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의 걷기 클럽 사계절 아동문고 108
김혜정 지음, 김연제 그림 / 사계절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함께 걷는다는 것의 의미. 나이 든 나는 이제 알 것도 같지만 열세 살로 대표되는 사춘기 학생들이 이걸 잘 알 수 있을까. 하지만 작가님은 작품에 더할 나위 없이 잘 표현해 내셨다. 이런 것이 함께 걷는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걷기걷기 클럽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실제 걷기이기도 했고 비유적인 의미의 걷기일 수도 있다. 이렇게 의미가 꽉 찬 작품을 만나면 뭔가 보람된 기분이 들면서 흡족한 마음이 된다. 거기다가 한 번에 끝까지 쭉 나가는 재미도 있었다. 유머나 웃음은 없지만 진지한 재미라고 할까. 열세 살쯤 되면 그런 걸 알게되는 나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클럽 결성을 해야되는 상황이 되고, 주인공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어딘가에는 꼭 들어가야 해서 얼떨결에 뭔가가 시작되고, 거기서 만난 외인구단 같은 아이들이 의외로 잘 맞아서 다양한 서사가 펼쳐지고, 그러다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절친으로 거듭나는..... 그런 이야기를 외국 동화들 중에서 몇 번 읽어본 적이 있다. 일단 설정은 그렇게 독창적이지는 않다고 보겠다. 하지만 읽어가며 어디에도 몰입을 방해하는 기시감은 없었다.

 

윤서는 새로 입주하는 동네의 학교로 5학년 말에 전학을 왔다. 6학년이 되어도 친구는 없다. 특별한 갈등이나 문제가 불거지진 않지만 윤서 자신의 내적갈등은 깊다. 그래서 늘 벽을 친다. 모든 일에 시들하고 하기 싫어한다. 하물며 강제적 운동클럽이라니.

 

던지듯 말한 걷기 클럽에 학급의 최고 오지랖쟁이 강은이 들어오겠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던 윤서의 속셈은 어그러진다. 거기에 열정적인 담임선생님이 자원에서 담당을 맡고, 5공주파 같은 무리에서 밀려나고 있는 중인 혜윤, 유일한 남학생인 재희가 들어왔다. 담임선생님을 따라 마지못해 운동장을 걷던 아이들은 점차 영역을 넓혀간다. 여름방학에는 자기들끼리 시간을 정해 호수 걷기를 진행하고 진행 상황을 공유하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들 각자가 가진 아픔들이 드러난다. 다양한 문제가 잘 짜여져 들어가 있어서 역시 작가의 역량을 실감하게 되었다. 화자인 윤서는 전학오기 전 가장 사랑했던 친구의 당부를 지켜주지 못해 곤경에 빠뜨렸다는 죄책감에 모든 마음의 문을 닫았고 부모님과도 갈등한다. 오지라퍼인 강은은 항상 발벗고 나서서 친구들을 도와주며 밝고 친절하다. 하지만 이런 아이의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 가장 심각한 법이다. 혜윤은 버티고 싶었던 5공주 그룹에서 결국은 밀려났다. 밀려나는 과정이 좋았을 리는 없으니 상처를 많이 받았다. 혜윤의 문제는 말이 너무 직설적이라는 점이었는데, 5공주파를 떠나 걷기 클럽에 와서도 그 성향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겁한 방법으로 친구를 따돌린 그 아이들과는 달리 걷기 클럽에선 그것을 친구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봐주었다. 불편할 때는 얘기하고 장점일 때는 고맙게 여겨 주었다. 개인의 성격은 관계에서 무척 중요하지만 어떤 그룹에 있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발현되기도 한다. 악의적인 면이 없다면 개인의 특성은 장점으로 다듬어지도록 주변의 이해도 필요하다. 물론 성향이 도저히 맞지 않는다면 갈라지는 것도 얼마든지 괜찮은 일이다. 그것에 너무 집착할 필요도 없고 호들갑을 떨 필요도 없다. 부모님들도 이런 면에 좀 쿨한 태도를 가졌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재희는 공부를 아주 잘하는 남학생이지만 외모에 자신감이 매우 부족하다. 이 나이 때 외모는 많이 중요하지. 어쩌면 공부보다 더..... 더구나 재희는 학원에 짝사랑하는(고백하고픈) 여학생까지 있었으니. 방학중 호수걷기를 주도한 것도 재희였는데 이를 통해 극기의 다이어트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머지 3명 여자아이들의 도움을 받아 스타일 변신에도 성공한다. 그러나 짝사랑까지 성공하게 될지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평소 명랑하여 분위기 상승과 해결사의 역할을 도맡아하던 강은의 진통이 가장 컸다. 강은이 문을 닫아걸자 비로소 그 존재감이 얼마나 컸었는지 드러났다. 나머지 세 명은 진심을 다했고 비로소 강은이 문을 열고 나왔을 때 함께 기뻐했다. 내 사전에 진통이 없었으면 좋으련만 그런 삶은 있을 수 없으니 잘 극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녀가 속상한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겠다고 발벗고 나서거나 원망하는 부모님들은 이 책을 자녀와 함께 읽으시면 좋겠다. 피할 수 없는 진통, 그리고 그 극복 과정을 통해서 회복탄력성(리질리언스)이 길러지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나 자신도 솔직히 엄청난 회피성향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윤서가 예전 절친에게 연락을 받고, 과거의 일이 결과적으로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알게되는 장면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행복했다. 다행이야. 진통은 아직 남아있지만 힘내서 살아가렴. 그럴만한 힘을 길렀으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어.

 

왕따, 아동학대, 학폭 과정의 부작용, 어린 영재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성장과정 등 여러 가지 문제의식이 한 권 안에 들어가 있는데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잘 짜여 들어간 점을 가장 높이 평가하고 싶다. 너무 극단적인 캐릭터가 없다는 점도 내 취향으로는 읽기 편했다. 걷기라는 운동이 시나브로 우리의 체력을 올려주듯이, 함께 걸었던 네 명 아이들의 마음이 함께 건강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좋았다. 그런 모습을 현실에서도 많이 보고 싶다.


걷기.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다는 점도 위안이 된다. 나랑 같이 걷기 클럽을 하실 분 그 누구인가.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