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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독후감 못 쓰겠어요! ㅣ 독깨비 (책콩 어린이) 79
야마모토 에쓰코 지음, 사토 마키코 그림, 김지연 옮김 / 책과콩나무 / 2023년 7월
평점 :
흔한 소재이고 뭔지 대충 알 것 같다는 느낌으로 책을 펼쳐들었는데,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뻔하지 않다는 건 일종의 희열이랄까? 그렇지! 이 맛에 이야기를 읽는 거다.^^
제목과 전혀 다른 이야기인 건 아니다. 독후감 이야기는 시종일관 나온다. 그게 한 줄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의외인 건 또 한 줄기가 있었다는 것. 그 줄기가 어찌보면 더 두꺼웠다. 그건 이야기 만들기였다. 말하자면 창작.
아이들과 창작(이야기 만들기) 수업을 해마다 하는데 (특별히 시간을 따로 내서 하는 건 아니고 국어 교과에 창작이 나올 때 시수를 충분히 늘려서 하는 정도) 그때 도입이나 과정 중에 참고할 책들이 이미 많다. 이것저것 꼽아 놓았지만, 다 사용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책이 하나 또 추가되네! 즐거운 비명이다.
때는 3학년 여름방학. 방학 중 학교에 나와야 하는 날. 방학숙제 중간 제출(?)을 한다. (방학중 등교일이 있는 것도, 각종 방학숙제가 잔뜩 있는 것도 우리나라 수십년 전 학교모습 같다.)그런데 미츠카만 독후감 숙제를 안 해왔다. 못 쓰겠다고 뻗대는 미츠카를 담임선생님이 요령껏 설득하셨지만 그래도 미츠카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단짝 아카네와 그 이야기를 하며 돌아오다가 일은 이렇게 된다. 직접 이야기를 쓰기로!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읽고 독후감을 쓰기로!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들고 앉아 아카네는 글을 쓰고 미츠카는 그림을 그리기로 한다. 다행히 미츠카는 그림에는 소질이 있어서 아주 귀여운 그림책이 되어간다. 아카네가 아끼는 동생 다쿠가 나오는 이야기를 만들기로 한다. 둘이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이 길 저 길을 모색해보는 과정이 바로 이야기의 창작 과정이다. 언뜻 보면 시시한 과정일 수도 있겠지만 잘 들여다보면 작가의 고민과 계산이 다 들어있는 과정이다.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의도성이 잘 보이지 않지만 그것까지도 의도한 과정이다.
그러는 중에, 인물이 등장하고, 사건이 일어나고, 전개되고, 점점 더 크고 긴박한 사건으로 발전되고, 갑자기 결말로 뚝 떨어지지도 않고, 너무 착해서 어색한 이야기가 되지도 않고, 적당한 곳에서 방해꾼도 나타나고, 조력자도 등장하고, 마지막 괴물에게서 다쿠를 구해내며 이야기가 끝난다.
이야기를 만드는 중에 동생 다쿠를 생각하는 아카네의 마음이 참 각별하다는 걸 볼 수 있다. 미츠카는 그걸 ‘사랑’이라고 명명했다. 그러고나니 저절로 이런 말을 하게 되었다.
“쓰고 싶은 말이 잔뜩 생겼어!”
그래, 이제 그걸 쓰면 돼. 그게 바로 ‘독후감’이지! 미츠카의 독후감은 처음 쓴 것이라기엔 너무 훌륭하다.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그 한 장의 독후감은 단지 한 장이 아니니까. 창작의 과정까지 함께한 결과물이니까.
둘이 만든 그림책 『아카네 누나, 힘내!』를 선생님이 학급문고에 살포시 끼워 넣으시며 이야기가 끝난다. 아이들의 창작이 공유되고 학급문고로까지 완성는 과정은 학급의 1년살이 중 흐뭇한 장면 중 하나다. 이런 기회를 최대한 많이 만들고 싶다.
인생의 희락을 다양하게 모르는 나는 독후감 쓰는게 유일한 취미생활인데....ㅎㅎㅎ 근데 아이들은 대부분 싫어하지. 그 과정을 단계적으로 이끄는 것도 교사의 역할이다. 이 책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책의 주인공들이 3학년이라 대상 독자도 3학년이 적당하겠지만 4학년 수준에 가장 알맞을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