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점 바일라 15
김소연 지음 / 서유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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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디자인부터 아주 인상적이고 세련되었다. 들어는 봤지만 사용할 일은 거의 없었던 용어, ‘특이점’ 이라는 제목도 신선하고 궁금증을 더했다. 매우 끌리는 매력이 있는 책이었다.

작가의 초기 히트작들이 <명혜> <꽃신>등의 역사동화여서 아직도 이 작가 하면 역사동화를 떠올린다. 알고보니 다양한 시도를 하고 계시다고 한다. 특히 ‘역사와 SF 장르의 융합’을 공부하고 계신다니.... 대단하시다. 얼마나 공부할 게 많을까. 이런 작품들은 그냥 이야기가 아니다. 읽기는 쉬워도 쓰기는 어려운,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야 나오는 글이다. 내가 헤아리긴 어렵지만, 그럴 거라 짐작한다.

이 책에는 작가의 SF 네 작품이 담겨있다. 그 중 마지막 작품「육혈포의 주인」이 바로 ‘역사와 융합한 SF’라 할 수 있다. 과거와의 접점을 찾기 위해 타입슬립 소재를 쓸 수밖에 없었는데, 읽으면서 ‘타입슬립을 활용하지 않으면서 역사와 융합한 SF’도 쓰시겠지? 그건 어떻게 쓸 수 있을까? 몹시 궁금해졌다. 작가의 다음 SF를 기대하는 이유가 되었다.

네 작품 모두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2050년 전후.... 그러니까 3,40년 후이다. 나는 죽었을 수도 있지만 우리 아이들은 한창 살아가고 있을 때이다. 인공지능이 생활 깊숙이 들어온 사회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지만, 정말 그건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떤 미래학자가 우리는 이미 미래를 살고 있다고 말했다는데, 모두는 아니지만 미래의 예언 중 상당수가 현실이 되었고, 어떤 것은 예상보다 훨씬 앞당겨 현실이 되기도 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이 책의 내용도 그리 무리한 설정은 아닐지도 모른다.

‘특이점’은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는 낱말이지만 여기서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초월하게 되는 지점을 말한다. 정말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독자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첫 번째 작품 제목에 ‘특이점’이 나온다. 「특이점을 지나서」라는 제목의 이 작품 배경은 중학교 3학년 교실이다. 이곳에서도 경쟁은 있다. 국립대학 진학을 노리는 최상위 학생들에게만. 나머지 아이들은 진로 적성검사를 통해 다음 학업 코스나 취업이 결정된다. 주인공 오지영은 안내데스크 직원으로 진로가 잡힌 평범한 학생이다. 전교 1등 진용과 비밀연애 중이다. 이 교실에 안드로이드 학생 로봇 이니티움305(이니)가 전학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니는 딥러닝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 어느정도 학습력을 낼 수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용 로봇이다. 진용은 이니의 존재에 짜증과 불만이 많다. 결국 중간, 기말 모든 시험에서 진용은 이니에게 전교 1등을 뺏기고 탈환하지 못한다. 비밀연애 중인 지영에게 푸는 스트레스는 데이트폭력 수준이다. 그 와중에 지영은 이니와 친해지고... 그리고서야 지영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진용과의 관계야말로 버려야 할 쓰레기 관계다. 그놈은 지영이한테 진심 한톨도 없었고 사람을 이용하기만 했다. 그렇다면 이니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특이점을 지난’ 인공지능은 상대방의 감정과 소망까지도 파악하고 위로와 격려까지 할 수 있는데, 차라리 그들과 소통하는 것이 훨씬 나은 것인가? 그런 생각까지는 들지 않는다.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두 번째 작품 「반려동물 관리사」에서도 사람들의 직업은 각종 검사에 의한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 많은 직업이 인공지능에게 넘어갔고 인간의 선택의 폭은 더욱 좁아졌다. 앨런에게 부여된 직종은 반려동물 관리사였고 그는 알바를 시작한다. 하나뿐인 가족인 아버지는 주어지는 일감대로 그림을 그리는 직업 화가였고, 은퇴가 결정되어 실버센터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버지와 친밀하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에게서는 공통점이 보인다. ‘평생을 걸고 하고 싶은 일’을 바란다는 점에서. 그건 다르게 말하면 ‘가슴 뛰는 일’이라도도 할 수 있었다. 새로 시작한 알바에서 앨런은 예상을 뛰어넘는 소질을 보였다. 고용주의 강아지 알피가 앨런의 말만 따르는 것이다. 하지만 앨런은 실버센터에 있는 아버지에게 이런 편지를 쓴다.
“저만의 특기와 적성을 발견한 건 천만다행이지만.... 아버지! 이게 다일까요?”
그 답장을 받은 방식을 말하자면 너무 슬프고 암울하다. 우리들의 미래를 엿보는 것 같기도 하고.ㅠ

세 번째 작품 「그녀의 선택」이 내겐 가장 충격적이었다. 이 작품에서 인공지능은 특이점을 넘어섰고 인류에게 중요한 제안을 했는데, 인간은 그것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기후위기에 대한 관리를 맡기는 것이었다.
“대멸종을 막기 위한다면 저를 기후 관리 시스템의 빅 리더로 삼으세요. 전 세계 기후 대책에 대한 책임과 권리를 제게 주신다면 멸망을 앞둔 인류는 구원될 수 있습니다.”
약간은 고개가 끄덕여진다. 인간은 죽었다깨나도 할 수 없는 일이고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 어리석음을 뺀 인공지능이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지구는 기대보다 빠른 속도로 회복하고 있는 중인데.... 그녀(인공지능 네오 가이아)의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코로나 바이러스로 3년째 시달리고 있는 이때에, 그 이야기는 진정 무섭다. 그녀의 선택은 지구에게 좋은 선택이다. 동시에 인간에게는 공포의 선택이다. 지구와 인간의 관계가 과연 그러하다면, 인류는 생존할 의미가 있을까? 이래저래 무서운 생각이고 무서운 이야기다.

네 번째 작품이 처음에 말한 역사와의 융합이다. 역사동화를 쓰시던 감이 살아있어서인지 어색하지 않고 흥미진진하여 좋았다. 이 책 전체적으로 대화나 문장들이 걸리적거림 없이 자연스러워 좋았다. 쉽게 나올 수 없는 결과물이라고 생각되었다.

SF 안에서 인간의 정체성과 인류의 미래에 대한 경고를 통해 지금의 우리를 바라보게 하는 것. 잘은 모르지만 작가의 의도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자꾸만 ‘어쩔 수가 없네 뭐, 이렇게 가다가 끝장나는 거네, 얼마 안남은 거네. 망했네 뭐.’ 이런 생각으로 흘러가는 것을 다잡기가 참 힘들다. 자식도 있고 학생들도 있으니 어찌되었건 비관주의로 빠지면 안되는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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