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교사의 사회 - 영화, 교사에게 말을 걸다
차승민 지음 / 케렌시아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차승민 선생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영화수업이다. 첫 저서도 영화수업이었고 초등교사들의 커뮤니티 사이트에 혜성같이 등장한 것도 영화수업 관련이었다. 그게 벌써 10년이 넘었으니 나처럼 오래된 교사가 아니면 모르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차쌤의 영역은 영화라는 매체에 갇혀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정확하고도 유연한 통찰력을 가졌고, 그 통찰력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잘 파악하며 지도법을 잘 찾아간다. 흔하고 단순한 표현을 쓰자면 '생활지도의 달인' 이랄까. 학생들의 내면에 대한 이해와 조언을 담은 <학생사용설명서>나 <열두살 나의 첫 사춘기> 등의 책들도 그래서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차쌤이 이번에는 교사와 교육에 대한 성찰을 책으로 펴냈다. 제목과 목차를 보고 놀랐다. 제목과 표지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바로 연상시킨다. 목차에서는 25편의 영화제목과 연결된 에세이 제목들을 볼 수 있다. 교육에 대한 고민과 성찰, 고백과 제언을 이렇게 영화와 연결지어 할 수 있다니, 차쌤 내공의 결정체인 책이라 할 만했다.

내 개인적인 한계는 영화에 취미가 적어서 본 영화가 거의 없다는 것인데, 읽다보니 큰 상관은 없어보였다. 오히려 글을 통해 보고싶은 영화가 생기는 거꾸로 효과가 있었다. 나는 본 영화 자체가 적기도 하지만 교육에 대한 영화는 더욱 잘 안 본다. 차쌤이 성찰의 텍스트로 삼은 영화들 중엔 교육이 전면에 드러난 영화도 있고 교육 소재가 전혀 아닌 영화도 있는데, 다양한 소재의 영화에서 길어올린 교육적 사색이 나로서는 놀랍기만 하다. 또 교육영화를 외면한 나의 성향에 회피하려는 태도가 숨어있음도 발견하게 되었다. 저자의 직면은 용기있다.

제목의 모티브가 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대한 글을 페북에서 읽고 크게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그 영화를 이해하든 아니든, 동의하든 아니든 공식처럼 되어 굳어진 가치를 삐딱하게 보긴 쉽지 않다. 그 가치가 보수적 가치에 대한 반작용에서 형성된 가치일 때 더더욱 그렇다. 나도 멋있는 포지션에 있고 싶고 비난받기 싫다. 하지만 교사의 역할은 매우 섬세하고 유동적이라 한가지 상황이 절대적일 수 없다. [키팅 선생님이 불편하다]라는 글은 그래서 용기있다. 자신의 욕망을 숨기고 너네는 왜 키팅 선생님이 아니냐고 가스라이팅 하는 이들이 바로 '페리의 아버지'라는 일갈은 후련하고도 슬프다. 이 글을 페북에서 봤을 때, 나는 짐작하지 못했지만 이 책의 작업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던 중이었구나.

이 책의 25편의 영화와 그에 따른 에세이는 한 편 한 편 토론이 가능할 정도로 이야깃거리가 많다. (저자는 언변도 좋으시니 북토크 하면 재미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리뷰에 각 편을 다 다룰 수 없어서 몇 편만 골라 이야기해 보겠다.

[학교가 망가지면 안전판이 사라진다-고독한 스승]
모건 프리먼이 교장으로 나온 오래된 영화다. 실화 기반이라고 한다. 총체적으로 엉망진창이 되어 손쓸 방법이 안 보이는 미국 공교육 어느 곳의 모습이다. 우리보다 훨씬 심해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미국의 공교육이 겉으로 망가진 외상이 많이 보인다면, 우리의 공교육은 안에서부터 망가지고 있는 내상이 더 크다." 라고 평한다. 작년에 그 내상이 폭발하고 피가 철철 흘러 모두가 알게 되었음에도 달라진 것은 거의 없는 상태다. 영화에서 교장은 기본교육을 세우기 위해 극단처방까지 쓰며 강하게 밀어붙이지만 수많은 반발에 부딪치며 고전한다.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 짐작만으로도 약간 벅찼던 장면은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울려퍼진 'Lean on me' 였다. 나 이 노래 무척 좋아하는데.... 그러고 보니 이것이 바로 영화의 원제다. ('고독한 스승'이라고 번역한 이유도 알 것 같긴 함) 이 노래가 한방에 분위기를 반전하는 건 영화에서나 가능하겠지만, 이 노래가 서사의 클라이막스에 연주되고 영화의 제목이 된 것에 난 감동받을 것 같다. 영화를 꼭 보고싶다.
"We all need somebody to lean on."
맞잖아. 아닌 사람 없잖아. 그게 이번엔 너고, 다음엔 나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 상처주고, 마음의 문을 닫고, 마음의 감각을 모두 마비시켜야 겨우 생존할 수 있는 곳이 학교가 된다면.... 너무 슬픈 일이다. 이 비극은 이미 진행형이다.ㅠ

