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영웅의 셈법 창비아동문고 322
이병승 지음, 파이 그림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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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중에서도 아주 짧은 단편들의 모음집이다. 두껍지 않은 책에 7편의 단편이 담겼다. 배경묘사나 서사가 길지 않고, 저자의 주제의식과 가치관을 간결하게 보여주며 마무리하는 방식이 특징이라고 생각된다. 이전 단편집 <마음도 복제가 되나요>도 그랬었는데, 비슷한 점도 있고 달라진 점도 있는 것 같다. 이전 책을 읽은지가 오래되어 정확하게 비교는 못하겠지만, 뭔가 작가의 시선이 닿는 곳에 변화가 있지 않을까? 그중의 하나가 인간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1. 천하제일 말빨
폭력무용론을 비웃고 폭력의 가치를 고수하는 박치수는 서령이에게 그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벼르고 있는데, 오히려 더 큰 폭력 앞에서 수치를 당하고 노선변경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글투는 매우 시크하고 삐딱한 느낌을 주는데 의외로 교훈적이다. 폭력의 가치를 고수하는 인간들이 여전히 많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발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2. 공중의 사과
꿈 속에서 머물고 싶은 아이. '자각몽'을 꾸기 위해 노력한다. 현실이 얼마나 초라하고 짜증나면 그러겠어. 그 아이가 꿈을 포기하고 구질구질한 현실로 돌아오는 이야기. '꿈'이 동음이의어라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다른 꿈을 꾸겠다'는 결말은 희망을 보여주는 거겠지.

3. 우주 영웅의 셈법
표제작. 기시감 제로의 완전 새로운 작품. 작가가 가장 전면에 내세우고 싶은 주제의식이 담겨서 표제작으로 삼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생존이 달린 탑승권을 취해야 하는 상황에서 민호가 주장하는 '우주의 셈법'은 무엇일까?
"작은 별이나 큰 별이나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거요. 그러니까 어쩌면 제가 증명하고 싶었던건 제 능력이 아니었는지도 몰라요."
저마다 자신의 존재 이유, 즉 필요를 증명해야 하는 세상에서 작가는 '태어난 것만으로 할 일은 다 한 거'라고 말한다. 필요에 대한 강박이 있는 내게 작가가 던지는 메세지는 얇은 분량과는 다르게 매우 무겁다.

4. 얼음낚시 구멍
손님없는 강변 민박집에 겨울 한 철 일을 도울 수상한 남자가 들어왔다. 해방일지의 구씨처럼 사연이 많아보이네? 그를 숨어들게 한 과거의 아픈 기억은 과연 무엇인가?

5. 캠핑카라 불러주세요
친구 준서는 부모님의 캠핑카를 타고 여행을 다녀왔다는데, '나'는 아빠의 뻥튀기 트럭을 타고 원정 장사인지 여행인지 헷갈리는 여행을 떠난다. 그 여정이 아주 다채롭고 흥미진진하다. 특히 '낙석 주의'를 인생에 빗댄 작가의 통찰이 멋지다.
그러나 아쉬운 대목이 있다. 잘났지만 욕할 수 없는 친구 준서가 그림대회 1등을 했지만 상을 거부했다는 내용이다. 공부 잘한다고, 부잣집 아들이라고 그림까지 상을 몰아주는 건 반칙이라나? 이 대목을 읽을 때 불쾌감이 좀 들었다. 그런 이유로 상을 몰아준다니, 언제적 시절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교육기관이 그정도로 몰상식하지 않다. 준서라는 아이를 멋지게 만드시려고 작가님이 좀 과하셨던 것 같다. 어차피 픽션인데? 하면 할말은 없지만, 작품에 굳이 필요한 장면도 아니었다고 본다.

6. 빨강의 기억
요즘 고기능 자폐 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 작품에 바로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아이가 나온다. 근데 아이는 본인의 능력이 곧 고통인 경우여서 많은 시간을 힘들게 보냈을 것 같다. 지나온 이야기를 들은 화자 또한 지금의 현실에 직면하려 한다.

7. 뱀파이어와 투명인간
인간과 함께 뱀파이어족과 투명인간족이 공존하는 세상을 크로키처럼 빠르게 그려낸 이야기. 한 뱀파이어족 소녀가 눈길에서 죽어가고 있다. 투명인간족인 '나'의 선택은? 인간이 아닌 두 존재를 통해서 인간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분량도 비중도 모두 치우치지 않고 고른 7편의 감상평을 간단히 써보았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님은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작가가 기억되는 그런 작품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했는데 내게는 어느정도 그럴 것 같다. 단편은 특히 기억이 짧고 다른 작품과 섞여버리기도 쉬운데, 섞여버리기엔 똘망똘망한 인상적인 작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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