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춘당 사탕의 맛
고정순 지음 / 길벗어린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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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어머님 성함이 ‘정순’이다. 그 세대에 많았던 이름. 그런데 유튜브에서 뵌 작가님은 나보다 훨씬 젊어보이던데?^^;;; 이름이 소박하고 친근한 작가님. 하지만 이분의 감각과 역량은 친근하지 않다. 오히려 범접하기 어려워 보인다. 길지 않은 삶에서 어찌 이런 통찰과 깊은 감정의 바다를 갖게 되셨을까? 아직 이분의 작품을 많이 접하진 못했지만 대단한 작가인 것 같다. 그림책 외에 산문집도 한번 읽어봐야겠다.

옥춘당. 제사를 지내지 않는 우리집에선 거의 볼 수 없는 것이었는데 어쩌다 보게 되면 군침돌았던 기억이 난다. 그냥 설탕 덩어리에 색소를 입힌 것에 불과한데 말이다. 그걸 아는 지금도 뭔가 특별한 맛이 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예쁜 색에 뭔가 담겼을 것 같은 맛.

작가님에게 그것은 사랑과 추억의 맛이다. 조부모님의 사랑. 조부모님이 작가에게 주신 사랑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두 분간의 사랑이 더 지극하다. 평생동안 변하지 않은, 아니 더욱 깊어진 부부의 사랑.

그런데 슬픈 점은, 두 사람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이다. 할머니의 입에 옥춘당을 넣어주던 자상하고 유쾌한 할아버지가 먼저 떠나셨다. 말없고 낯가리고 소심한 할머니에게 할아버지 없는 세상은 황량했다. 할머니에겐 치매가 찾아왔다. ‘조용한 치매’였지만 가족들은 지쳐갔다. 결국 할머니는 마지막 10년을 요양원에서 보내시고 할아버지를 따라가셨다.

한날 한시에 떠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니, 이왕이면 의존적이고 약한 쪽이 먼저 가는 편이 좋다. 두분 같은 경우 할머니가 먼저 가시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근데 어디 세상이 생각대로 흘러가던가. 끝까지 할머니를 지켜주실 것 같던 할아버지는 너무 일찍 가셨고, 할머니는 혼자 남은 세월을 20년이나 견뎌야 했다. 그날, 할아버지가 찾아와 할머니의 입에 ‘아~’ 하고 옥춘당을 넣어주시고 “가자.” 하고 손을 잡는다. 이제 두 분은 행복하시겠지. 너무 늦게 오시긴 했어도.

인생의 마지막이 어떠할지 아무도 모른다. 이정도면 보통의 마무리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두 분은 사랑했으니, 불행한 결말은 아니지. 그래도 보는 마음이 참 슬프고 힘들다. 치매에 걸려 동그라미만 그리던 할머니, 온종일 할아버지를 생각하던 할머니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불쌍한 게 아닐 수도 있을텐데. 두 분의 사랑만 놓고 본다면 어느 사랑보다도 아름다운 이야기인데. 한편으론 아름다움은 개뿔, 책이니까 그렇지 현실에선 절대 겪고 싶지 않은 인생일 수도 있고. 하지만 내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 인생인 바,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지금 할 수 있는 사랑을 하는 것이 맞겠지. 그 사랑이 설탕덩어리에 불과한 옥춘당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바꾸어 주듯이, 누구나 통과해야 되는 힘들고 어두운 터널을 견디게 해주는 것일지도.

이 책은 작가가 화자(손녀딸)인 실제 가족 이야기인 듯하다. ‘옥춘당’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어린 시절의 추억부터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까지 긴 세월의 희로애락을 잘 담았다. 작가의 여러 장르 중에서 만화 작품이기도 하고. 작가의 살아온 이야기와 살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아직 읽진 않았지만 작가의 산문들은 대부분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인 것 같다. 자신의 이야기로 작품을 쓰는 작가.... 그게 거짓이 아니라면 치열하고 진실된 삶을 추구해오지 않았을까. 그 이야기들은 아마도 나에게 부끄러움을 선사하겠지. 그것도 꽤 괜찮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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