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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질 아이 - 2022 학교도서관저널 추천도서 ㅣ 마루비 어린이 문학 10
이경순 지음, 전명진 그림 / 마루비 / 2022년 3월
평점 :
'사라질' 이라는 의문의 시제가 호기심을 자아낸다. 뭔가 안타까운 슬픔을 예고하는 것 같기도 하다.
타임슬립 소재의 이야기는 많지만 그게 선사시대였던 적이 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더구나 반구대 암각화를 모티프로 한 이야기라니.... 반구대 암각화를 꼼꼼하게 뜯어보면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많다고 들었다. 고래의 종류와 생태도 다 표현이 되어있고, 부족 사람들이 배를 타고 협력하여 고래사냥을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 등, 당시의 생활상도 '원시인'이라고 일축해버릴 수 없는 지혜와 나름의 방식과 체계가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엄마를 잃은, 그리고 그게 자기 탓이라고 자책하는 준수. 아빠와는 대화가 없는, 말하자면 세상 홀로인 아이. 어느날 아빠가 무심한듯 '체험학교 역사 탐방단' 프로그램을 내밀었고, 반구대 암각화는 엄마와 함께 와보려던 곳이었기에 준수는 마지못한 듯 참가했다. 그 체험 중 '수리'라는 아이와의 만남이 준수를 수천년 전의 세상으로 이끌었다.
생존이 급급했던 시대의 감정은 지금과 같았을까,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왔던것 같다. 현대는 약간 감정의 과잉이랄까, 그건 배가 불러서일지도? 생존이 매일의 문제이던 시대엔 감정도 지금처럼 복잡하진 않았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든다. 그 감정의 복잡함은 적었을 수도 있지만 깊이는 얕지 않았을 거라고. 소중한 이를 사랑하는 감정은, 그리고 잃은 뒤의 회한과 그리움은 어느 시대에나 다르지 않게 깊었을 거라고. 그런 생각을 하자 수천년 전 선사시대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질감이 좀 벗겨지는 것 같았다. 시대를 뛰어넘은 준수의 여행이 나에게도 그 거리를 좁혀주었다.
수리에게 이끌린 준수는 이것도 체험 프로그램이겠거니 했다가 수천년 과거의 세상에 실제로 왔다는 걸 깨닫고 당황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잘 적응하며 그들의 일원이 되어간다. 준수를 자신의 집에 데려간 아줌마는 왜 그랬을까? 아줌마의 무뚝뚝한 아들 고래이빨은 왜 준수를 동생으로 받아주고 고래사냥을 가르쳐 주었을까?
그 과정에서 도와주며 친구가 되어준 노루귀와 곰발바닥도 있고, 비웃고 시기하는 여우눈과 늑대발도 있다. 동생을 잃은 고래이빨의 아픔은 준수의 아픔과 너무 닮았다. 준수는 이를 악물고 자신을 단련한다. 결국 불가능해보이던 고래잡이에 선발된다. 고래이빨은 최고의 공을 세우며 당당히 돌아온다.
독자가 수리의 정체를 알 것 같은 순간에, 준수는 이쪽 세상으로 다시 건너온다. 전에 왔던 아이, 사라진 아이, 사라질 아이.... 복잡한 관계 속에서 떠오르는 것이 있다. 떠난 이는 남은 이들이 슬퍼하길 바라지 않는다는 것. 천개의 바람이 되어서라도 그들을 위로하는 존재들처럼, 수천년의 시간을 넘나들면서까지 사랑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한다는 것. 이 메세지가 슬픔에 빠진 이들에게 위로를 주면 좋겠다.
반구대 암각화를 보며 감탄한 작가가 그들을 동화에 불러오고자 오랫동안 애쓴 결과 이 책이 나왔다고 한다. 암각화에서 출발한 상상이 이렇게 생생하고 슬프면서도 위로가 되는 이야기로 탄생한 과정이 쉽지 않았을 거라 짐작이 된다. 도전하기 참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 같다. 독자들이 스토리에 대한 감상을 넘어서, 역사적 자료를 보며 이미 '사라졌지만 숨쉬는' 사람들의 역동과 애환을 느낄 수 있는 상상력을 갖게 된다면 더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