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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1948 ㅣ 바람청소년문고 15
심진규 지음 / 천개의바람 / 2022년 7월
평점 :
책은 단숨에 읽었는데 리뷰를 쓰기는 쉽지가 않다. 내가 너무 몰랐구나 하는 자각 때문이다.
내가 학생 때 배우던 한국사책에는 제주 4.3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도 자세히 나오지는 않는다고 함) 최초로 소설에 4.3을 다루었던 현기영 작가님은 끌려가서 고문을 당했다고 하고... 2000년대에 이르러서야 정부에서도 4.3을 언급하며 대통령이 추념식에 참여해 추도사를 했다고 한다. 그때쯤부터 귀에 많이 스쳐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깊이 알려고 찾아보진 않았다. 과도기에 이루어진 현대사의 참혹한 사건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이 책에서 조명한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제주 4.3을 검색해 개관된 내용을 읽어보면 그들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런데 작년에 방영된 <암살 1948>이라는 다큐멘터리에 나온다기에 찾아보았다. 이런 인물도 있었구나... 가슴이 서늘했다. 그런데 세상은 참, 그렇다. 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이미 떠나간 그 인물의 마음을 따라가며 눈물짓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남로당 프락치에 불과한 사람을 미화했다며 노발대발하는 사람들이 있다.
작가의 시선은 전자라고 하겠다. 나도 같은 시선으로 이들을 보았다. 스물 둘과 스물. 내 아들보다도 어린 이들. 지금이라면 겨우 대학생으로 부모로부터 독립도 못했을 애들. 그런 나이의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생명을 내놓고 감행해야 했던 일들. 그 삶의 무게에 가슴이 아팠다. 그런 시대를 타고났기에 겪어야 했던 무게와 아픔.
그들이 감행했던 일 자체가 옳으니 그르니 하는 논쟁은 의미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그 시대를 살지 않았지 않나. 그들의 고뇌를 헤아리기엔 너무 부족하지 않나. 다만 한가지만 생각한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 남을 괴롭혔나, 더 많은 생명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았나. 이것을 생각한다면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며 뜨거운 눈물을 흘려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들 뻘이라 생각해서 그런지 유난히 가슴이 아팠다.
내가 욕심없고 양심있는 그당시의 제주도민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아니면 군의 상관이거나 임무를 맡은 공무원이거나.... 정말 머리가 터질 것 같다. 무엇이 옳은가, 누구를, 어떤 말을 믿어야 하나. 처음부터 안개가 자욱했는데 그 자욱한 안개 속에 최루탄까지 터뜨려 놓은 격이다.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눈도 뜨기 어렵고 고통스럽고 화나고, 옆 사람은 죽어나가고..... 그 상황에서 길을 명료히 보면서 방향을 잡고 옳은 처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 같다. 뭐 그러다가 같이 희생될 수밖에 없었겠지....ㅠㅠ
그때나 지금이나 처단할 대상을 정해놓고 사람들을 규정하는 짓은 위험하며 극히 경계해야 한다. 실체도 모르는 ‘빨갱이’라는 말로 이놈은 이렇게 저놈은 저렇게 사람들을 규정하고 처단했다. 결국 가장 많이 희생된 것은 그냥 땅 일구며 고기잡으며 살아가던 순박한 도민들이었다. 당시 30만 도민 중에서 적게는 3만 명, 많게는 6만 명까지 사망자를 잡는다고 하니, 어찌할 줄 모르는 상황과 공포 속에서 희생된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그들의 생명이 스러진 지 벌써 70년이 넘게 지났지만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우리의 옷깃을 여며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슬픔과 억울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문상길 중위가 재판정에서 했다는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우리가 박진경 연대장님을 사살하였으나 본인 개인에 대해서는 죄송하게 여긴다. 우리가 군인으로서 자기 직속상관을 살해하고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죽음을 결심하고 행동한 것이다. 이 법정의 성격상 당연히 총살형이 선고될 것이며 우리는 그 선고에 마음으로 복종하며 법정에 대하여 조금도 원한을 가지지 않는다. 이 인간의 법정은 공평하지 못하여도 하나님의 법정은 절대적으로 공평하다. 그러니 재판장은 장차 하나님의 법정에서 다시 재판을 하여주기를 부탁한다.”
저 말을 할 때, 그리고 총살대에 묶여 최후진술을 할 때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겨우 스물 두 살의 청년이...ㅠㅠ 죄가 있다면 혼탁한 역사에, 그리고 그 틈을 타 인간의 부적정 본능을 마구 표출했거나 그것을 방조한 이들에게 있지 않을까?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런 역사가 되풀이될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경계하고 살펴야 한다는 것.
바람청소년 문고로 출판된 이 책을 청소년들이 읽고 깊이있게 토론해주었으면 한다. 속절없이 휘말려들어간 제주도민들의 상황과 아픔이 실감나게 묘사되었다. 역사에 관심있거나 독서력이 높은 초등 고학년에게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