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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먹어도 될까요 ㅣ 첫 읽기책 16
유은실 지음, 경혜원 그림 / 창비 / 2022년 9월
평점 :
작년에 이어 올해도 유은실 작가님이 우리 학년(4학년)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오신다. 함께 나눌 책으로 <멀쩡한 이유정>을 선택해서 한 반치 책을 준비했고, 독후활동지도 만들어서 온작품읽기로 진행중이다. 다른 반들이 먼저 했고 마지막으로 우리반이 다음주부터 진행한다. 그림책 <나의 독산동>도 읽어주려고 준비해 놓았다. 그정도면 행사는 충분히 진행 가능한데, 그래도 더 많이 읽히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 학년인 중학년보다는 6학년이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를 묻는 옆반 선생님께 내가 그랬다. “어... 유은실 작가님 작품은 쉽지가 않아요. 인생의 무게가 담겼다고 할까. 중학년용으로 나와 있어도 알맹이는 중학년용이 아닌 것 같아요.” 솔직히 <멀쩡한 이유정>도 나름대로 읽기는 가능하지만 인생의 팍팍함을 좀 알아야 진정한 공감이 가능하고, <일수의 탄생>은 작년에는 읽혔는데 올해는 포기했다.^^;;; 6학년쯤 되면 이 책들과 함께 <순례주택>도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 중학생들이 읽고 작가님과 만나도 아주 좋을 것 같고. 어쨌든 학년군별로 작가님들 리스트를 만든다면 난 유은실 작가님은 위로 올리고 싶다. 내가 정하는 게 아니어서 그대로 진행하고 있지만.
좀 더 쉬운 작품을 꼽자면 <나도 편식할 거야>를 비롯한 ‘정이 시리즈’가 있는데 그건 또 저학년 느낌이어서. 우리 아래층 3학년도 같이 행사를 할 건데 책을 못 정해 고민하시다가 내가 빌려드린 책 <난 기억할거야>를 보시고 그 책으로 정하시겠다고 하셨다. 이렇게 유은실 작가님 작품은 방대하면서도 중학년이 고르기 살짝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러다 이 따끈따근한 신간을 발견하고 당장 구입해 읽어봤다! 와 이 책 대박인데! 분량은 저학년용인데 내용은 중학년에도 좋다. 아니 고학년에게까지 두루 좋을 것 같다. 좀 더 일찍 나왔으면 좋았을 걸, 아쉽다!
이 책이 두루 통용되기 좋은 건 동물들이 등장하는 우화로 표현하셨다는 점이다. 짧고 쉬운 이야기지만 상징을 풀어 인간사에 적용시키면 독자 단계에 따라 깊이있는 이야기들이 가능하다. 나도 살면서 많이 생각해본 주제인데 작가님은 어떻게 이런 우화로 쓰실 생각을 했을까? 역시 타고나신 작가는 달라... 게다가 작가님 특유의 은근하면서도 어리버리한 유머가 곳곳에 들어있어 더욱 재미있었다.
제목부터가 이중의 의미를 갖고있어 의미와 재미를 다 잡고 있다. 다의어를 지도할 때 동기유발로 읽어주어도 재미있겠다.
“제목이 ‘까먹어도 될까요’네요. 여기에서 까먹는다는 건 어떤 뜻일까요?”
- 잊어버린다는 뜻이에요.
- 다람쥐가 도토리나 밤을 까먹는 거예요.
“맞았어요! 둘 다 맞아요. 이 책에는 두 가지 뜻이 다 들어있어요.”
깊은 산 까먹마을에
잘 까먹는 다람쥐들이 살았어.
튼튼한 앞니로
단단한 껍데기를 잘 까먹었지.
도토리를 여기저기 잘 묻어두고
어디 묻었는지 잘 까먹었고.
이렇게 도입부터 ‘까먹다’의 이중의미를 부각하면서 시작한다. 다람쥐의 생태와 다의어의 결합. 이거 다 알던 건데 왜 생각을 못했지?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걸까?ㅎㅎ
도토리를 묻어두고는 까먹어버리는 다람쥐들의 특성 때문에 그들은 니꺼 내꺼 따지지 않으며 적당히 어울려 살아간다. 그런데 거기에 반기를 든 인물이 나타났으니.... 바로 ‘줄무늬’였다. 줄무늬는 억울했고,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은 ‘안 까먹는’ 다람쥐가 되겠다고 결심하여 수많은 시도와 노력 끝에 결국 성공했다. 안까먹는 ‘줄무늬’는 까먹는 다람쥐들이 답답해서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었다. 혼자 살겠다 결심한 줄무늬는 무리를 떠나 혼자 튼튼한 집과 울타리를 지어놓고 먹이도 울타리 안에 잘 보관한다. 까먹지 않고.
쌍둥이도 태어났는데.... 그 이름이 ‘정신’과 ‘차려’라니.ㅎㅎㅎ 웃음이 난다. 나도 이 말을 나 자신에게, 그리고 아이들한테도 많이 했는데 뭔가 찔리잖아? 어쨌든 정신이와 차려 또한 엄마를 따라 안 까먹는 법을 연마한다. 그러던 중 산속에 큰 사고가......
결국 줄무늬는 큰 깨달음을 얻고, 다람쥐의 생태대로 사는 삶이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다소 전형적인 결말의 우화다. 하지만 식상한 느낌이 들지 않게 다 장치를 해놓았으니 작가님을 믿고 읽어보도록 하자.^^
인간은 똑똑하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본능대로 살아가는 동물들에 비해서 결과적으로 어리석은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공평함을 따지고, 하나라도 손해보지 않으려고 하고. 그래서 평안함에 이르렀는가? 대답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악착같고 잘 따지는 싸납쟁이들을 보면 내가 잘못 살아왔다고 느끼니까.... 잘 따지지도 못하면서 손해보는 것은 또 사절이니까. 그러나 크게 보면 손해라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
똑똑한 것이 미덕인 요즘 세상에서, 올해 우리반 아이들은 약간 다른 별에서 온 애들 같다. 어리숙한데 이쁘다. 마치 숨겨놓은 도토리를 못 찾는 것처럼 대충 넘어가는 성품들인데, 그래서 1년 내 싸움다운 싸움이 한 번도 나질 않는다. 그악스럽게 따지고 한 톨의 손해도 보지 않겠다고 부들부들하던 해에 나는 얼마나 불행했던가. <나의 해방일지>에서 삼남매 엄마가 “심보가 팔자다, 심보가 팔자야.” 라고 한탄하신 대사가 있었다. 모든 상황에서 그 대사를 적용하고 싶진 않지만 전반적으로 공감한다. 인류의 심보를 전반적으로 조정해서 인류의 팔자를 전반적으로 평화롭게 만들 수는 없을까. 니 심보나 돌아보라고? 아, 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