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자격 -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김현규 지음 / 푸른칠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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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페북에서 김현규 선생님의 글을 좋아하고 '좋아요'도 곧잘 누르는 독자다. 언제 어떻게 페친이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고 실물을 본 적도 없지만 꽤 '아는 사이' 같은 느낌이 든다. 그건 순전히 그의 글 때문이다. 어떤 날은 몇개의 단문에 혼밥 사진만이 올라오기도 하고, 어떤 날은 신변의 이야기가, 어떤 날은 수업 이야기가, 혹은 교육문제에 대한 심각하거나 복잡하거나 울분에 찬 주장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의 대부분의 글을 읽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읽혀서.....?^^;;;; 그의 글은 재미있고 선명하다. 공감할 수 있고, 혹은 이해할 수 있고. 그래서 책이 나온다는 소식에 매우 반가웠다.

김현규 선생님은 중등 국어교사시고 기간제교사다. 난 초등이지만 국어수업에 애착이 많아서 뭔가 동질감이 있다. 하지만 기간제교사의 애환에 대해서는 깊이있겐 모른다. 내게 어렵게 다가오는 건 불안정성보다도 급작성이다. 임기응변, 갑자기 닥친 상황에 대응해야 하는 직종. 하지만 저자를 보면 임기응변이 아니다. 그에게는 계획이 다 있다. 바로 언제 어디서 어떤 내용의 수업을 해도 줄줄~ 나오게끔 머릿속에 짜여져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상당한 실력자들의 인력풀이라 생각하고, 그 지원이 있기에 가능한 일들에 감사함을 느낀다. 특히 저자는 대중을 다루는 기술이 유달리 좋으신 것 같다. 레크레이션 강사 수준으로...(부럽다) 그래서 갑자기 만난 학생들을 들었다놨다 열광적인 수업을 이루어내기도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옴쭉달싹 할 수 없이 무너진 교실상황 속에서 좌절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그러저러한 여러 상황 속에서 떠오른 단상이나 학생들에게 전하는 말들, 교사들과 나누고픈 이야기들이 이렇게 에세이집로 묶였다. 가볍게 읽어도 좋지만 잘 기억했다가 써먹고픈(?) 생각들이 많아서 특히 좋았다. 그리고 저자보다 10년이나 더 교단에 있었으면서도 뭔가 명확히 말로 잡아내지 못했던 생각들을, 아니면 언젠가 페북에 쓰고 흘려보낸 생각들을 책에서 발견할 때 무척 반가웠다. 와우, 내가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신발이 여기 딱 가지런히 놓여있네! 이런 기분이 들기도 했다.

각 편은 2,3쪽의 짧은 분량이라 꼭지 수는 상당히 많다. 장당 20여 꼭지로 총 3장 구성으로 되어있다. 장별로 내용이 칼로 끊듯 구분되진 않는다. 조금씩 중점이 다를 뿐 3장 모두 '교사'가 말하는 이야기다. 어떤 꼭지에선 기간제교사고, 혹은 방황하는 학생을 일으키는 상담자이며, 협력하는 학교구성원 중의 한 명이기도 하고 난감한 현실 앞에서 굴욕감에 몸을 떨며 듣지도 않는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나약한 교사일 때도 있다. 저자는 자신을 '평범한' 교사라고 인식하고 있는데, 나와 비교해보면 훨씬 능력자로 보이지만 어쨌든 희로애락을 함께 느끼는 동료교사로서 동질감을 많이 느낀다. 그런 저자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교사의 자격을 말하고 있어서 위로가 된다. 최선을 다하려곤 하지만 자주 어설픈, 학생들을 위하려곤 하지만 나의 모든 것을 내어줄 순 없는, 훌륭한 이상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어서 자책하곤 하던 나에게 이 평범한(자칭일지라도) 교사의 고백은 편안한 친구가 되어준다.

