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네리코 3번가 야옹 관장님 코후지 이야기 - 작은 서양관 속 열두 개의 이야기 주머니 바둑이 폭풍읽기 시리즈 2
야마모토 카즈코 지음, 이시카와 에리코 그림, 전정옥 옮김 / 바둑이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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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보진 않았지만 일본 영화 특유의 잔잔한 느낌이 난다.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말이다. 주인공들이 동물이라 실사는 어려울테니 애니메이션으로.... 월별로 한 에피소드씩인 구성도 좋고, 상처받고 숨어든 주인공이 회복하고 나아가는 주제도 어디서 많이 보긴 했지만 또 좋다.

첫장과 끝장은 고양이 후지 할머니의 인사말이다. 할머니는 토네리코 마을의 서양관(서양식 건물)에서 산다. 1년 여행을 떠나며 손녀인 코후지에게 집 관리를 맡겼다. 집세는 한 달에 한 번 그 달에 맞는 행사를 하고 할머니께 편지를 보내는 조건으로.

왠지 마음이 설렌다. 경치 좋은 마을에 쾌적한 집, 눈치 볼 사람 아무도 없어, 미칠 듯 바쁜 일상과 그에 따른 의무도 없어, 조용하고 시간은 널널해. 얼마나 좋을까.ㅎㅎ 하지만 실제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지는 마음을 다스리기 힘들 것이다. 인간이란 왜 이렇게 불안한 존재일까.

더구나 코후지는 직장생활 중 상처받아 회사를 관두고 두문불출하던 중 할머니의 제안을 받고 이곳에 왔다. 그 상처는 관계에서 생긴 것이었으니 역시 관계에서 회복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그게 아니면 책이 되겠어? 할머니의 조건을 봐. ‘행사’를 하라잖아. 내 속에서 약간의 저항이 느껴진다. 꼭 그래야 돼? 좀 혼자 놔두면 어디가 덧나?

하지만 그 행사라는 것은 꼭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달을 거듭할수록 조금씩 커지기는 한다) 첫 행사인 ‘꽃놀이’는 벚꽃을 보며 코후지 혼자 도시락을 먹었으니까. “벚꽃이 나를 위해 이렇게 예쁘게 피어 주었네. 나는 벚꽃한테 아무것도 해 준 게 없는데도 말이야.”

이렇게 달마다 치르는 행사는 일본의 세시풍속과도 관련이 있다. 지식 목적의 책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기억하려 애쓰며 읽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각 장의 끝에 간단하게 설명이 나온다. 그 밑에 추가로 ‘한국의 세시풍속’도 함께 소개되어 나온다. 이건 출판사 측의 아이디어겠지. 없어도 상관없겠으나 있어도 나쁘지 않다. 다만 본문과 관련된 일본의 세시풍속은 양력 기준인데 우리 세시풍속은 음력 기준으로 소개하고 있어 그 시차가 한 달 이상 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본질적인 부분이 아니라서 상관은 없지만.

4월에 시작한 이야기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을 한바퀴 돌고 다시 4월에 이르러 끝을 맺는다. 그동안 코후지는 수박깨기, 불꽃놀이, 달맞이, 밤 줍기, 크리스마스 리스 만들기, 콩 뿌리기 등등 달마다 절기에 맞는 행사 하나씩을 해나간다. 혼자 도시락을 먹었던 첫 행사와 달리 회를 거듭할수록 함께 하는 이웃들이 늘어난다. 거부감을 느낄 새도 없이 쏘옥 들어와 자연스럽게 함께 하게 되는 이웃들. 아빠랑 둘이 사는 어린 고양이 마끼오, 정리정돈과 글씨를 잘 쓰는 쥐 네즈모리 씨, 태어날 동생 때문에 심통이 난 여우 후사노오, 야노와라는 뱀, 어부가 되고 싶은 곰 아오바, 창의적으로 만들기를 좋아하는 맥 루루아, 분을 못참는 원숭이 곤고 할아버지, 헌책방 할아버지 후나네꼬 등.... 마지막 장의 행사 역시 첫 장과 마찬가지로 ‘꽃놀이’ 인데 그 차이를 보면 1년이 만들어낸 변화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인간의 참견과 오지랖이 만들어내는 피로함은 정말 싫은 것이고 피하고 싶다. 그렇다고 단절이 답은 아니라는 것도 너무나 확실하다. 혼자 먹으려고 만드는 도시락도 때로는 맛있지만 계속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어느 만큼 다가가고 어디쯤에 머물면 좋을까? 세상 모든 것에 거리와 간격이 있으며 그것들이 어울려 상호작용을 하듯이, 인간들의 관계도 그러해야 할 텐데 그 적절한 지점은 어디일까? 너무 극단적인 생각은 금물. 상처받아 꼭꼭 닫힌 마음으로 마을에 들어왔던 코후지의 마음이 살짝 열려 바람이 드나들듯이, 딱 그정도 열어놓고 서로 드나든다면 좋을텐데. 근데 그걸 재는 자도 없고 니 맘 다르고 내 맘 다르니 어려울 수밖에. 그래서 이런 주제의 이야기는 계속 나올 듯하다. 대충 짐작이 가면서도 재밌게 봤다. 다양한 변주로 표현할 수 있는 근원적인 주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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