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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만한 음치 거북이들
아구스틴 산체스 아길라르 지음, 이은경 그림, 김정하 옮김 / 북스그라운드 / 2024년 9월
평점 :
이 책을 읽고나서 마음에서 울컥 올라오는 욕망은 "뭔가 배우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건 '배워서 나아지고 싶다'는 것이고 '뭔가 못하던걸 해내고 싶다'는 뜻이기도 했다. 일시적인 감정이다. 나는 이제 퇴직을 꿈꾸는 나이많은 직장인에 불과하고, 이것저것 실짝 맛을 봤지만 나란 인간 참 재능은 없는 인간이구나 결론을 이미 내렸었기 때문이다.ㅎㅎ 그저 그럭저럭 했던 공부로 대학에서 딴 자격증 하나로 지금껏 버텨왔고 이제 무사한 퇴직만을 기원하고 있는 중인데.... 그러니 헛된 바람은 가능하지 않다. 그저 내가 즐거워하고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된다. 과정을 즐기는 것. 그것에 담긴 가치. 그게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것 또한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처음보는 스페인 작가의 작품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라고 한다. '에데베 어린이 문학상'을 받았다고도 한다. 고학년 정도 어린이들에게 적당하기도 하지만 어른들을 위한 동화 느낌도 강하다. 주인공인 수탉 카실도는 말하자면 '퇴물' 성악가다. 명예와 부와 자신감 모든 것을 잃고 홀로 우울하게 살아가던 그에게 다가온 모처럼의 기회. 근데 그건 너무 어처구니없고 불가능하고 자존심도 상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집세도 못내는 형편에 찬밥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던지라 그는 할 수 없이 그 일을 수락했다.
그 일이란 거북이들의 노래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원더풀' 이라는 이름의 그 합창단은 크리스마스에 열리는 노래 경연대회에 참가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심지어 우승을 바라고 있었다. 상금을 받아 그들 중 한 거북이의 아들의 지병을 치료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좋은 목표가 모든것을 해결해주진 않는다. 크리스마스까지는 석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현실은 카실도에게 아주 미치고 환장할 상황이었다. 거북이들은 너어무 느렸고 (괜히 거북이가 아니겠지), 기본적인 음악성조차 없었다. 발성 자체가 되지 않거나, 소리를 내도 그 소리가 음정이 실리지 않은 괴성이거나 등등. 그들은 불가능한 꿈을 꾸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수업료 때문에 일을 하는 카실도는 괴롭다. 말을 꺼낼 기회만 보고 있지만 번번이 실패하곤 했다. 거북이들은 의심이 없었고, 호의가 가득했다. 어떻게보면 오지랖이 너무 넓은게 탈이기도 했다. 카실도에게는 그게 참기 어려운 점이었다. 이 부분 나랑 너무 비슷해서 가슴이 뜨끔했다.
아프다고 수업을 하루 쉬기로 했던 날, 거북이들이 하나 둘씩 찾아와 집에 가득해졌다. 혼자 조용히 있고 싶었던 카실도에겐 스트레스 상황이었다. 거북이들은 좀처럼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 꼭 필요한 일들을 해주었다. 음식을 만들어주고, 집 구석구석 문제있는 곳을 수리해주고 등등. 하지만 원하지 않던 하루에 화를 못참은 카실도는 결국 분노를 폭발시키고 말았다. 화를 내는 김에, 그들의 '주제파악' 까지 시켜주면서.
원더풀들은 사과하고 조용히 돌아갔다. 하지만... 노래수업은 종료되었다. 카실도는 괴로웠다. 우연히 레논 부인을 마주치게 되어 그는 용서를 구했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그날은 불편하셨을 거예요. 이해해요. 저희가 선생님의 영역을 침범했어요. 때때로 원더풀은 필요 이상으로 흥분을 한답니다."
카실도가 감동한 건 당연한 일.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들에 큰 교훈이 담겨 있었다.
"누군가에게 모욕을 당하면 똑같이 갚아줘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레논 부인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선생님, 오래전 일 때문에 평생을 세상에 화풀이하며 살아가는게 의미있다고 생각하세요? 분명 아니겠죠?"
내가 마음속에 새겨야 할 구절이기도 하고, 요즘 사람들이 한번쯤 곱씹어볼 말이기도 하다. 특히 화해와 회복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고 사소한 싸움까지 극단으로 치닫게 만드는 학부모들. 그 아이들이 자기 부모보다 이 거북이 부인에게 배웠음 한다. 요즘 어떤 부모들은 자기 자식에게 '화'를 가르치는 것 같다. 그 아이 한 명의 화를 빼내는데 수많은 어른의 손길이 필요했다. 담임 한 명으로는 어림없었다. 그나마 여럿의 협력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가능했다. 완전히 빼냈다는 건 아니고 조금 둥글어지는 정도가 그렇다.ㅠㅠ
이어지는 두 번의 반전이 있다. 희망과 긴장. 그리고 좌절. 다시 긴장과 환희와 희망으로 이어지는 서사가 꼭 영화의 공식 같았다.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이지만 재미있고 응원하게 되고, 기분 좋은 영화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야금야금 읽어주며 아이들의 반응을 즐기는 재미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