 함께 할아버지(아버지의 부모님) 댁으로 가던 길이었다. 난파선에 탔던 사람들은 다행히 큰 바위에 모두 뛰어내렸지만 그 바위는 육지와 멀었고 파도가 곧 그들을 모두 삼킬 상황이었다. 이때 인근 작은 섬(퍼핀 섬)의 등대지기 벤저민 씨가 작은 배를 노저어 그들을 구하러 왔다. 30명을 모두 자기 섬으로 옮긴 등대지기는 아무 말 없이 그들에게 따뜻한 차를 끓여 주었다.
그는 거의 입을 열지 않을 정도로 과묵했고 집안 곳곳에 직접 그린 그림들이 놓여있는 것으로 보아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구해준 승객들이 구조선을 타고 떠나던 날, 아저씨는 앨런에게 말없이 그림 하나를 건네주고 돌아갔다. 앨런이 계속 눈여겨보던 바다와 배 그림이었다.
이후 앨런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는 외롭고 괴로웠지만 아저씨와 그 그림을 하루도 잊지 않고 살았다. 엄마 입장에서 보면 남편을 잃고 시댁에 들어가서 살게 된 셈인데, 조부모들은 조금도 다정하지 않았고 앨런의 가정교사는 최악이었다. 그나마 엄마와 조금씩 다정함을 나누며 살았지만 청소년기는 홀로 기숙학교에서 보내게 되었다. 여기서도 앨런에게 친절한 사람은 없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찾던 앨런은 우연히 오래된 잡지를 넘겨보게 되는데, 거기서 12년을 마음에 품고 살던 그를 보게 된다. ‘등대지기 영웅, 훈장을 거부하다’ 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그들의 이야기가 그 잡지에 기사로 실렸던 것이다.
”나는 할 말이 없어요. 그저 내 일을 했을 뿐이에요. 구해야 할 목숨이 있었어요. 그뿐입니다. 생명은 훈장이라든가 뭐 그런 것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 훈장은 그냥 가져가세요. 이제 가세요. 나를 그냥 내버려 두세요. 나는 등대를 살펴봐야 합니다.“ (46쪽)
앨런은 아저씨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졸업과 동시에 앨런은 ‘세상을 둘러보고 오겠다’는 인사와 함께 엄마를 떠났다. 앨런이 향한 곳은 바로 퍼핀 섬이었다. 가면서 들은 소식은 좋지 못했다. 등대가 폐쇄되었고, 역할이 없어진 벤저민 씨는 혼자 섬에 틀어박혀 거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섬에서 나올 방법도 기약을 못한채로 앨런은 섬에 들어갔고 아저씨와 재회했다.
아저씨는 앨런이 두 번째 손님이라고 말했다. 첫 번째 손님은 다리를 다친 퍼핀이었다. 이름만 퍼핀 섬이던 그곳에 퍼핀이 왔지만 더 이상 불이 켜지지 않는 등대에 부딪쳐 다리를 다친 것 같았다. 두 남자, 한 청년과 한 노인은 그 퍼핀을 보살피는 일에 흠뻑 빠져 함께 살아간다. 보통 그렇듯이 헤어짐의 순간은 왔고, 아쉬운 마음을 애써 누르며 그들은 퍼핀을 날려보내 주었다. 그리고 아저씨가 답장을 보내지 못한 것이 글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저씨에게 글을 가르쳐주면서 앨런은 그곳에 더 머문다. 이들도 헤어질 때가 왔다. 때는 2차대전 중. 앨런에게도 소집 영장이 왔다.
전쟁에 대한 묘사는 길지 않았지만 앨런이 엄청난 고초를 겪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래도 생존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 함께한 것이다. 그는 어머니를 찾아갔고, 또 아저씨를 찾아갔다. 다시 찾아간 퍼핀 섬에는 온통 퍼핀들이.... 그게 그들이 이루어낸 기적이었다. 이 책의 원제는 ‘The Puffin Keeper’인데, 번역제목도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대도시의 아파트 외에서는 절대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 내게 무인도나 다름없는 곳에서 살기로 작정한 이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신기하게 들린다. 얼마나 불편할까? 소통이 없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불안하지도 않나? 뭘 하면서 사나? 하지만 두 사람은, 특히 등대지기 아저씨는 말없이 내게 보여준다. 그가 행한 기적을. 그걸 보면서 나는 스스로 묻게 된다. 수많은 연결과 즉각적인 소통 가운데서 진정으로 건져올린 것은 무엇인가, 라고.
마이클 모퍼고는 나이를 비롯한 큰 차이를 극복하고 친구가 된 사람들의 진정한 우정을 자주 보여준다. 주목받지 못한 이들이 행한 귀한 일들을 보여준다. 온 세상을 커다란 체에 올려 흔들었을 때 끝까지 남을 것 같은 것들을 보여주는 느낌이다. 거기에서 내 인생은 어디쯤 해당되는지 돌아보게 한다. 그의 작품의 가치가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