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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식탁이 사라졌어요! ㅣ 우리학교 그림책 읽는 시간
피터 H. 레이놀즈 지음, 류재향 옮김 / 우리학교 / 2022년 5월
평점 :
이런 문제의식은 아주 흔한 것인데, 그걸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훌륭한 예술작품이 되고 전달력도 높아지는 등 가치가 달라지는 것 같다.
사실 이 책을 읽고 가장 찔릴 사람은 나다. 나는 혼밥을 좋아한다. 매우. 여러사람들과 어울려 왁자지껄 밥먹는 자리는 피곤하다. 그건 쉬는 게 아니고 일이다. 퇴근하고 지친 몸을 씻고 나와서 먹고 싶은 걸로만 간단히 딱 차린 밥상을 혼자 마주할 때 하루 중 가장 편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이 된다. 여느 집들처럼 남편도 아이들도 평일엔 함께하기 힘드니 아버님 밥만 먼저 차려드리고 씻고 나와서 나혼자 저녁을 먹는다. 그래서 주말을 제외한 우리집 식탁은 거의 혼밥.
이 책의 바이올렛네 가족도 그런 상태다. 한때는 함께 장보고, 요리하고, 즐겁게 이야기하던 식탁의 추억이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빠는 TV에, 엄마는 SNS에, 오빠는 인터넷 게임에 각자 빠져있다. 즐거웠던 옛날을 생각하며 외로움을 느끼던 바이올렛은 어느날 식탁이 줄어든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모여서 밥먹는 식탁의 쓸모가 없어진 것을 크기가 줄어든 것으로 표현하니 아주 단순하면서도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한번 줄어들고 끝이 아니었다. 날마다 쑥쑥 줄어들던 식탁은 어느날 아예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이때부터 바이올렛의 활약이 시작된다.
"바이올렛은 제일 먼저 아빠한테 갔어요.
TV에서 가구 만드는 프로그램을 함께 보자고 부탁했어요."
"그런 다음 엄마한테 갔어요.
인터넷에 식탁 만드는 법을 물어보자고 제안했어요."
"마지막으로 오빠한테 갔어요.
컴퓨터를 사용해서 함께 도면을 그리자고 했어요."
가족이 빠져있던 TV, 휴대폰, 컴퓨터를 아예 배제하지 않는 것이 인상적이다. 사실상 불가능하고 공감을 이끌기 힘들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이것들은 배제보다 조절이 필요한 기기들이다. 시간적으로 질적으로 조절하며 현명히 사용해야 한다. 가장 어린 바이올렛이 그걸 해냈다. 이후의 결말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대로다. 가족은 함께 작업하고 그래서 더 멋지고 의미있어진 식탁에 앉아 예전처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이야기를 나눈다.
이름만 들어도 아~ 하는 작가의 명성에는 이유가 있나보다. 특유의 그림체도 맘에 들지만 주제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능력이 놀라운 것 같다. 위에서 말한 식탁의 크기도 그렇고, 그림의 채색도 그렇다. 올 컬러로 시작된 그림이 어느새 단색이 되었다가 어느 순간 또 칼라로 바뀐다. 단색은 흑백 느낌을 주는 보라색(바이올렛)이다. 모든 것이 딱 맞아 떨어지는 느낌. 원제인 <Our table>도 좋고 <우리집 식탁이 시라졌어요!>라는 번역도 괜찮은 것 같다.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 다만 아이들이 바꿀 수 없는 한계가 있을테니 괜히 상처를 건드리는 결과가 되지 않도록 접근을 잘해야 될 것 같다. 가정마다 분위기가 다를테고 당장 나부터도 혼밥이 행복한 시간인 주제에 누구한테 무슨 말을 하겠어. 하지만 그 식탁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바로 아이 자신이라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의 소중함, 디지털 기기들의 주체적 사용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를 만드는 일은 필요할 것 같다.
이제 그림책의 독자는 전 연령으로 확대되어가고 있는 바, 어른들의 독서모임에서도 읽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