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크 - 한쪽 눈만 뜨고 학교에서 살아남기 미래주니어노블 12
롭 해럴 지음, 허진 옮김 / 밝은미래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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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접하는 미국 작가의 책이다. 작품은 많은데 우리나라에는 이 책만 번역되어 있다. , 아주 매우 상당히 좋았다. 다른 작품들도 번역되면 좋겠다. 분량이 400쪽이 넘어 준벽돌책(?) 쯤 되는 느낌이라 초기 접근성이 크지 않겠다. 하지만 분량에 구애받지 않는 고학년 독자들의 독서모임이 있다면 한 번 읽어보면 어떨까 궁금하고 기대되는 책이었다. 중학생 정도라면 반 전체가 함께 읽어도 무리 없겠다. 글자나 줄간격이 커서 실제 분량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아름다운 아이(원더)>보다 적고 빨리 읽힌다.

 

분량을 비교하는 데 왜 원더를 떠올렸을까 생각해보니 무의식중에 공통점을 느낀 것 같다. 주인공 소년이 겪는 시련, 그것은 질병이면서 동시에 장애를 가져오게 되었고 많은 고통을 수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생활을 최대한 해나가려 하는데, 어떤 사회든 그렇듯이 모두 좋은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본의는 아니지만 상처를 주게되는 사람도 있고, 돕고는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고 그렇게까지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방관하게 되는 사람도 있고,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은 정도로 악랄한 사람도 있다. 그 안에서 살아남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어기도 그렇고, 이 책의 로스도 그렇고, 아름답다.

 

그들이 건강한 의지를 가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 실제로 어기도 로스도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격동을 겪기도 한다. 그럴 때 옆에 있어주는 사람들. 그들의 존재가 중요하다. 그래서 두 책 다 조연들이 많은 편이다. 둘 다 인싸여서는 아니다.

 

로스는 별로 눈에 안띄는 평범한 7학년 학생. 어린 시절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신 아픔이 있고, 지금은 새엄마가 있다. 그의 일상에 다시 폭탄이 떨어졌는데, 눈에 암이 걸린 것이다. ‘눈물샘 점막표피양암이라는 희귀암이었다. 이 병은 작가가 30대에 걸린 병이라고 한다. 그래서 진행과정과 증상, 느낌이 아주 생생하게 전달되어 온다. 난 건강검진 받으러 가는 것도 아주 싫어한다. 이제 늙고 아프고 죽을 일밖에 안남은 중년 후반인데도 왜그리 긴장되고 두려운지 모르겠다. 하물며 로스처럼 어린 학생이, 그 까다롭고 치명적이며 최선의 치료를 해도 영구 장애가 남을 질병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받아들이고 말고가 아니고 나한테 떨어졌으니까. 대부분 자신에게 떨어진 청천벽력 같은 일을 그렇게 견디면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이 책은 그렇게 버티면서 나아가는 로스와 함께 그 주변인들의 모습을 어둡지 않게 보여준다. 절친인 애비, 절친이었으나 그 무렵 멀어진 아이삭, 가장 혐오했지만 가장 가까워진 지미, 그리고 아빠와 새엄마. 모든 인물들의 캐릭터가 눈에 보이는 듯 선명했다. 그 때문인지 이거 영화로 안 만드나? 완전 잘될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도 그렇다. 방사선 치료사 프랭크는 가장 결정적인 인물이다. 직업적으로 만나 이렇게 사적인 관계로까지 가는 것은 미국에서도 흔한 일은 아니겠지? 그가 결정적 역할을 한 매개는 바로 음악이다. 이 책의 매력포인트도 바로 음악이다. 음악을 못하지만 로망을 갖고 있는 내가 이 책에 빠진 이유도 바로 음악이다. 로스가 친구들과 음악을 만들어내는 과정. 그게 빠졌다면 이 책은 밋밋했을 것이다.

 

치료실 복도에서 환자로 만난 할아버지. 그분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던 것도 눈물나게 좋았다. 곧 죽을 노인을 이렇게 대접(?)해준 작가의 시선이 고맙다. 공연 직전까지 못된 것들의 준동에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던 로스가 동전투입구, 힘내라!” 하는 뜻밖의 목소리에 극적으로 평안을 되찾고 만족한 모습으로 첫음을 내는 장면.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고 싶다. (누구 맘대로 영화래.ㅋㅋ 아, 그리고 동전투입구는 할아버지가 지으신 로스의 별명. 암 치료와 관계 있음)

 

그리고 절친(편안한 여사친)인 애비와는 달리 설레고 조금 흠모하던 사라와의 반전... 아이고, 충격적이었다. 그럴수록 애비의 매력이 더욱 크게 보였다는.... 하지만 멀리 이사가는 애비와의 헤어짐이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장면이다. 뭐 괜찮아! 요즘 세상에 물리적 거리쯤은. 나중에 얼마든지 다시 만날 수 있을 테니.

 

작가는 결국 한쪽 눈의 시력은 잃게 되었다고 한다. 음 한쪽 눈이 남았으니 최악은 아니고, 슬프지만 일면 다행스러운.... 그런 상황이라고 하겠다. 로스의 상황적 결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비슷할 것으로 생각해도 되겠지. 로스는 모든 독자들의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같은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 아이들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가시밭길을 지켜보는 사람이나, 아니면 내용과 아무 연결고리가 없는 독자들이라도. 인생은 길지만 어찌보면 짧고, 시간은 많지만 어찌보면 급하고, 여유를 부려도 되지만 어찌보면 지금 안하면 영영 못할 일들도 있다. 이 책을 읽고 지금 해야 될 일을 떠올린다면, 나의 고난 중에 웃음 한줄기를 발견한다면, 쓸데없는 오지랖이 아닌 응원 한 마디를 건넬 수 있다면. 참 귀한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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