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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성장하는 통합교실 이야기 - ADHD, 틱, 자폐 스펙트럼, 우울증, 느린 학습자도
천경호 지음 / (주)학교도서관저널 / 2024년 9월
평점 :
이런 책을 읽으며 ‘오호, 이렇게 하면 되는구만. 알겠어, 실시!’ 라면 당장 열 권이라도 읽겠는데, 그럴 수가 없다는 점이 힘든 점이다. 알아야지 할 수 있는 점도 분명히 있지만 아는 걸로 끝이 아니다. 사람을 길러내는 일은, 더구나 어려움을 가진 아이를 길러내는 일은 결국 몸과 마음의 온 힘을 다해야 하는 일이다.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천경호 선생님의 기록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앞섰다. 그가 대외적으로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지 대충 알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부장은 기본적으로 하고 계실텐데 그런 분이 학생 한 명에게 기울인 관심과 노력, 시간을 보며 ‘아이고 난 이렇게 못해’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특히 나처럼 마음이 조급하고 여유가 없는 사람은 돌발 상황으로 미리 세워둔 계획이나 루틴이 깨질 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분하고 느긋한 눈으로 학생을 쫓아가기 어렵다. 실제로 학교라는 곳이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고. 여러 역할들이 화살처럼 빗발치는 그곳에서 꿋꿋이 아이 옆에서 천천히 걸어가시는 저자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내겐 다른 게 아니라 그게 가장 존경스러운 점이었다.
이제 통합교실은 특별한 사명감이 있는 누군가가 맡아주는 곳이 아니라 아주 일반적인 상황이 되었다. 어떤 이유에선지 학급에 특수교육 대상자나 느린 학습자들이 늘어났다. 특히 정서적 어려움을 가진 아이들이 매우 큰 폭으로 늘어났다는 건 확실히 체감된다. 이런 경향에 대해서 연구가 있다면 자세히 알고 싶다. 어쨌든 이제 모든 교실이 통합교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통합교실이 아니라 그냥 ‘교실’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에도 동의한다. 예전에 어느 특수교육과 교수님의 강연에서 “앞으로 일반교육과 특수교육의 경계는 의미 없어질 것이다.”라는 말씀이 인상적이어서 잊지 않고 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바로 그렇다. 앞에서 나는 저자의 학식보다도 마음가짐과 태도를 높이 샀는데 그건 전제와 출발이고, 이제 우린 공부를 해야 한다. 당황하지 않고 맞닥뜨리기 위해서. 이 책은 저자의 그 과정을 담은 교실 이야기이다.
1장은 ADHD와 틱을 가진 정모와 함께한 이야기, 2장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진웅이와 함께한 이야기다. 앞에서 저자의 인내심에 감탄한 것은 모두 이 과정을 보고 느낀 감정이다. 그 과정에서 또 한가지 배운 것은, 학급의 비장애학생들의 관점과 시선을 잘 매만져 주신 점이다. 사실 이같은 아이들과 한 학급에서 지내는 것은 비장애 학생들에게 때로 괴로운 점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불평하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는 아이들이 있는 것도 현실이며, 그건 교사에게 2중의 고통을 안긴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해하며 보듬어 함께 가려는 마음이 이 사회에 필요한데 그 교육은 가정과 교실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교사의 처신과 지도는 매우 중요하다. 저자는 그런 점에서도 매우 뛰어났다. 많은 참고가 된다.
페친들 중에 글이 참 좋은 분들이 많은데, 그중의 한분이 오늘 『우리 안의 우생학』이라는 책을 소개하시는 중에 어디선가 인용한 말씀이 확 화닿았다. 우생학적 사고는 공동체를 위해 ‘배제’ 하고 소위 ‘좋은 사람들’로 만든 공동체가 더 나은 공동체로 간다는 사고이다. 그러나 인류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선 누군가를 ‘배제’하는 집단은 멸종했고 더 많은 수를 포함시키는 집단은 번성했다고 한다. 페친쌤이 그 책을 소개하시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갈수록 배제가 일상화된 이 사회에서 모두를 품고 가는 일의 중요성을 말씀하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학급의 아이들에게도 이 일이 매우 중요하다. 배제를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시하는 아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들을 설득할 때는 단호하면서도 매우 섬세해야 한다. 말공부를 오래 하신 저자는 이런 면에서도 강점이 있었다.
1년의 고생이 열매로 보일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 쓸쓸한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우리가 감수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기대를 하지 않고 노력만 한다는 건 인간이 되어가지고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좌절하진 않았으면 한다. 그 열매가 언젠가 맺힐 수도 있고, 안맺힌다 해도 화낼 일은 아닌 것. 가장 적절한 방법을 늘 더듬어 찾으며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 ‘말이 쉽지’에 해당되는 일이지만.....
