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속삭임 - 제24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보름달문고 93
하신하 지음, 안경미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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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을 패스한 적은 없으니 올해도! 오, 작가님이 꽤 많은 작품을 쓰신 알려진 분이시네. 이분의 작품 중 『별별수사대』를 몇년 전에 인상적으로 읽었다. 그 작품도 외계인을 다루었고, 우주에 관한 작가님의 관심과 지식을 짐작할만한 대목들이 군데군데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외 다른 작품은 못 읽어보았지만 이번 수상작을 보니 확실히 알겠다. 작가님은 오래전부터 SF 작품을 쓸 수 있는 내공을 닦아오셨구나. 그리고 드디어 이렇게 빛을 보았다. 아주 특별한 느낌의 SF였다. 과학이나 미래는 소재일 뿐 인간을 말하는 작품들이라는 느낌이었다. 책 제목이 『우주의 속삭임』 그렇다, 우주가 나온다. 그런데 그 우주가 탐험이나 개척의 대상이라기보다 어떤 근원을 말하는 느낌이 든다. 가늠할 수 없는 공간과 시간. 그 안의 나. 수많은 사람들의 사색과 철학의 대상이었던 나와 세계. 이 작품은 그 사색의 연장선에 있다는 느낌이었다.

호흡이 긴 작품을 기대했었는지, 첫 작품이 끝날 때 단편집이라는 사실에 살짝 실망을 했다. 그러고보니 표제작이 된 작품은 없었다. 5편의 단편이 실렸고 책 제목은 그 모든 작품을 아우르게 잘 지었다. 실망은 괜한 것이었다. 각 단편의 완성도가 모두 높았고 느낌은 다섯이 각각 다 다르면서도 특별했다.

첫 번째 작품 「반짝이는 별먼지」는 이별을 다루었다. 그 이별은 아주 먼 이별이었다. 산골의 허름한 숙박시설을 운영하는 할머니와 아이. 그 민박집 이름 ‘별먼지’는 참 의미심장한 이름이다. 주제까지 담은 이름이라고 할까. 할머니는 50년 전에 의문의 방송을 듣고 미래를 예견하는 엽서를 썼다. 그게 당첨되어 외계인이 선물을 가지고 ‘별먼지’를 방문했다. 오로타 행성으로 가는 우주항공권. 할머니는 이제 떠나실 때가 된 것이다. 이렇게 쓰면서 생각해보니 그 외계인은 마치 저승차사의 역할 같은데, 작품의 신비로운 느낌 때문에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할머니가 가신다는 오로타 행성 또한 여행지라는 느낌이 들 뿐이다. 할머니는 “내 몫의 여행을 떠날 때가 왔구나.” 라는 말씀을 남기고 우주선에 올라 빛과 함께 사라졌다. 의지할 데라곤 할머니뿐이던 아이가 남겨졌지만 슬픔도 참혹함도 없이 평온하다.

이 서사가 상징이어서 할머니의 여행이 즉 죽음이라면, 참으로 아름답게 묘사된 죽음이다. 육신을 벗는 일이 저토록 가볍다면 얼마나 좋을까. 광활한 우주. 그중의 먼지인 존재. 하지만 인생의 무게는 왜 먼지가 아닐까. 어느 순간 그 무게는 우주이기도 하지. 그것이 바로 인생의 신비인 것일까. 그 누구도 완벽히 규정할 수 없는.

두 번째 작품 「타보타의 아이들」에서 지구인들은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을 탐색 중이다. 화성과 타이탄을 개발했고 ‘타보타’라는 행성에 탐사 기지를 세웠다. 화자는 TAT-129라는 인공지능 로봇이다. 타보타에 파견된 전문가들은 모두 건강에 심각한 이상이 생겨 철수했고, 이곳엔 로봇들만 남았다. 인공지능인 화자는 나름의 판단으로 필요한 일들을 수행하며 타보타를 지키지만 지구인들은 사실상 이 행성을 포기한 듯 보인다. 그러던 어느날 감지된 생명활동! 그것은 폐쇄된 온실에서 발생한 원시생물인 지의류였다. TAT-129는 그것에 보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극진히 보살펴 키운다. 우리가 알듯이 세상 모든 것들 중 어떤 것은 소멸되고 어떤 것은 시작된다. 이것은 또 어떤 시작인 것일까? 작가는 그 이상을 말하진 않았다. 다만 로봇인 화자가 그 지의류에게 하는 말이 기분을 묘하게 만든다.
“보보 힘내, 이게 우리가 사랑을 나누는 방식이야.”

「달로 가는 길」의 주 소재는 ‘로봇’이다. 미래의 인간은 어디까지 로봇을 활용하게 될까? ‘달로 가는 길’은 바로 로봇이 소멸로 가는 길이다. 그게 왜 슬프게 느껴질까. 마지막 순간에서야 자신이 로봇인 줄을 알게 된 로봇(인간인 줄로 알고 살아왔던 로봇) 때문이었다. 로봇에 마음을 심는 일이 가능할까? 내가 상상력이 부족해서인지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데, 가능해지더라도 그건 안 했으면 좋겠다. 인간은 상실을 대체품으로 채우려고 하지만 아무리 미루어도 상실은 찾아온다. 그러니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들어오지 마시오」는 외계인에 대한 상상이 가장 재미나고 유쾌한 작품이었다. 못된 일당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주인공의 상황을 해결해 준 (본의인지 아닌지) 외계인 무아무아족. 이 무심한 외계인이 보여준 권선징악은 아주 후련했다. 그리고 그들이 과연 고향 행성에 돌아갔을까? 확인할 수 없는 열린 결말도 웃음이 났다. 다섯 편의 작품 중 가장 소품이라면 소품인데, 감정에 부담 없는 이런 작품이 하나 끼어 있는 것이 난 맘에 들었다.

마지막 「지나 3.0」은 앞의 작품에 가벼워진 마음을 다시 무겁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지구 멸망의 순간에 첨단 우주선으로 겨우 탈출한 가족. 그들은 인간이 살 수 있다고 짐작되는 태양계 밖의 어떤 낯선 이름의 행성으로 향하는데.... 우주의 광활함은 공포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 행성에 10년이 지나도 도착하지 못한다. 엄마와 동생은 동면에 들어갔고 우주공학자인 아빠와 장녀인 지나가 조종실을 지킨다. 그리고 20년, 30년이 지난다. 아, 그냥 글자만 읽는다면 모르겠는데 상상을 하면서 읽는 것은 힘들었다. 인간이 체감하는 시간 개념, 적어도 나의 체감에서는 저건 상상도 못할 고문이다. 멸망할 때는 그냥 같이 멸망하는게 좋겠어 라는 생각을....;;; 그러나 아빠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해 가능한 방법으로 그들의 존재를 남기고 있다. ‘지나 3.0’도 그중의 하나다. 그게 난 너무 부질없고 슬퍼 보였다. 그게 작가의 생각과는 한참 거리가 먼 생각이라 해도. 감상은 각자의 몫이니까. 작가는 뭔가 희망을 말하려는 것 같은데 나는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우주의 속삭임』이라는 제목 아래 이상의 다섯 단편이 담겨있었다. 제목이 의미깊다는 생각이 든다. 우주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인간 또한 우주를 알고 싶어 몸부림친다. 나야 먼지만큼도 모르지만, 많이 공부하고 알아본 사람들일수록 겸손해진다고 들었다. 내가 겸손해진다면 가끔씩 우주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을까? 그 속삭임이 평화로운 것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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