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우주나무 그림책 17
정하섭 지음, 고혜진 그림 / 우주나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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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애를 그린 작품들이 훨씬 많지만 실제로 부성애도 그에 못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집만 해도 나보다는 남편 품이 훨씬 크다. 나와 언니 동생도 아빠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세심하고 살뜰한 분은 아니었지만 우리의 어린시절을 아빠 빼고 얘기할 순 없다. 손주들에게도 좋은 할아버지셨다.

이 책의 화자는 첫장의 갓난아기부터 장을 넘길 때마다 조금씩 성장한다. 그때마다 아빠가 함께한다. 어깨에 태워 주고, 자전거를 가르쳐 주고, 화장실 앞을 지켜 주기도 하고.... 함께 했던 캠핑의 추억은 환상적이다. 붉은 옷을 입고 응원도 하고 (아마도 2002 월드컵?) 아빠의 기타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늘 놀아주는 아빠일 수만은 없는 것. 일에 지쳐 고단히 잠든 아빠의 양말을 벗겨드리는 장면도 나온다. 교복을 입은 딸 앞에서도 아빠는 든든한 바람막이 같다.

아 그런데 여기서부터 진행이 너무 빠르다. 성인이 된 딸은 그 옛날 아빠처럼 기타를 연주하는데, 생일상 앞에 앉으신 아빠는 많이 늙으셨다. 환갑 생신이신가? 그 다음 장은 헉, 앞뒷장을 다시 살펴보게 만든다. 이게 끝인가?

아버지는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마지막장은 너무 아름답고 곱다. 연보라색 배경에 아기가 까르르 웃는 행복한 세 가족. 다만 아빠가 안계실 뿐이다. 아니 이제 할아버지라 불러야 하나.
"아빠, 지켜보고 계시죠?"
마지막 문장이 모든 상황을 말해준다.

마지막장이 슬프게 그려지지 않은 것은 의외였지만 생각해보니 마음에 든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슬프지 않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떠난 이는 말하고 싶을 것이다.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슬퍼할 필요 없다고. 행복하게 살다 오라고.

그래서 나도 그렇게 살아간다. 때로는 아빠 생각을 한참동안 잊기도 하고, 아빠를 떠올려도 슬프지 않기도 하고, 엄마랑 삼남매가 마치 아빠가 저쪽 방에 계신 듯 흉보다가 웃기도 한다. 그것 또한 아빠가 남긴 사랑임을 안다.

다만 그 떠남이 너무 힘들지만 않았으면.... 나이 드니 이런 생각만이 간절하다. 곱게 보내드리고 곱게 가고 싶다.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 슬퍼할 일이 아닌 것.

함께하는 동안에 서로 한번 더 돌아보고 한 번 더 토닥인다면 좋겠지. 무등을 타고 까르르 웃던 날은 다시 오지 않고, 나 또한 더이상 자식 옆을 그리 지킬 필요가 없게 되었다. 모든 것이 꽃처럼 진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장의 아름다움은 지는 꽃의 아름다움이네. 꽃은 지고 계절은 돈다. 우리 모두 기억 속의 아름다운 사람이길. 이 책의 아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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