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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 충전 완료 ㅣ 바람어린이책 26
정연숙 지음, 이수영 그림 / 천개의바람 / 2024년 1월
평점 :
이 책 독자층이 어떻게 될까? 아이들 읽으라고 사줬다가 엄마가 읽거나, 아님 할머니가 읽으시는 건 아닐까?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엄마와 할머니의 중간쯤 되는 나한테도 아주 재미있었으니까. ‘딱 내 얘기’ 까진 아니어도 공감이 많이 되었다. 내가 곧 그렇게 되는 것도 시간문제일 수 있고.
오들희 할머니는 미용사다. 65세 젊은 할머니라 노인복지관에서 ‘막내’로 통한다. 사실 요즘 65세인 분한테 할머니라 부르기도 주저된다. 나보다 더 젊어보이시는 60대도 많더라 뭐... 하지만 책에 할머니라 나와 있으니 그냥 부르기로. 그럼 이분을 할머니라 부르는 이 책의 화자는 누구일까? 내가 알기로 이런 화자는 처음 등장하는 것 같은데.... 바로 할머니의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이야 요즘 세상에 주인과 찰떡같이 붙어사는 존재이니 주인공을 설명하는 화자로서 그만한 게 없겠다.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도 스마트폰 말고 달리 꼽을 만한 게 없네. 스마트폰에 나의 모든 것이 다 담겨있으니 손에서 떨어지면 바로 두리번거리게 되는 존재. 그럴 일은 없지만 나를 주인공으로 동화를 쓴대도 화자는 스마트폰을 시켜야 되겠다. 인정.ㅎㅎ
이 동화는 분량도 짧고 소재도 단순한 편이다. 할머니의 정보화 사회 적응기라고 할 수 있겠다. 정보화 사회에서 노인들이 극복해야 할 것들은 많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도 마찬가지다. 오들희 할머니가 자신을 ‘기계치’라고 표현했는데 사실 나도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 어떤 제품이든 딱 기본사용법만 익히고는 더 이상 깊이 파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용하다 필요한 기능이 더 생기면 옆사람한테 물어봐서 딱 그것만 익히고는 또 끝이다. 이런 내가 온라인 수업을 만들어 올리고, 줌수업을 하면서 각종 온라인 수업도구들을 사용했다니 궁하면 통한다는 말은 사실이다.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기억에서 멀어졌다.
숙달된 미용사인 오들희 할머니는 화,목에는 오후 2시면 미용실 문을 닫고 부지런히 어디론가 향한다. 바로 노인복지관이다. ‘폰맹 탈출 수업’ 시간이다. 젊은 강사가 아주 친절하게 노인들의 요구에 맞춰 지도해준다. 수강생들은 기프티콘 보내는 법, 키오스크 사용법 등을 요청하고, 오들희 할머니는 콘서트 예매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 누구 콘서트 가고 싶으시냐는 강사의 질문에
“당연히 호걸이죠!”
라고 대답하자 순간 강의실에 웃음꽃이 활짝 핀다.
호걸이라.... 현생에 대입하자면 임영웅이겠다. 나는 팬까지는 아니고 노래실력은 인정하는 가수. 80대의 우리 엄마가 그의 팬이시지. 들어보니 그는 트로트만 잘하는 것도 아니던데, 유독 할머니 팬들이 많더라구? 하여간에 임영웅을 바로 연상시키는 그 호걸이라는 가수도 열성 할머니 팬들이 많은 가수인가보다. 복지관 할머니들이 다 반색을 하네. 하지만 중요한 현실. 콘서트 예매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강사가 ‘피켓팅’이라는 말도 할머니들께 가르쳐준다.^^
와, 할머니의 피켓팅 도전이라고? 이거 좀 창피해지는데. 나도 성공한 적이 없어서 말이야. 내가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라고 생각하는 (그래봤자 팬클럽에 가입한 적도 없지만) 박효신 님의 뮤지컬에 몇 번 도전해 봤지만 다 실패했다. 딸이랑 같이 도전해도 실패. 대신 팬텀싱어 출신 라포엠이나 미라클라스 공연은 딸이 성공해서 다녀왔다. 한마디로 내가 성공한 적은 없다는 말씀.^^;;;
오들희 할머니가 피켓팅에 도전하려는 건 또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휴대폰에 ‘내 사랑’으로 저장된 사람. 어머니다. 그래 65세면 어머니가 생존해 계실 만도 하지. 그런데 참 효녀다. ‘내 사랑’이라는 이름만 봐도 그렇고, 치매 노인을 모시고 사는 것도 그렇다. 낮에는 ‘주간보호센터’에 보내긴 하지만 그 외 시간엔 오들희 할머니가 돌본다. 다른 가족에 대한 얘기는 없다. 오들희 씨가 자녀들을 다 독립시켰을 수도 있고, 미혼일 수도 있겠지. 하여간 이제 도로 아기가 된 엄마한테 극진한 오들희 씨가 나는 존경스럽다. 그 엄마가 고대하는 것도 호걸 콘서트다. 둘이 같이 가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근데 생각해 봐. 할머니가 임영웅 콘서트 성공하는거, 그거 가능? 이제부터 험난한 과정이 펼쳐진다.
그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점
- 피켓팅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거. 확률을 높이려면 사돈의 팔촌까지 동원해야 돼.ㅎㅎ
- 그리고 충전은 미리미리 해두기. (나는 50% 아래로 내려가는 것도 싫어한다ㅋㅋ)
화자인 스마트폰이 100%, 아니 1000% 충전되는 기분이라고 하며 끝을 맺는다고 쓰면 해피엔딩인 줄 누구나 알겠지? 응원복으로 맞춰입은 할머니와 왕할머니가 ‘호걸 사랑해’ ‘나의 비타민 호걸’ 등의 응원도구를 들고 있는 모습이 그리 낮설지 않다. 재밌게 읽었다. 나의 65세도 그렇게 먼 것은 아닌데, 나도 저렇게 귀여운 할머니가 될 수 있을래나. 좋아하는 가수는 꼭 임영웅은 아니어도 되겠지.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