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유의 숲 - 이상한 오후의 핑크빛 소풍 / 2020 볼로냐 라가치상, 앙굴렘 페스티벌 최고상 수상작 바둑이 폭풍읽기 시리즈 1
까미유 주르디 지음, 윤민정 옮김 / 바둑이하우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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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도 큰 편이고 아주 두껍다. 게다가 양장본. 읽기에 편안한 외형은 아니다. 실제 쪽수는 150쪽 정도밖에 안되는데 두꺼운 종이를 사용해서 엄청 두껍고 무거운 책이 되었다. 올칼라 만화여서 인쇄 문제 때문에 그랬을까? 아니 칼라 만화들 중에도 얇은 종이 많던데.... 뭔가 이유가 있겠지만, 잘 모르는 내 입장에선 종이는 얇고 양장본도 아니었으면 훨씬 편하게 읽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읽는동안 들었다. 약간의 불편함도 몰입을 방해할 수가 있다. 하지만 내용은 참 좋았다.

조라는 여자아이가 가족과 캠핑을 왔는데 함께하지 못하고 겉돈다. 배낭에 이것저것 챙겨 숲으로 들어간다. 많은 판타지의 설정들이 그렇듯 숲속에는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가 있었고 조는 이곳에서 모험을 하게 된다. 새로운 세상의 인물들과 언뜻 한 얘기들을 종합해보면 조의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지금 캠핑을 온 가족은 재혼가족이다. 즉 새엄마와 새언니들인 것이다. 신데렐라형 캐릭터는 아니니 각자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곁을 주지 않는 새 딸을 바라봐야 하는 새엄마, 우리도 힘든데 더 힘들어하는 새동생을 봐야 하는 새언니들, 중간에서 어쩌지 못하는 아빠.... 그래서 아빠는 이 캠핑이라는 기회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지만 조는 빠져나와버렸으니. “너무 멀리 가지는 마라, 알았지?” 라는 아빠의 외침이 숲속에 울린다.

조가 들어간 세상은 여러 동물들이 어울려 사는 세상이었다. 못된 고양이가 지배하며 동물들을 괴롭히고 있었고 많은 이들이 고양이의 성으로 잡혀가 지하 감옥에 갇혔다. 잡혀간 이들을 구하려는 여우 모리스와 친구들의 도전에 조도 끼어들게 된다. 고양이 황제의 생일파티 날, 거사는 시작되었고.....

이 책에서 백미이자 절정인 장면은 황제의 성에 갇혀 있던 작은 조랑말들(베르메유)의 탈출 장면이다. 황제는 스스로 무너지고, 친구들은 마을로 개선한다. 돌아가는 길, 조는 잠깐 수레를 멈추고 모리스에게 말한다. “집에 가고 싶어.”

심통이 날 때, 다그침 당하지 않고 숨어들 시공간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있다면 좋지 않을까. 좋아하는 물건 몇 개를 챙겨서 말이다. 그곳에는 마음대로의 상상이 가능하고, 그 상상 속에서 마음 졸이는 모험도 가능하고, 한바탕 돌풍이 가라앉으면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의 공간으로 돌아올 수 있고. 그리고 가족들은 안심하면서도 적당히 모르는 척 해주는.

조가 뛰어 돌아오는 캠핑장엔 마침 저녁이 차려지고 있었고, 언니 중 한 명이 “조가 오네요!” 라는 듯이 반갑게 말하고 있고 새엄마는 웃고 아빠는 안도한다. 아주 좋은 타이밍이다. 우리 아이들의 심통도 이렇게 적절한 타이밍에서 조절되었으면. 적절한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세상엔 어차피 완벽한 아름다움이란 없다. 판타지의 공간에서조차 희노애락과 인간의 본성은 그대로인 것을. 서로 조금씩 밀고 조금씩 당기며 조율한 상태.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아름다움은 고작 이정도가 아닐까. 그것마저도 어디 쉽던가.

‘경이롭고 경탄할 만하며 신비롭고 아름다운 것’을 뜻하는 프랑스어가 ‘메르베유’라고 한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은 베르메유? 책 안에 꽤 많은 언어의 유희가 들어있을 것 같은데 그걸 확인할 수 있는 외국어 실력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 라가치상을 받은 작품답게 여러 의미들을 중첩해서 넣어놓은 수준있는 만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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