[가르침의 새로운 엔진을 얻기까지-선생 김봉두]
나는 이 영화 너무 싫어했다. TV에서 해줘도 안봤다.ㅎㅎ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차쌤이 하신 성찰에는 수긍하지 않을 수 없네. 바로 이런 대목이다.
"아이의 성장은 나타나지 않을 것 같은 순간에 나타난다. 이 순간 교사가 쓴 에너지보다 더 큰 에너지가 성장한 아이를 통해 교사에게 전달된다. 아이의 성장은 교사에게 새로운 연료가 된다. 더불어 아이에게서 새로운 가르침의 엔진을 얻는다." (91쪽)

교사라면 교직인생에 크고 작게 이런 장면들이 있을 것이다. 배터리가 꺼질 것 같던 순간에 나를 충전해 주었던 그 아이. (그 아이는 자신이 그 역할을 했다는 걸 꿈에도 모를 것) 그렇게 우리는 함께 나아간다. 이게 앞에서 말한 'Lean on me'의 한 장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갈수록 닫히는 걸 느낀다. 그게 진정한 위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신사 없이는 시민도 없다-코치 카터]
이 영화는 위기에 빠진 고등학교 농구부를 되살리기 위해 투입되었던 카터 코치의 이야기다. 카터는 선수들에게 '기본소양'을 가르치고자 했고 이 과정에서 안해도 될 고생을 많이 하다가 결국은 팀을 떠나게 되었다.
이 영화에서 저자는 '신사'와 '시민'을 논한다. 그리고 제목처럼 신사가 전제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얼핏 들으면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찬찬히 보면 너무나 맞는 이야기다.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신사의 자질을 갖추고 난 이후 비로소 저항권을 바르게 행사할 수 있다. 그러기에 신사교육을 거치지 않고 바람직한 민주시민 교육을 하는 것은 어렵다." (111쪽)

난 이 대목에서 나의 해묵은 의문 하나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교과전담으로 각 교실을 떠돌던 해의 이야기다. 인권친화를 표방하는 쌤(A)이 계셨고 다소 강압적이라는 평을 듣는 쌤(B)이 계셨다. A반에서는 수업을 할 수가 없었다. 교사에게 결정권이 없었다. 일방적인 지시에 분개했다. 도를 넘고 주제넘은 행동들이 판을 쳤다. B반의 수업은 차분하면서도 따뜻하고 활기있었다. 100을 준비하면 120을 할 수 있었다. 아이들과 수업의 내용 뿐 아니라 마음까지 주고받는다고 느꼈다.

A반의 문제가 바로 이 장에서 차쌤이 지적한 그 문제다. 신사가 되지 못한 아이들에게 섣불리 저항권만 가르친 것이다. 아이들은 그것을 신나게 휘둘렀다. 요즘 B교사가 되기는 매우 어렵다. 내 신변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사회는 학교에 A를 요구하며 동시에 실력을 키우고 인성도 훌륭한 민주시민을 육성하라고 한다. 천원 주면서 31에서 아이스크림 큰 통으로 사고 300원 남겨오라는 요구보다 더 부당하다. 많은 교사들이 이 틈바구니에서 염증과 환멸을 느끼고 마음의 문을 닫은 것 같다. 사회 전반적인 고민이 필요한 일이다.

[가르침 속에 내재된 채찍질-위플래쉬]
이 영화의 서사를 대충 들었는데 영화는 안 봤다. 보기 싫었다. 플레처 같은 지도자(교사)에게 동의할 수 없다. 성과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말이다. 내가 위에서처럼 학생들의 기본소양을 엄격히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도, 이토록 비인간적으로 한계로 모는 것까지는 할 수 없다. 타고난 성품이기도 하고.
그런데 차쌤의 성찰을 읽어보니 이건 우리 교사 모두가 조심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고난 성품이 유약한 나조차도, 채찍질의 조절을 잘못하는 순간이 있을 수 있겠다는 깨달음. 서늘한 느낌이었다.
"가르침에 담긴 폭력성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을 통제하는 것이 가르치는 자의 의무다." (198쪽)
교단은 어찌보면 평균대나 외줄인지도 모른다. 늘 균형잡기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하는.

이 외에도 많지만 이정도에서 마무리를 써야겠다. '이 책은 네모다'를 공모한다면 나는 '동전물티슈'라고 응모해서 상을 받고 싶다.ㅋㅋ 그 특징은 '응축'이다. 200여 쪽 보통 두께의 책이지만 물을 부으면 쭉쭉 부풀어 오르는 압축티슈처럼 수많은 이슈와 키워드들이 들어있다. 많은 건설적 대화의 소재가 되어 꽃을 피우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초등교육에 차쌤처럼 외면과 내면 모두가(ㅎㅎ) 듬직한 존재가 계신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다. 많은 후배님들이 차쌤의 통찰을 기반으로 열정적으로 토론하고, 고민하고, 바꾸어나갔으면 좋겠다. 그러기 어려운 상황인 거 알지만 힘을 내셨으면 좋겠다. 난 열심히 응원하다 조용히 물러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