3장에 나오는 '아이, 아이, 아이들'은 정말 모든 교실에서 수시로 만날 수 있는 아이들이다. 읽기만 해도 바로 우리반 누구와 줄 그어지는 아이들로 가득하다. 이중 꽤 많은 경우가 경계선지능에 해당하는 학생들이라는 것은 우리가 주의해서 볼 점이다. 처신에는 상황판단이 전제되고, 판단은 인지적인 기능이므로 납득되지 않는 처신을 하는 아이들 중 지적 능력이 부족한 학생이 당연히 있을 수 있겠다. 이런 경우 비난하지 말고 천천히 알아듣게 단계적으로 설명하고 다시 반복하고 확인하고 하는 지도가 필요하다. 경계선 지능의 비율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알았다. 이들에겐 교육과정을 따라 수업하는 것 자체도 무척 힘겨운 일일텐데 특별한 지원이 있지는 않다. 갈수록 많아지는 다양한 어려움들을 볼 때, 교육부가 과연 천문학적인 돈을 지금 거기에 때려박는게 맞는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는 걸 보면 하나 가진 것까지 빼앗아 100에다가 몰아줄 테세다. 제발 정신차리라고 말하고 싶다. 뭣이 중한지 정말 몰라? 알고 싶지도 않지?
그 외 입을 열지 않는 아이, 밥을 너무 안 먹는 아이, 반대로 말하는 아이, 이런저런 나쁜 태도를 가진 아이들이 나온다. 딱히 진단명을 붙이기 애매하지만 지도하기에는 극강의 인내심을 요구하는 아이들.... 되도록 이런 아이들을 맡지 않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저자는 어떤 아이들에게든 다음과 같은 믿음을 잃지 않는다.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요인은 많습니다. 무엇이 지금의 아이를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모든 아이는 자기를 실현하려는 경향성이 있다는 점이요....(중략) 아이들은 누구나 스스로 해내고 싶어 하고, 잘하고 싶어 하고,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는 걸 이해하고 응원해 주기를 바랍니다....(중략) 차이에 주목하기보다 서로의 인간다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모두의 마음에 공감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통합교육이 지향하는 바입니다.” (224쪽)
발췌해서 쓰고 읽어보니 역시 ‘말이 쉽지’에 해당하는 말처럼 들리네. 하지만 차근차근 걸어서 도달한 문장에서 느끼는 힘은 다르다. 선생님들이 모두 그렇게 이 문장에 도달해보시길 추천하고 싶다.
보호자님들이 학교의 권고를 무시하고 자녀의 문제행동을 외면하길 바라지 않는다. 필요한 검사를 받고 진단에 따라 치료도 하기 바란다. 하지만 그게 만능키가 아님도 부모와 교사가 함께 알아야 한다.
“하지만 약물만으로는 나아지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아이가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상호작용이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206쪽)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어려움을 두고 노력 부족이니 능력 부족이니 하며 비난할수록 아이는 스스로 무력해지기 쉽다. 아이가 무력해지면 스스로 자신을 폄하하는 마음에 사로잡혀 자신과 타인을 함부로 대하기 쉽다. (209쪽)
쉽지 않은 일이지만 외면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직면하지 않으면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는 모든 짐을 교사가 홀로 져야 한다는 식의 불가능한 주장을 하지 않았다. 사랑만이 해결이라는 식의 하나마나한 소리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절한 협력과 지원, 조기 진단과 개입의 필요성을 대변하기도 했다. 4장 '통합교육을 위한 한 걸음'에서 통합교육지원체계가 필요하다는 말씀에 매우 동의한다. 교실에서 교사는 어려움을 겪는 아이를 이끌어주어야 할 의무 뿐 아니라 나머지 학생들의 수업 또한 질 높게 이루어주어야 할 의무와 소망을 갖고 있다. 현실적으로 막막한 상황에서 어려움에 발을 구르는 교사들을 질책하는 사람들을 볼 때 내가 혼나는 것처럼 속상했었다.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일들에 대한 현실적인 대책이 나무라면 장애를 드러내고 함께 도와 아우를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지향은 숲이다. 이 책은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숲을 조망해주는 책이라고 느껴졌다. 이 책에 있는 상황 중 일부는 올해 나의 상황이기도 하면서 내년에 나의 상황일 확률 100퍼다. 갈수록 찐해지는 기운을 느낀다. 그렇다면 뛰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난 이 책을 읽었다. 한 권 읽었다고 뛰어들었다기엔 그렇고, 발을 담갔다고 할까. 이제 더 많은 책을 읽어야 할 것 같다. 공부하고 부딪치고 (깨지고) 수정하고 또 공부하고.... 이것이 숙명이 된 것 같다. 힘들지 않은 직업 없으니 칭찬이나 응원을 바라지는 않는데, 협업과 소통, 지원의 길은 열려 있으면 좋겠다. 학교가 내부 폭발의 압력솥이 아니라 순환과 확장의 한 지점이 된다면 좋겠다. 이 책의 지향을 모두가 공감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