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 소녀 바일라 17
장미 지음 / 서유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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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새롭고 특별한 느낌의 청소년 소설을 만났다. 굳이 청소년 소설로 분류할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주인공이 청소년이긴 하지만, 청소년의 세계에 한정된 서사도 아니고 화자도 여러 명이며 세대도 다양하다.

 

인간의 가당치 않은 차별의식은 뜻있는 작가들에 의해서 자주 지적되곤 한다. 현실적인 서사로, 때로는 비유나 상징으로.... 이 책에서는 새로운 상상이다. 하이브리드 인간. 외계인과 지구인의 혼종이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면, 차별로 가는 길은 자명하다. 그들은 잠재적 위험요인으로 지목받고, 그들 중 일부가 저지른 잘못은 전체의 정체성이 되어 비난받는다. 누군가는 두려워하고, 누군가는 혐오하며,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진 누군가는 복수심에 그들을 파괴하려고 한다. 그 사이에서 당사자들, 태어나보니 하이브리드인 사람들, 꿈에도 모른 채 살다가 갑자기 알게 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따돌리고, 괴롭히고, 심하면 집단 린치를 가하기도 하는 등의 사회적 문제도 나오지만 그보다는 개인 서사에 집중되어 있다. 그게 오히려 더 문제의식을 가깝게 느끼게 한다. 중심 화자는 반은하라는 17세 여학생. 평범하게 살아왔지만 돌아보면 부모님의 기색이 심상치 않았고, 특히 엄마는 비범하게 소멸(죽음)을 맞았다. 이제 은하는 엄마를 잃은 평범치 않은 소녀가 되었다. 게다가 별 생각 없이 했던 DNA 검사에서 하이브리드라는 충격적 결과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 검사가 보내준 정보는 그뿐이 아니었다. 본인의 유전자와 일치하는 사람이 강원도에, 아빠의 유전자와 일치하는 사람이 독일에 살고 있다는..... 이 사연들에는 어찌보면 막장드라마의 단골 소재 같은 출생의 비밀들이 등장하지만....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관점이 들어있어 괜찮았다고 할까. 이들 모두가 번갈아 화자로 등장하는데 각자의 입장과 생각이 다 공감이 간다. 독일에 있는 에마 슈미트 양은 이렇게 말한다.

DNA로만 따지면 나는 미카엘이나 콜리보다 반진택, 반은하와 더 가까운 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초파리를 두고 사촌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닌가.

결국 DNA라는 건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편으론 절대 그렇지 않은 것이기도 하지.

 

굉장히 스케일이 큰 소재에 비해서 사건의 방향은 파국으로 치닫거나 대단한 반전을 보이지는 않았다. 상당히 순한 맛 버전으로 내게는 느껴졌는데 그건 내 취향이기도 하다.^^;;; 하이브리드 소녀, 반은하는 결국 외국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적응해 가는데, 그곳에서 민박을 운영하며 은하를 돌봐주는 어른은 이 책의 작가. 그 작가는 하이브리드 소녀를 보며 이렇게 쓴다.

하이브리드건 뭐건 모든 존재는 각기 다른 특징과 개성이 있고, 그것들은 그 존재의 장점이 되기도 하면서 동시에 단점이 되기도 한다. 신의 손바닥이라고 불리는 동네에서 소풍온 듯 살고 있는 나에게 지구 위 각 존재의 히스토리는 흥미로우면서도 어렵게 지어진 책 한 권과 같다. 하이브리드를 포함하여 모든 생명이 죽고 사는 문제, 흥하고 망하는 문제는 창조주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할 수 있는 한 이웃에게 친절하며, 베풀 수 있는 대로 베풀며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도 행복한 일 아닐까.

 

작가가 작가의 입을 빌려 이렇게 작가의 육성을 그대로 들려주어도 되는 것일까 잠깐 놀라기는 했지만 이 말에는 지극히 공감한다. 모든 이들을 나를 속이려는, 나를 해하려는 존재로 가정하고 한치의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머리싸움을 하는 세상이 너무 피곤하다. 눈치와 판단력이 부족해 손해보고 당한다는 자책을 하고 난 후에는 경계심과 견제로 나를 무장해야 한다. 이걸 던져버리고 살면 얼마나 자유롭고 편할까.

 

그래서일까. 은하는 안티 하이브리드임을 속이고 자신에게 접근했던 수정 언니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를 받는 수정은 어떤 마음일까. 어떤 말을 할까. 나는 짐작할 수 없다. 그게 비웃음이거나 냉소이거나 아무 감정 없는 쓰레기통행이라면, 은하는 바보짓을 한 걸까. 모르겠다.

 

요즘 들어 아이들에게도, 학부모에게도 무장해제를 한 것을 후회하게 될 때가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몰라도 학부모에게는 웬만해서는 무장해제 자체를 잘 안 한다. 신뢰가 아닌 감시나 트집, 시비가 기본인 사람들에게 무장해제를 했다가 무슨 꼴을 당하려고? 그렇지만 안보여서 그렇지 선의와 신뢰를 보내주는 분들이 훨씬 많잖아? 그렇다면 나의 무장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ㅠㅠ

 

은하는 그 시골학교에서 코미디 동아리에 들어가는데, ”코미디야말로 최고의 종합예술이라는 말을 듣는다. 나는 잘 모르는 분야긴 하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코미디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일이라면, 적어도 형체도 알 수 없는 재물을 불리느라 좀비처럼 살아가는 것보다는 훨씬 가치있겠지. ‘작가는 또 이렇게 이야기한다.

웃음과 사랑이 부족한 지구인, 이기적이고 독한 기운만을 내뿜는 지구인이 사라지면 코미디의 가치를 아는 하이브리드가 지구를 지켜나갈 것이다.

 

무장도 할 줄 모르는 주제에 무장을 하려고 용쓰면서 살기 너무 피곤하다, 코 베어갈까봐 눈을 부릅뜨기도 너무 힘든 세상이다. 그 와중에 하이브리드로 살기는 더더욱 힘든 세상. 정말 우리들의 세상이 끝나야 새로운 세상이 올까. 지금 그 끝으로 치닫고 있는 것일까. 이 작품은 희망을 말하고 있지만. 나도 그 희망을 믿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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