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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여우의 북극 바캉스 ㅣ 사계절 저학년문고 69
오주영 지음, 심보영 그림 / 사계절 / 2020년 5월
평점 :
오, 내가 왜 이 책을 이제서야 보았지? 나온지 1년도 넘었던데 말이야. 오주영 작가의 첫 책 <이상한 열쇠고리>는 나의 ‘읽어주기 목록’에 있는 책이다. 그 책이 나왔던 2009년 무렵은 한창 읽어주기에 물이 오르고 있던 때였는데 그 책 반응이 완전 좋아서 모임에서 소개도 하고 그랬었다. 이후 좋은 책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니 한참 잊고 있었는데 다시 생각이 났다. ‘읽어주기’에 성공하는 책들은 대개 읽는 맛이 좋은 책들이다. 그냥 입맛이 저절로 짭짭 땡기는 책들. 말하자면 작가님이 이야기꾼이라는 뜻이다.
이 책도 그랬다. 이렇게 무거운 주제가 담긴 줄은 모르고 처음에는 그저 유쾌하고 우스꽝스럽기만 했다. 아! 두 번째 쪽 너구리 연인들이 빨간 여우의 찻집에서 냉매실차를 사먹고 투명컵을 버리는 장면에서 주제를 짐작하긴 했다. 환경 관련 주제가 나오겠구나. 그러고보니 이 노을 항구의 올여름은 유별나게 덥고, 잠시 정박한 고드름호는 북극으로 간다고 하니.... 뭔가 짚이는 게 있긴 하다. 하지만 뒤에 가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전문적(?)이다. 이 얇고 상큼한 저학년 동화가 담기에는 말이다. 결국은 잘 담아냈다. 짝짝짝! 이 책도 옆구리에 잘 차고 있어야지.^^
빨간 여우는 노을 항구에서 찻집을 하고 있다. 매실청을 정성스레 담가 만드는 매실차는 찻집의 대표 메뉴다. 그런데 이 무더운 여름, 빨간 여우는 의욕이 없어지고 바캉스를 떠나고 싶어졌다. 잠시 정박한 고드름호가 북극으로 간다는 사실을 듣고는 몰래 탑승한다. 하룻밤만에 들키고 말았지만.... 그래도 ‘북극 바캉스’는 시작되었다.
고드름호의 멤버는 늑대 선장과 호랑이 대장, 담비 박사였다. 이들은 북극에 가서 뭘 하려는 걸까? 독자도 빨간여우의 눈을 통해 궁금증을 가지고 읽어나가게 된다. 호랑이는 무슨 어뢰를 조종하려고 하고(그러다 조종기를 바다에 빠뜨려 낭패), 담비는 병에 바닷물을 담아 무슨 실험을 하고... 대체 정체가 무엇이지?
그들은 해빙에 다다랐다. 거기서 배가 등가죽에 붙은 북극곰을 만났다. 그들은 북극곰에게 통조림과 잠자리를 제공해 주었는데.... 아니 이게 뭐야, 그 북극곰이 밤새 통조림을 한 짐 가득 지고 도망을 가버렸지 뭐야. 동화면 은혜를 갚아야지 말이야.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중에 남편까지 합세해서 배에 침입해 강도질을....ㅠㅠ 이때 나는 매우 실망했고 어린이 독자들도 그럴 것 같은데 ‘어떤 존재든 극한에 몰리면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른 존재에게 악해질 수 있다’는 가슴아픈 진실을 말해준다고 볼 수 있겠다.
고래들과의 만남은 좀 달랐다. 그들은 소화제를 원했다. 소화제 하면 매실차지! 덕분에 빨간 여우는 그들에게 ‘숨 오래 내쉬기’ 시합을 제안하고 고래들은 뱃속에 있는 온갖 것들을 토해냈다. 그것들은..... 우리가 익히 아는 그것들이다. (아, 그리고 잃어버렸던 호랑이의 조종기도 나왔다. 그건 다행.ㅎㅎ)
끝날 때가 다 되어서야 호랑이와 담비가 연구를 하는 중인 것을 알 수 있다. 북극 바닷속 동토가 녹으면서 천연가스가 올라와 생기는 ‘진흙 화산’도 살펴보고, 동토층 코어 작업으로 채취한 흙을 토막토막 실험실 냉장고에 가득 채운다. 오 이런 내용까지? ‘작가의 말’을 읽으니 작가는 쇄빙 연구선 아라온 호를 타고 과학자들과 함께 북극 항해를 다녀오셔서 이 이야기의 씨앗을 얻으셨다고 한다. 어쩐지.... 하지만 전문적 내용이 동화의 맛을 해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작가의 이야기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의식을 담았다는 점도 좋지만, 그걸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야기만으로도 재미있는 책이다.
인류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인 기후 위기는 교육에서 꼭 다뤄야겠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개인의 힘이 너무 없어 뭘 어째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주 작은 것이라도 해야지 어떡해... 그러면서 점차 함께 해나갈 일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그런 수업에서 활력과 재미 부분을 담당하면 좋을 것 같다. 저학년용이지만 고학년도 읽어주면 좋아할 것 같다. 그럴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항상 시간이 문제야 시간이.....ㅠ
아참, 이 책 그림도 너무 이쁘고 재밌고 잘 어울린다. 언제 읽어주든간에 이 책은 소장해 두어야겠다. 무겁고 중요하면서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