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 - 제5회 웅진주니어 그림책 공모전 우수작 웅진 모두의 그림책 47
길상효 지음, 조은정 그림 / 웅진주니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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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의 글자는 딱 이것 뿐이다. 한 살, 두 살, 세 살.... 한 장에 하나씩.
그리고 모든 서사가 그림에 들어있다. 나이와 함께 달라지는 그림이 모든 걸 다 말해준다. 상세한 문장이 필요하지 않다.

한 여자아이와 개 한 마리는 비슷하게 태어났다. 동갑.
세 살부터 개는 이미 어른이다. 아이보다 더 크다. 집에서 키우기에는 무척 큰 개다. 잘은 모르지만 셰퍼트 종류인 것 같고.
남들에겐 무서워 보일 수 있겠지만 아이에게는 만만한 친구일 뿐이다. 바닷가에서 좋아라 함께 뛰놀고,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에게 날 듯이 돌진하며 반긴다. 아파서 물수건을 대고 누워있는 아이 곁을 애타는 표정으로 꼼짝않고 지키기도 한다.

커가면서 아이는 개 말고도 다른 친구들이 생긴다. 그 친구들과 노느라 개는 안중에도 없을 때도 있다. 책가방 속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개를 원망하며 엉엉 울 때, 납작 엎드린 개의 표정에 웃음이 난다. 근데 이때가 여덟 살, 보통 저런 저지레는 한 살 때 많이 하는데...ㅎㅎㅎ

아홉 살에 최대 위기가 찾아왔다. <강아지를 찾습니다> 라는 방이 붙었네! 다행히 찾았는지 열 살에는 산책하는 개가 나온다. 역시 큰 개는 산책도 만만치 않구나.

열한 살, 사춘기가 찾아온다. 개는 아기때 물던 인형을 여전히 물고 아이를 애타게 바라보지만 사춘기 소녀는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서 그 모습을 봐주지 않는다. 아이는 이제 공부가 바빠지고, 엄마와 대치하는 때가 온다. 어릴 때처럼 즐겁게 놀지는 않아도 소녀의 옆에는 항상 개가 있다.

열다섯 살.... 개가 이때까지 살면 그런대로 천수를 누린 거다. 더 이상 개는 등장하지 않는다. 예의 그 장난감이 무심하게 놓여있는 한 장면이 갑자기 흑백으로 바뀌어 개의 떠남을 알려준다.ㅠㅠ

개가 없어도 소녀의 일상들은 흘러간다. 어느새 소녀는 성인이 되었다. 어느날 버스를 타고 가던 소녀의 핸드폰 화면에서 그 친구의 모습이 보인다. 동갑인 그 친구... 두 동갑 친구는 서로를 마주본다. 앞표지는 아기 때의 천진한 마주봄, 마지막장은 지나온 세월을 다 담은 조용한 마주봄이다.

개와 인간의 속도는 이렇게 달라서 아픈 이별을 각오하고 함께해야 한다. 생각만 해도 거부하고 싶은 일들이다. 하지만 일단 시작한 만남은 야속한 마지막을 향해서 그저 달린다. 모든 세월이 그렇듯이 붙잡을 수 없다. 그저 오늘의 행복을 감사히 여기며 소중한 친구와 눈을 맞출 뿐이다. 내 눈앞에 누구보다 충직한 나의 친구가 있다.

충직이라고 쓰고보니 나는 조금 웃음이 난다. 우리집 개는 워낙 제멋대로라서.... 학교앞에서 자취를 하던 딸이 대책도 없이 어느날 강아지를 받아왔다. 집에 두고 가래도 기어이 자취방으로 데려가더니, 분리불안 강아지를 만들어 결국 집으로 데려왔다. 집에 와서 혼자 계신 할아버지의 위안이 된 것까진 좋았는데, 요즘 사람들이 강아지를 어떻게 키우는지 전혀 모르시는 할아버지는 아주 천방지축 날뛰는 강아지를 만들어 놓으셨다. 아니 사실은 개도 천성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더구나 푸들의 피가 흘러 아주 영악하고 자기가 싫은 건 웬만해선 안한다. 낯선 이를 보면 짖어대서, 엄마(나)처럼 서열이 낮은 사람들은 산책도 시키기 어렵다. 원주인인 누나나 아빠가 시켜줘야 말을 듣는다.

그리하여 나는 우리 개를 견계의 금쪽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금쪽견도 똑같이 가진 게 있다. 그건 바로 기다림이다. 기다림과 반겨줌. 사람 올 시간을 어떻게 알고 현관 앞을 꼼짝 않고 지키는지. 안오면 올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개. 뭘 하든 내 발치에 자리잡는 개. 사람의 감정을 읽는 개. 공감하고 위로하는 개.

인생의 만남과 헤어짐은 숙명이고, 헤어짐이 두려워 만남을 피할 수는 없는 바, 우리 곁에 있는 친구들과 최대한 눈맞춤을 하리라 다짐해본다. 누군가는 나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고 나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겠지. 그 기억이 아름답도록 오늘 하루를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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