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귀신이 와르릉와르릉 1 - 딱 하나만 들려주오 초승달문고 49
천효정 지음, 최미란 그림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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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부적 이야기꾼 작가님들을 보면 이야기 주머니를 갖고 계신 것 같다고 표현하곤 했는데, 이 책에 바로 그 이야기 주머니가 나온다. 물론 내가 생각한 이야기 주머니는 좀 성격이 다르다. 이 책의 주머니는 모아서 넣어놓는 주머니였고 내가 생각한 건 화수분 같은 주머니다. 천효정 작가님이 갖고 계신(계시다고 내가 생각하는) 주머니가 바로 그 화수분 주머니다. 작가님의 노력을 깎아내리고 싶은 게 아니고, 정말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서사력이라서 그렇다. 타고난 이야기꾼!

 

벌써 10년이 지났나? 싶은 작가님의 첫 수상작, 삼백이 시리즈와 느낌이 비슷하면서도 전혀 새로운 이런 작품이 또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도 반갑다. 삼백이 시리즈는 교실에서 널리 읽히고 있고 아직도 열기가 전혀 식지 않았는데, 거기에 이 이야기 귀신이야기까지 가세.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상황이다.^^

 

천효정 작가님의 특기 중 하나는 그럴듯한 설정 만들기. 이야기에 빠지게 되는 설정을 정말 기가 막히게 만든다. 뼈대를 세우는 이것부터 너무 잘하시니 기본부터 먹고 들어가는 거다. 삼백이 때도 그렇더니만, 이 책도 그러네. 옛날 옛날에 밥보다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다. (여자아이로 나와서 더 좋았다. 균형이 맞는 느낌) 이야기를 갈구하는 이 아이가 안 가본 곳, 안 들어본 이야기가 없어 세상 사는 재미가 없던 차에, 예전에 인연이 있던 영감의 집에 찾아갔다가 보따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 보따리에서 나오는 소리 때문에 그 집은 흉가가 되었지만 아이는 알아낸다. 그 보따리엔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이야기 귀신들이 갇혀 있다고. 아이는 보따리를 풀어 이야기들을 훌훌 날려 보내준다. 그런데 여섯 이야기가 날지 못하고 빌빌대는 것이다. 사연인즉, 너무 웃겨.ㅎㅎㅎ

우린 너무 오래 갇혀 있는 바람에 본모습을 잃었소.”

우리조차 우리가 무슨 이야기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니 누가 우릴 알아보겠소.”

 

바로 이거다! 이제 여기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야. 아이가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 빌빌이들이 겨우 기억하는 부분을 어눌하게 말하면 야무진 아이는 딱딱 정리하고 빈 부분을 채워 새로운 이야기로 만든다. 이렇게 해서 두 권의 책이 채워진다. 이 책에 세 편, 2권에 세 편이 들어간다.

 

나는 이 설정에서 입을 틀어막을 정도로 좋았다. 이건 그냥 살아있는 교재야! 난 아이들과 이야기만들기 수업하는 걸 아주 좋아하는데 한 가지 소스 추가! 주인공과 동시에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빌빌이들 이야기까지만 딱 읽고, 각자 이야기를 만들고 발표한 후에 책을 이어서 읽어보는 거지. 물론 아이들은 작가님과 너무 비교되는 자신들의 결과물에 비명을 지르며 좌절할 수도 있지만, 그게 다 배우는 과정이지 뭐. 그 와중에 드물게 반짝거리는 보물을 발견할 때도 있거든.^^

 

하여간에 설정은 그렇고, 설정만으로도 너무 재밌었는데 이어지는 세 편의 이야기 또한 흡인력이 대단하다. 그냥 입맛이 짭짭 다셔지는 감칠맛. 입말체가 너무 자연스러우면서도 익살스럽다. 입말체를 읽다보면 여기에 작가의 말투가 반영되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워질 때가 있는데, 그게 맞다면 작가님은 엄청 웃긴 사람. 같은 말을 해도 더 재미나게 하는 사람.^^

 

거기에 재미를 더해주는 고마운 양념은 삼백이 때부터 함께해오신 그림작가 최미란 님의 그림이다. 특히 빌빌이 귀신들이 어리버리하게 자기 얘길 하는 부분은 만화 형식으로 구분하여 그리셨는데 효과가 만점이다. 글에도 그림에도 익살이 가득하니, 어찌 재미없을 수가 있으리오.