그렇다고 우리가 막 사는 건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지. 저자나 나나 이 땅을 매우 조심스럽게 밟고 있다. 그건 단지 여기가 지뢰밭이고 숨만 잘못쉬어도 아동학대로 곤욕을 치러야 할 빌어먹을 직장이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이 일의 막중함을 알고있다. 그래서 함부로 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중년의 나이까지 살며 확신을 갖게된 인생의 법칙들에 대해선 애타는 마음으로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그건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이며 이것은 어떻게든 여러가지 외형으로 드러나게 되어있다. 가장 크게는 기본생활습관이다. 이것을 크게 보는 것이 저자와 나의 공통점이라고 느꼈다.

[명확한 개념을 잡는 연습]이라는 꼭지(69쪽)에서 저자는 허세와 만용으로 돌진하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방법으로 잘못된 '개념'을 잡아주는 방법을 쓴다. 저자가 유식하고 달변이어서 가능한지는 모르겠으나 나도 연구하고 싶은 방법이다. 섣불리 대치하다 지쳐서 "그래 그냥 그렇게 살다 죽어라." 라고 생각한다면 0보다도 못한 마이너스가 된다. 개념을 통한 설득. 이기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이 교육이라서 하는 것이다. 사리가 쌓이는 것은 사양하고 싶지만서도.

[기본이 시작이자 마무리]라는 꼭지(77쪽)에서는 "약한 마음은 비범한 것에 관심을 갖고 위대한 마음은 평범한 것에 관심을 갖는다"는 파스칼의 명언을 인용했다. 머리 큰 애들한테 이런 말이 통하려면 얼마나 '잘' 이야기해야 할까. 초등에서부터 잘 가르쳐서 올려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들도 동의하고 협조하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텐데 라는 생각도 든다.

[배움이 일어나는 순간] (84쪽)에선 오래 걸려 깨달았지만 코로나 이후 또 주춤하고 있었던 원칙, '서툴더라도 스스로의 말로 하게 하라'를 다시 떠올리게 되어 기뻤다. 배움은 교실이라는 공간에 와있다고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학생의 자발적 노력이 필요하고 그걸 촉진하는 교사의 수업기술도 중요하다. 교사는 그래서 연구해야 한다. (뜨끔)

[너는 참 좋은 사람이야] (109쪽)에서도 오래 걸려 깨달았던 원칙 하나가 아주 쉬운 말로 놓여 있어 반가웠다. 교사가 칭찬해주는 직업인 건 아니다. 고래 칭찬론을 난 갖다버린지 오래다. 하지만 교사는 칭찬을 포기해선 안된다. 밝은 눈으로 찾아야 한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학생의 '성장의 지점'을 정확히 캐치해야 하고 그걸 혼자만 알고있지 말고 본인(때로는 보호자 포함)에게 꼭 일깨워줘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의 칭찬이란 그런 것이다. 참 착해요~ 다 잘해요~ 문제 없어요~ 이런 말을 은연중에 강요받지 않았으면 한다.

[똑똑한 사람, 힘센 사람, 강한 사람] (197쪽)에서 교사의 정체성에 대한 저자의 통찰력을 본 것 같았다. 나는 똑똑한 사람에 대한 경외심이 있고, 대체로 유약한 편인 나의 성품 때문에 힘에 대한 추구도 무의식에 많이 있다고 느낀다. 저자는 교단에 선 교사에게 다양한 종류의 도전이 오기 때문에 '강한' 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 강함이란 유연해야 하고, 순도만 높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철 이외의 불순 금속이 섞여야 강한 쇠가 되듯이) 특히 '내 안에서 교사의 역할이 아닌 개인이 나오는 것'에 대한 경계를 하셨는데 매우 공감한다. 그런 모든 것의 조절이 가능한 교사가 강한 교사다. 몇 년 안남았지만 나도 한번은 강한 교사로 살아보고 싶다.ㅎㅎ

책의 내용에 대한 언급을 하려고 보니 끝이 없어서 여기까지만.... 수많은 꼭지가 있으니 독자마다 다 다른 꼭지로 감상이 전개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이렇게 허심탄회한 이야기의 판을 깔아주신 것 같다. 슬프고 괴로운 작금의 교단에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해야 할 이야기가 많다. 껍데기 안으로 들어가면 더욱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아무쪼록 지금의 진통이 좀더 나은 교단을 만들기를 빌며 아픈 우리 중의 한명인 현규쌤의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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