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자 신데렐라
리베카 솔닛 지음, 아서 래컴 그림, 홍한별 옮김 / 반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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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를 재화할 때 그 원형을 손상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몇 번 있다. 옛이야기가 지금의 시각에서 언뜻 잔인해보이고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인간의 무의식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원형을 손상하게 되면 그 안에 들어있는 심리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했다. 상당히 일리있는 내용이었고, 납득했다. 그래서 패러디도 함부로 할 것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옛이야기가 절대 손대서는 안되는 금기의 구역일 수는 없을 것이다. 시대에 따라 가치관이 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지금으로서는 전혀 동의할 수 없는 가치관이 반영된 이야기가 있다고 할 때, 그걸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새롭게 조명해보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참 흥미롭게 읽었다.

 

해방자라는 말이 나는 좀 주제넘게 느껴진다. 누가 누굴 해방시킨단 말이야. 무릇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해방할 뿐이야, 라는 생각을 한다. 신데렐라가 선구적 행동으로 어리석은 뭇 대중들을 착착착 해방시키는 내용이라면 재미가 없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결이 좀 달랐다. 어찌보면 신데렐라는 자신을 해방시켰을 뿐이다. 주변 사람들 또한 그랬을 뿐이고.

 

패러디 작품이지만 초반에는 원작과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어디서부터 다른 길로 갈까? 기대하며 읽는 것도 재미있었다. 새엄마와 언니들, 구박데기 신데렐라, 왕자님의 파티, 대모요정의 마법, 유리구두... 까지는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결정적으로 달라진 지점은 이 부분이라고 나는 느꼈다. 왕자와 신데렐라가 서로 질문을 하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당신이 도망간 사람이군요. 왜 도망갔어요?”

당신 꿈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대하여 두 사람은 각각 이렇게 대답한다. 먼저 신데렐라부터.

내 케이크 가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내가 요리할 때 쓰는 재료들을 기르는 농장에 가서 그곳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요. 또 회색 얼룩무늬 말을 타고 싶고 배를 타고 당당하게 만으로 들어오는 어머니를 보고 싶어요.”

왕자의 대답은 이렇다.

가끔 내가 왕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면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왜 자기들은 가진 게 부족한데 왕자는 저렇게 많이 가졌을까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요. (중략) 무언가를 길러내는 법을 배우고 싶고 낮에 땀 흘려 일하고 밤에 푹 잘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성에서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거든요. 또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무도 왕자와는 친구가 되지 않아요.”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은 서로에게 친구가 되어주었다.

 

약간은 거슬리는 대목도 있었는데, 작가가 패러디를 통해 계몽이나 교훈을 주려고 직접 말한다는 느낌이 들 때...

누구든 힘든 사람을 도우면 대모 요정이 될 수도 있고, 또 누구든 못된 새어머니처럼 될 수도 있어. 우리는 다들 마음속에 그런 굶주림이 조금은 있지만, 그래도 나한테 넉넉히 있어.”라든가 , 이거 가져.” 또는 잘 지내니?”라고 묻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수도 있단다.

이런 대목들이다. 말이야 다 옳다마는.... 이렇게 설교를 하게되면 약간 현대와는 안맞더라도 원형 그대로의 이야기가 훨씬 낫다.

 

맘에 드는 대목은 신데렐라와 언니들의 결말이다. 신데렐라는 집을 나왔고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을까?) 언니들도 각기 자신의 관심 분야에 맞는 직업을 가졌다. (미용사, 재봉사) 그리고 가장 좋았던 건, 공주는 왕자와 결혼해 궁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원작이 이렇다면 신데렐라 콤플렉스라는 말도 생기지 않았겠지.ㅎㅎ 그리고 신데렐라는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고 한다. 그 이름은 엘라. (신데렐라에서 라는 뜻의 신더를 빼면 되는 이름) 아참, 왕자의 이름이 네버마인드인 것도 재미있다. 작가는 어떤 생각으로 그 이름을 붙였을까?^^

 

그림자처럼 실루엣만 나온 삽화도 마음에 들었다. 문체도 유려하다고 느꼈다. (번역을 잘하신 거겠지만 원작이 그러하니 그런 느낌이 나오는 거겠지.) 같은 작가가 쓰신 깨어있는 숲속의 공주는 어떤 내용일까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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