 

첫 번째 귀신은 운이 없는 사나이 이야기를 했다. 아니 근데 이게 운이 없다는 건지 있다는 건지부터 갈팡질팡한다. 우리의 야무진 주인공은 이 상황을 정리하고 세상에서 가장 운 없는 사내라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다 읽어보니 운이 있는 건지 없는건지 헷갈리는 상황까지 작품에 다 담았어! 참으로 절묘하다. 운이 있다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건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그 사내는 보통 기준으로 볼 때 엄청나게 운이 좋았다. 일확천금을 하는가 하면, 산길에서 구해준 처자가 알고보니 공주여서 왕이 되기까지 한다. 이보다 더 운 좋은 이야기 있음? 그런데 사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탄식 뿐이다.

아이고, 안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운이 없다 없다 이렇게 지지리도 없을 수가!”

이러면서 자신의 불운을 한탄한다. 그러다 마지막에 개똥에 미끄러지는데 신하들이 이제 죽었다 싶어 머리를 조아리는 가운데 사내가 한다는 말이,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사내의 운을 좋게 한 그것은 대체 뭐였을까. 그러게 사람마다 운의 기준이 다르다니까. 나의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지 말 것이며 남의 기준에 맞추려도 애쓰지도 말지어다. , 그러니까 행복의 조건은 도처에 숨어있는 것이니.

 

두 번째 귀신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이야기는 신기한 대나무 베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잠보. 왠지 나인 것 같잖아? 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가장 소중한 물건은 베개. 와 정말 딱 나네! 내가 언젠가 남편한테 내가 가장 사랑하는 무생물은 이불이랑 베개야.” 라고 했더니 남편이 웃음을 깨물며 나가다 말고 방구석에 이불과 베개를 꺼내놓고는 푹 자라고 어깨를 두드려주고 나갔다. 나같은 주인공이 있다니!ㅎㅎ

 

어느 날 아끼던 목침이 쪼개져버린 잠보는 대나무를 쪼개 새 베개를 만들었다. 쌍둥이 같은 두 베개를 나란히 놓고 자다가 함께 누울 이가 없다는 생각에 미친 잠보는 광고를 낸다.

푹 자고 싶은 이라면 누구나 환영! (매일 밤 선착순 한 명 모집)”

그리하여 다양한 존재들이 잠보의 옆에서 쌍둥이 대나무 베개를 베고 하룻밤 잠을 자고 간다. 선비, 할머니, 호랑이에 저승사자까지 각양각색에다 저마다의 사연도 재미나기 짝이 없다. 그런데.... 마지막이 좀 쓸쓸한가 싶었는데 그게 아닌 것도 같아. 마지막 주인공은 바로 그의 그림자였거든. 어제도 그림자 이야기를 읽었는데 신기하다. 하여간 한 이불을 덮고 사이좋게 잠이 들었다니 잘 됐지 뭐야.

 

세 번째 귀신의 이야기는 배경이 지넷골이다. 연약한 소녀들을 잡아가는 왕지네. 우리의 주인공은 그 이야기를 이렇게 바꿨다. “몰랐어? 지금 소녀들은 하나도 안 연약하거든.” 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귀신에게 하면서 말이다. 바꾼 이야기의 제목은 빨래꾼과 복복이. 씩씩한 빨래꾼 소녀는 빨랫방망이 하나로 어찌나 깨끗하게 삯빨래는 하는지 아주 동네의 보물이다. 부모를 잃고 복복이라는 병아리(?)와 둘이 산다. 없는 형편에도 복복이를 잘 먹이며 소중하게 키운다.

 

드디어 이야기 귀신이 말한 왕지네가 나올 차례가 되었다. 왜 있잖은가? 제물로 소녀들을 바쳐야 하는 이야기. 하필 이번에 빨래꾼이 뽑힌 거다. 하지만 이야기란 건 변화무쌍하면서도 공통적인 고갱이 같은 것이 있잖아. 바로 키워준 동물이 은혜를 갚는 설정. 복복이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무서운 왕지네에 대한 실감나는 묘사, 당당한 빨래꾼의 모습, 복복이의 활약까지 여기도 재미가 한가득이다. 이렇게 하여 1권이 끝나고, 나머지 세 귀신의 이야기도 궁금하여 독자는 2권을 사러 간다.^^ 거기다가 부록처럼 덤 이야기 하나가 뒤에 붙어있는데, 그것도 센스 만점. 이야기를 만드는 주인공 아이가 윙크를 하면서 나를 보네. 그래, 바로 나!를 말이야.ㅎㅎㅎㅎㅎ

 

이 책도 대박이 날 느낌이다. 왜냐하면 이게 소장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혹시 빌려주게 되면 꼭 챙겨서 받을 거고, 웬만하면 사시라고 권하겠다. 교실에 있어도 활용할 일이 많고, 가정에 있다면 닳도록 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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