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행동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86
재클린 우드슨 지음, E. B. 루이스 그림, 김선희 옮김 / 북극곰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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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후회와 안타까움은 때로 우리를 성장시키기도 한다. 그 무거움을 견뎌야하는 벌이 남지만 말이다. 그걸 견디기 싫어 상황을 또 희화화하고 자기정당화를 한다면 구원은 없다. 그저 그 후회 속에 푹 잠겼다 나오는 일이 필요하다. 과거를 돌려놓을 수는 없지만 '나'는 달라졌기에 같은 과오를 반복하진 않을 것이다. '그'에게 사과할 기회가 영영 오지 않을수도 있겠지만 그 마음으로 이후의 사람들을 대하면 괜찮지 않을까. 그 마음이 언젠가는 그에게 가 닿을수도 있다. 저 먼 곳에서 그는 어느새 용서하고 있을수도.

<친절한 행동>이라는 제목의 이 책에서 친절한 행동은 단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어쩌면 그럴까 싶을 정도로, 야속하게도. 여러번 손을 뻗었지만 '나'도 그 누구도 그 손을 잡지 않았다. 손을 잡았어야 했다고 깨달았을 때, 그 손은 없었다. 기회란 언제까지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교실에 마야가 전학왔다. 낡은 옷을 입고 어눌한 그 아이가 나를 향해 살짝 미소지었을 때 나는 외면했다. 조잡한 장난감을 집에서 가져와 보여주며 함께 놀자고 할때마다 거절했다. 모처럼 예쁜 원피스를 입고 학교에 왔는데 '헌 옷 수거함' 이라며 놀렸다. 이제 마야는 더이상 놀자고 하지 않았다. 혼자 줄넘기를 하며 운동장을 돌고 돌고 또 돌았다. 그 다음날부터 마야를 볼 수 없었다. '나'는 선생님이 보여주신 동심원들을 보며 '친절'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는데. 마야에게 단 한 번도 친절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는데. 이제 마야가 다가오면 웃어줄 준비가 되었는데. 그런데 이젠 마야가 없다. '나'는 연못에서 물결이 퍼지는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다. 마야의 간절함이 이제 '나'의 간절함이 되었다. 기회가 사라져버렸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
너를 보낸 후에 알게 됐던 것
널 보내기 전에
모두 알았더라면
미리 알았더라면
우린 지금 혹시
차 한 잔을 같이했을까

신승훈의 노래 [나비효과]의 한구절이 떠올랐다. 가사 전체의 내용은 이 책과 다르지만 이 대목이 입에 맴돈다. 미리 알았더라면. 기회가 다 지나가기 전에 친절한 행동을 할 수 있었더라면.

마야가 다시 등장하는 반전의 결말도 다행스럽고 좋았겠지만 이 아쉬움의 결말이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신학기라 반 아이들과 학급규칙 만들기를 위한 사전작업으로 우리반이 어떤 반이길 원하는지 생각을 모아 보았다. 유목화해서 건진 키워드가 몇 개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친절'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의외로 친절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 보건실에 같이 가준다, 지우개를 빌려준다 정도.... 이 책을 함께 읽으면 훨씬 더 생각을 넓힐 수 있을 것 같다. 헤아려주는 것, 살피는 것, 손 내밀어주는 것, 내민 손을 잡아 주는 것, 무시하지 않는 것, 옆에 있어주는 것, 편이 되어주는 것.

"친절이란 이런 거란다. 작은 친절이 물결처럼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지."
작은 돌을 물에 던져 동심원을 보여주신 선생님의 말씀이다. 우리반도 이 책을 읽고 이 친절이라는 물결에 대해서 생각해봐야겠다. <아름다운 아이> 책에서 '옳음과 친절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친절을 택하라' 라는 말이 나온다. '뭐라고? 솔직히 그건 아니지'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정확히 말하면 옳음과 친절은 별개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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