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덩이를 건너는 방법 별숲 동화 마을 42
이혜령 지음, 오승민 그림 / 별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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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연속해서 여학생들의 힘든 관계에 대한 책을 읽게 됐다. 적어놓지 않으면 내용이 다 섞일 것 같아 간단히 적어보려고 쓴다. 이 작가님의 책 중 <우리 동네에는 혹등고래가 산다>는 남학생들의 갈등을 다룬 책이었는데 소개했을 때 반응이 아주 좋았다. 여유가 있다면 두 권을 나란히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여학생이라고 여학생 책을, 남학생이라고 남학생 책을 읽는다면 폭이 좁은 독서가 될 것이다. 두루 함께 골고루 읽으면 훨씬 좋겠다.

어떤 연수 자료에서 보니, 여학생들은 무리에서 탈락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여학생들 관계를 다룬 동화들을 보면 한결같이 무리짓는 아이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눌리고 상처받는 아이가 있다.

이 책에서는 ‘오해인’이 그런 아이다. 무리짓는 아이들의 단골메뉴인 댄스팀이 등장하고, 수아의 호의로 겨우 그 팀에 끼게 된 해인이는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다. 일단 춤에 흥미도 실력도 없는데다가 말주변도 용기도 없다. 생각은 꽉 찬 아이인데, 그 무리들 앞에서는 어버버 바보가 된다.

해인이의 짝 ‘정겨울’은 그런 면에서 해인이와 정반대다. 이 아이는 ‘자발적 왕따’라고 할까? 스스로 벽을 치고 타인의 근접을 사양한다. 갈구하지 않으니 구차할 것도 없다. 책에 ‘심해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나는 그 말이 마음에 든다. 누구나 심해어로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심해어는 심해어만의 영역과 자유가 있을 것이다. 다만 좀 외롭기는 할 텐데, 그렇다고 친구가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더 깊고 이상적인 관계로 갈 수 있는 유형이 바로 이 심해어들이다.

무리의 중심이지만 여왕벌이라기엔 마음이 약하고 배려심도 있어보이는 ‘조수아’가 세 번째 유형이다. 수아는 잘하는 게 많아 좀 튀었고, 그것 때문에 이전 학교에서 은따였다. 수아 엄마는 수아를 철저하게 ‘엄마표’로 만들어 관리하고 있고, 그래서 새 학교에서는 꽤 잘나가는 것으로 보이지만 만들어진 위치는 항상 위태롭다.

이 세 아이가 번갈아 각 장의 화자로 나오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부모의 이혼과 비혼모 양육도 이야기의 중요한 배경이다. 10여 년 전에 어떤 동화에서 비혼 모자가 주인공으로 나와서 ‘와, 요즘엔 이런 이야기도 동화의 소재로 나오는구나’ 하고 좀 놀랍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당연한 가족의 한 형태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러나 이 책 속에서는 아직 그렇지 못하고, 무리들의 뒷담화와 괴롭힘의 소재가 된다. 물론 그런 인간들의 찌질함이 부각되었지만.

부모의 이혼도 그렇다. 아이 입장에서는 ‘왜 나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결정하지 못하나?’라고 서운해하며 상처를 받지만, 길게 봤을 때는 부모 각자가 자기 자신에게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책임감을 잃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이 책에서 마음에 드는 소재들이 있다. 첫 번째는 비혼모인 겨울이 엄마의 미술학원 ‘놀숲’이다. 다양한 재료와 표현방법을 학습자 개개인에게 맞춰 자유롭게 운영하는 방식. 일반적인 운영방식과는 다르지만 그 안에서 창의성과 치유가 일어나는 것에 동의하고 공감한다. 그게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섬세해야 하는 방식인지 나도 가르치는 사람이라 조금은 알 것 같다.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야 자유지 가르치는 사람은 훨씬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이런 공간이 많아지면 좋겠다.

두 번째는 놀숲 안에서 해인이가 선택한(겨울이 엄마가 권해준) 활동인 인형 만들기. 손바느질과 인형이라는 작업은 아이들에게 주는 바가 많은 것 같다. 쉬운 작업은 아니라서 모두에게 시키기는 어렵지만 좋아하는 아이들에겐 충분히 시켜주어도 좋은 활동인 것 같다.

세 번째는 제목에 나오는 ‘웅덩이’. 이 책에선 중요한 장면에서 비가 온다. 우산도 중요한 소재다. 비가 오면 어쩔 수 없이 웅덩이가 생긴다. 우린 그걸 건너야 하고. 그 방식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 나라면 조심조심 가장자리를 밟고 최대한 물 안 묻히면서 건널 테고, 첨벙첨벙 건너는 사람도 있겠고 아예 뒹굴고 나서 씻는 방법도 있겠지. 분명한 건 지금이 지나면 날은 또 갤 거라는 사실. 세 아이가 빗속으로 나아가는 결말이 싱그럽다.

모두 각자의 웅덩이를 용감하게 건너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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